딴짓

by 보라

2021년 8월


코로나팬데믹이 시작되고 한동안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대부분 그랬겠지만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되도록 만남을 자제했다. 예방접종 2회를 마치고 나니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겼다. 지인들과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 오랫동안 해봐야지 계획만 세우던 문학관 여행의 출발을 윤동주 문학관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오전 일을 맞히고 종종걸음으로 버스를 탔다. 다행히 시간에 맞추어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아침 시간이 지나서인지 전철 안은 한가로웠다. 결혼 전 출퇴근 할 때는 매일 지치도록 타던 전철도 오랜만에 타니 여행하는 기분이 났다. 덜컹거리는 전철 소리 밖으로 펼쳐지는 도시 풍경, 한강 다리를 건널 때는 소풍 가는 아이 마냥 신나서 창밖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처음 계획은 지하철 종각 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윤동주 문학관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근처에 있는 통인시장을 먼저 틀러 보고 싶다는 의견으로 바뀌었다. 급하게 검색을 해 보니 경복궁역에서 조금 걸으면 통인시장까지 갈 수 있다고 한다. 종로 3가에서 3호선 지하철을 갈아타고 경복궁역에서 내렸다. 출구로 나와 길을 따라 쭉 걷다 보니 음식문화거리가 나온다. 시장 입구인가 하고 두리번거리다가 요구르트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한참을 더 걸어야 한다고 한다. 높은 건물이 거의 없는 자하문로를 따라 500미터쯤 걸으니 통인시장 간판이 나타났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너무 한가해서 이곳이 그 유명한 시장인가 싶기도 하고 어디가 티브이에 나오던 맛 집일까 궁금해하며 이쪽저쪽을 살펴보니 통인시장의 명물 ‘기름 떡볶이’를 지글지글 볶고 있는 한 아저씨가 눈에 들어온다.

여기가 그 유명한 기름 떡볶이 집인가요? 하고 물으니 아저씨는 조금 시큰둥 해하며 간판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통인시장 기름떡볶이


그곳에는 ‘서울미래유산’이라는 멋진 간판이 있었다. 아 그렇군요. 그리고 뭘 어떻게 먹어야 할지 우물쭈물하다가 일단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주문을 먼저 하란다. 간판을 보고 또 어리둥절해하며 기름 떡볶이와 전 세트를 시켜보았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 유명하다던 기름 떡볶이는 역시 대단한 맛은 없는 떡볶이에 우리 동네 시장에서 명절 때 흔히 판매하는 전 세트가 나왔다. 시장이 반찬이라 꼭꼭 싶어 먹으니 그 고소한 맛이 즐거웠지만 주인아저씨의 친절한 설명과 신명 나는 추임새가 있었다면 좀 더 즐겁게 먹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시장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집들이 옹기종기 늘어선 골목길이 나왔다. 찻집도 있고 이국적인 음식점, 디저트가게도 눈에 띄었다. 옷가게며 액세서리 가게 등 모두 특색 있고 예뻐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근처에 시인 이상의 집이 있다는 것이 문뜩 생각나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걸어서 10분 정도가 걸린다. 윤동주 문학관으로 가기 전에 우리는 또 이상의 집에 먼저 들르기로 한다. 문학관까지 가는 길은 좀 오래 걸릴듯하다.



대오서점



이상의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다시 딴짓을 하게 되었다. 페인트가 다 벗겨진 낡은 문에 ‘국민’ 학교라고 불리던 시절의 교과서부터 옛날 집에 하나 정도 있을 법한 문고판 전집, 그리고 이 집에 얽힌 재미있는 사연이 적힌 설명까지 읽고 있다 보니 웃음이 절로 난다. ‘대오서점’이라는 간판을 단 이 집은 서점이면서 커피도 판다고 한다. 안이 잘 보이지 않는 카페 안을 훔쳐보다가 용기를 내 문을 드르륵 열었다. 안은 낮은 천장에 낡은 물건들이 가득하고 카운터가 있고 아주 좁은 통로가 있었다.


커피가 맛이 있으려나 하다가 안쪽의 문이 열리고 펼쳐지는 풍경에 또 호기심이 발동하여 홀리듯 커피를 주문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요술처럼 펼쳐진 마당에 오래된 펌프와 장독대, 윤이 나게 잘 닦여진 마루 바닥이 보였고, 오르간과 가족들의 사진이 거실 마루에 전시되어 있었다. 어릴 적 친구의 집에 놀러 온 것 같았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우리는 사진을 찍고 물건들을 살펴보고 한참을 구경하고 나서야 커피를 마셨다. 은은한 향의 커피는 나름 좋았다. 달콤한 달고나 사탕을 녹여 깨물어 먹으며 추억에 젖었다. 그야말로 추억을 제대로 맛본 시간이었다.

서점을 나와 조금 더 걸으니 시인 ‘이상의 집’이 나왔다. 이상의 집에서 시인의 정기를 받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걷는 즐거움에 빠져 자하문로를 쭉 따라 올라 청운동 주택가를 지나 윤동주 문학관까지 갔다. 생각보다 먼 거리였지만 함께 하니 어느새 서울의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올라 있었다.


이상의 집


윤동주 문학관과 시인의 언덕


정작 윤동주문학관은 코로나로 임시휴관이었다.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간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옥상에 있는 카페를 구경하고 시인의 언덕으로 갔다. 윤동주시인의 서시가 새겨진 바위가 있는 "시인의 언덕"은 걷기 좋은 둘레길이었다. 시원한 바람과 나무와 돌과 시가 있는 곳에서는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윤동주문학관에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그 옆에 있는 청운문학도서관의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아쉬움은 잊어버렸다. 한옥의 창으로 보이는 폭포와 물소리에 마음이 평온해졌다. 한옥으로 지어진 청운문학도서관은 옛 선비들의 정취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청운 문학 도서관의 그림 같은 풍경



계획한 곳은 막상 볼 수 없었지만 호기심 어린 발걸음마다 만난 또 다른 인연이 주는 묘미가 여행의 진정한 맛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시간이었다. 집을 나서기 전 이런 멋진 곳을 만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무엇보다 늦은 나이에 만난 벗들이 함께 있어서 더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다음에는 윤동주 문학관을 꼭 와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