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으레 내가 아이들을 씻긴다. 남자아이들이 점점 커가니 엄마가 감당하긴 어려울만하다. 평소처럼 아이들 세명을 하나하나 부른다. 진짜.. 인내심이 필요하다. 불러서 샤워하는 곳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 말이다.
매일 같이 말하면서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빠가 몇 번을 불렀냐? 들렸어 안 들렸어?" 다그치기 일쑤다.
첫째 아이가 들어와 샤워를 하면서 주절주절 뭐라고 이야기를 한창 한다. 오늘 게임을 한 건지 신이 나서 이야기한다. 샤워하면서 뜨거운 물이 모락모락 하면서, 수증기로 세면대 앞 거울이 뿌옇게 수증기로 덮였다.
첫째 아이는 여기에 자기 나름대로 무언가 열심히 설명하면서 그리기 시작한다. 캐릭터인지, 뭔지.. 사실 얘기 들으면서 열심히 보면서도 도대체 뭘 그리는가 싶다.
열심히 뭔가 그림을 그리고 이게 뭔지 아느냐, 이건 뭐 어떤 상황이다 장황하게 설명을 하고서는, 샤워를 끝마친 첫째 아이는 샤워실에서 나갔다.
머리에 린스를 잔뜩 묻힌 나는, 얼굴이 안보이자 세면대 위 거울을 슥슥 수증기를 걷어내고 얼굴 한번 바라본다.
다음, 둘째 아이를 부르려는데, 막내가 쪼로로 달려온다. 뭔가 형보다 나은 동생 인양 의기양양 얼굴로 샤워하러 얼굴을 들이민다.
웬일인가 싶어 열심히 옷을 벗겨주고 있는데, 샤워하러 들어오는 막내가 한마디 한다.
"아빠 저 그림은 누가 그린 거야?"
그래서 자연스레 대답했다.
"응 형이 그렸어. 뭔지는 잘 모르겠어"
그러자 막내가 다시 묻는다.
"저 그림은?"
세면대 위에 내가 얼굴 보려고 슥슥 수증기 걷어 낸 자국이 아직 선명하다.
"그림?" "저 거울에 있는 거?" 묻자
"응"한다.
차마 그림이 아니라고 말은 못 하겠다.
그래서 졸지에 나도 거울 수증기 위에 그림을 그리게 됐다.
뭘 그린 거지? 너무 대충 그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다음엔 좀 정성스럽게 그려야지 한다.
아이들의 세계는, 무시하려고 하면 영원히 모를 세상이고, 들여다보려고 하면 끝도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내가 자랄 때만 해도, 어른들의 사고와 지침을 따르려고 했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누군가 들어주는 분위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
세상이 돌고 돈다고 하지만, 요즘은 평균적으로 육아에 대한 인식도 관심도 많이 달라진 게 사실이다. 더 잘살게 되고 아이는 더 덜 낳게 되니 그런 게 아닌가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그런 거 같기도 하다.
아이가 하는 행동과 말이 '내'생각과 다르면, 가르치려고 노력을 하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생각해 본적이 많지 않은 것 같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의'관심이 아니라, '아이들'의 관심에도 귀 기울여 보자. 그럼 아이들도 '나의'관심에 귀 기울여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