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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영 Jun 12. 2022

이별은 슬프다

삼색 아기 고양이를 만난 것은 3년 전 가을이었다. 태권도 학원에서 늦게 돌아온 아이가 스파게티를 먹고 싶다고만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스파게티 재료를 사러 동네 마트에 다녀오는 길에 화단에서 아기 고양이 울음소리를 들었다. 소리를 따라 가보니 아기 고양이가 힘껏 울고 있었다. 어미가 찾으러 올지도 몰라 사료만 조금 나눠주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 고양이가 따라오기 시작했다. 당시 집은 아파트 2층이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을 열어두니 그대로 집으로 들어온 것이다.



아기 고양이를 만나기 전부터 매일 고양이 영상을 찾아봤었다. 고양이에게는 관심이 하나도 없었는데 언젠가 이상하게 관심이 가고, 생각이 나고, 보고 싶었다. 관심이 있는 것만 눈에 보인다고 했던가. 그동안은 보이지 않았던 동네 길고양이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왔고, 항상 와서 밥을 먹는 밥자리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침마다 밥을 주러 오시는 캣 대디가 계셨지만, 며칠 지켜본 결과 매일 오시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고양이용 사료를 사놓고 밥이 떨어지면 채워주는 일을 했다. 아마 그렇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면 삼색 아기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아기 고양이에게 ‘가을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우리가 가을에 만났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다른 고양이들보다 가을이에게 마음이 더 갔던 것은 할머니 생각 때문이었다. 발견 당시 생후 약 3개월 정도였는데, 대략 그 시기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어쩌면...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오랜 시간을 함께 할 수 없었다. 지독한 감기에 걸렸는지 한 달이 되도록 떨어지지 않아 병원에 가 보니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었고, 예쁜 고양이와 함께 하는 것보다 알레르기의 고통이 더욱 심했기에 입양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앞으로 고양이에게는 마음을 않기로 결심했지만 쉽지 않았다. 길에서 만나면 꼬리가 다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고, 혹여나 사람 손을 타서 도망가지 않는다면 급히 편의점으로 달려가 먹이를 사서 먹였다. 그러다 얼마 전 아기 고양이 두 마리를 만나게 되었다. 볼 일이 있어 나가던 중 화단에서 울고 있던 아기들을 보고 차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도저히 키울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두면 그냥 죽어버릴 것 같아 무섭기도 했다. 결국 잠깐 데리고 있다가 좋은 보호자를 찾아주기로 했다.



아기 고양이를 키우는 일이 이렇게 고된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래도 데리고 왔을까? 스스로 밥을 먹을 수도, 대소변을 볼 수도 없기에 몇 시간에 한 번씩 먹이고 대소변을 봐줘야 했다. 나는 십여 년 전부터 척추측만증으로 고생을 하고 있던 터라 앉아서 먹이고 대소변을 보게 하는 일이 무척 고역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두 마리를 돌보고 나면 밤새 요통으로 뒤척이며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취미로 시작했던 일들도 하나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바쁘기도 했다. 예쁘게만 보였던 고양이들이 밉기도 했고, 빨리 입양되지 않아 조급하기도 했다.



남자아이가 며칠 전부터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인다. 동물병원에 데려갔지만 가벼운 찰과상이니 걱정할 것 없다고 했다. 그래서 괜찮은 줄 알았다. 하지만 상태는 점점 더 나빠졌고, 새벽에 잠시 깬 나는 곧 이별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편히 쉴 수 있도록 눕혀줬다. 예상대로 남자아이는 다음 날 아침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아플 때 병원비 걱정에 병원에 데려가는 것을 망설인 내가 미웠다.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이 미안했고, 미워했던 것이 미안했고, 정드는 것이 무서워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미안했다.


 


이미 떠났지만 기억하기 위해 ‘생명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남아 있는 여자 아이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별은 슬프다. 정확히 말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이별, 최선을 다하지 않은 이별은 슬프다. 늘 우리는 이별을 맞이하고 슬퍼하며 후회를 한다. 사랑을 받은 만큼 주지 못했던 사람과의 이별이 그랬고, 평생 책임질 수 없으면서 데리고 왔던 가을이와의 이별이 그랬고, 이름조차 지어주지 못한 생명이 와의 이별이 그랬다. 그리고 평생 남의 자식만을 키우다가 돌아가신 할머니와의 이별도 그랬다.


 


이제 나에게 가족이라고는 언니와 아이 그리고 강아지 한 마리만 남았다. 언젠가 우리는 모두 이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때에 조금만 슬퍼하도록, 조금만 후회하도록 더 많이 사랑하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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