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일기 프로젝트, 아홉

엄마의 뜨개질

by hummingham
손재주가 좋으셨던 엄마


엄마는 재주가 많으셔서 손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이든 뚝딱 해내시는 분이셨습니다.

어릴 때부터 사운드오브뮤직의 선생님처럼 재봉틀로 제 원피스를 만들어주시기도 하고,

지점토로 다양한 인형들을 만드시고 액자로 장식해 놓으시기도 하고,

음식은 또 어찌나 맛있게 해 주시는지 엄마가 해주시는 집밥만큼 맛있는 음식이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집에 혼자 계실 때는 가죽으로 지갑이며 가방도 만들어서 가족과 지인분들에게 나누어 주시기도 하고,

손주의 탄생을 기다리시는 동안 애착인형을 만들며 아이와의 만남을 기다리시기도 하고

태어난 손주들과 놀아주시려고 손가락 인형을 만들어주시기도 하고, 가방에 달 수 있게 예쁜 동물인형들을 만들어서 달아주시기도 했습니다.



겨울이면 엄마가 종종 소파에 앉아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시며 몰입하셨던 취미는 바로 뜨개질이었습니다.

추운 날씨로 바깥 외출이 어려운 겨울 내내, 엄마는 아이를 보는 틈틈이 마법처럼 가족들에게 줄 모자, 목도리, 워머 등을 신나게 뜨셨습니다.


엄마의 뜨개질


첫 시작은 아마 그해 겨울에 유행했던 루피망고 모자였을 겁니다.

시중에서 사려니 얼마나 비싼지...... 저는 친정엄마에게 이걸 떠주실 수 있냐고 여쭤보았죠.

엄마의 대답은?

식은 죽 먹기야!


그렇게 엄마에게 마음에 드는 색의 실과 굵은 루피망고용 바늘을 사다 드리고 친정엄마가 완성해주시기를 엄마 곁에 앉아 기다렸습니다.


루피망고 모자


몇 시간도 안되어 엄마가 떠주신 근사한 루피망고 모자와 넥워머 덕분에 그해 겨울 멋도 내면서 따뜻하게 외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곁에서 지켜본 신랑도 참 신기해했습니다.

친정엄마는 사위에게 어떤 걸 떠줄까 물어보셨고, 신랑은 목에 가볍게 두를 수 있는 쁘띠 목도리를 갖고 싶다고 했습니다. 목도리는 더 쉽다시며 색깔별로 만들어준다시던 친정엄마 덕분에 사위는 패셔너블한 목도리를 여러 개 받고 아직까지도 잘 쓰고 있습니다.



장모님을 위한 사위의 인증샷


딸네 식구들 뿐만 아니라 친정아빠, 남동생 몫까지 엄마는 기쁘게 받고 잘 써줄 식구들을 생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뜨개질을 이어가셨습니다.

엄마는 참 대단한 재주꾼이셨어요! 저는 코를 잡아주지 않으면 잘 시작을 못하겠던데 어쩜 저렇게 도안 몇 번만 보면 새로운 디자인으로도 잘 떠주시는지......

제가 엄마에게 요리며, 재봉틀이며, 베이킹이며 웬만한 건 다 물려받았는데 뜨개질은 못 배웠네요.



대망의 아기 선우를 위한 모자!

아기는 특별히 따갑지 않고 보드라운 털로 떠주어야 한다셔서 인터넷으로 실을 고르지 않고 직접 시장에 가서 털실을 이것저것 만져보며 두 종류의 실타래를 골라오셨습니다.


네이비 모자 쓴 선우



겨울과 잘 어울리는 선우의 모자


아기 두상에 맞추어 예쁘게 모자를 떠주신 덕분에 병원 갈 때, 교회 갈 때 등등 바깥 외출을 하는 날이면 아이에게 예쁘게 씌워줄 수 있었습니다.

외할머니의 정성을 아는지 모자를 귀엽게 소화하던 선우.

그 덕분에 한 달 내내 뜨개질을 하시던 친정엄마도 기분 좋게 겨울을 보내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간호사님을 위해서도,

제 루피망고 모자를 보고 떠주실 수 있는지 여쭤본 제 지인분들 모자까지 엄마는 솜씨를 부려 주변 사람들에게 따듯한 온기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친정엄마라는 존재 덕분에 따듯했던 2015년의 겨울의 어느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되어 처음 맞이하는 생일


1월은 가족들의 생일이 유독 많은 달입니다.

그 시작은 주로 제가 될 때가 많았어요. 2주 후에 남동생이 생일이었고, 음력생일이신 아빠는 1월과 2월을 넘나드시며 겨울 내내 우리 식구들의 생일은 이어졌습니다.


딸의 생일상을 차려주시려 좋아하는 메뉴들로 한 상 차려주셨던 엄마.

생일이어서가 아니라 엄마의 미역국은 언제나 맛있었습니다.

따듯한 미역국은 따듯한 대로, 식은 미역국은 식은 대로 출출할 때 먹으면 너무 맛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산후조리 할 때도 미역국을 원 없이 실컷 먹을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했고요.


엄마의 생일날


친정엄마는 선우가 보채서 음식 준비를 더 많이 못하셨다고 하셨지만 넘치게 풍성하고 감사한 생일상이었습니다. 엄마가 되고 처음 맞이하는 생일이라서 그런가 마냥 주인공이 되고 싶은 어린아이 같은 마음보다는 어른의 마음으로 생일을 맞이했던 것 같아요.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나의 존재를 축하받는 일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커갈수록 알아가게 됩니다.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지요.



퇴근하시고 딸네 집으로 오신 친정아빠.

딸의 생일을 축하해주시자마자 저 조그만 외손주 한번 업어보시겠다고 한참을 업고 토닥이시다가 스르르 재우고 가셨습니다.


친정아빠와 선우



엄마가 되어도 생일에는 꼬마처럼 설레었고, 가족들 덕분에 감사한 1월을 보냈습니다.

엄마의 수고로 식구들은 마음에 쏙 드는 모자와 목도리가 생겼고, 그 덕분에 따듯한 겨울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엄마는 언제나 사랑을 주는 존재인 것 같아요.

아픈 엄마에게는 이 뜨개질 선물이 또다시 이어질지,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두려움도 있으셨을 텐데

겨우내 뜨개질하는 그 순간만큼은 오래오래 행복하셨던 순간이셨기를요.




따듯한 겨울의 한 날
엄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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