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의 예방접종
예방접종 하는 날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출근한 뒤로는 아기수첩을 들고 때때마다 예방접종을 다니는 일은 엄마의 몫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퇴근하고 다 같이 간 적도 있었는데요. 엄마는 오랜만에 아기를 보다 혹시 실수라도 할까 봐 조심스러워 딸과 사위와 함께 가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곧 감을 잡으신 엄마는 무슨 예방접종을 하는 날이라고 말씀만 드리면 제가 직장에 가있는 동안 아이와 데이트를 하듯 병원을 다녀오셨습니다.
1월 6일 화요일, 이날은 엄마와 선우 둘만 처음으로 예방접종을 하러 가는 날이었나 봅니다.
미리 맘마 먹이고 옷도 두둑이 입혀 아이를 조심조심 데리고 병원으로 향하셨네요.
할머니 품에서 순하게 순서를 기다리던 선우와 옆 젊은 엄마와 대화를 나누시던 엄마의 모습이 상상이 됩니다. 할머니 품에 앉아 진료를 받는 선우도 긴장했을 테지만 행여나 자지러지게 울까 봐 두근두근했던 할머니의 우려와 달리 선우는 울지 않고 잘해주었나 봅니다.
주사 맞기 전에 미리 '조금 따꼼할 거야'하고 말해주시던 외할머니의 목소리에 편안함을 느꼈던 걸까요?
정말로 씩씩하게 주사 두 방을 잘 맞고 온 선우가 참 기특합니다.
엄마는 서두르는 법이 없으셨고, 늘 자녀들을 편안하게 해 주시던 분이셨습니다.
젊은 엄마들이 보는 육아서를 보신 적도 없지만 아이에게 인격적으로 마음의 준비를 시키며 곧 다가올 긴장된 순간을 초연하게 받아들이도록 잘 이야기해 주신 엄마의 지혜가 느껴집니다.
일주일 후, 또다시 예방접종을 간 친정엄마와 선우.
일주일 전 주사와 달리 허벅지 주사는 많이 아팠나 봅니다.
얼굴이 빨개지도록 울기는 했지만 그렇게 한번 울고는 또다시 잘 그친 선우였네요.
엄마인 제 눈에도 이런 아이의 작은 반응이 신기하고 예쁜데 한 세대를 건너 그저 아이의 존재 그 자체로 바라봐주시는 외할머니의 눈에는 얼마나 예뻤을까요?
엄마는 무겁게 장을 보고 오는 길도 그냥 좋다고 적어놓으셨네요.
제가 늘 엄마 곁에 누워 엄마를 안고 엄마 냄새를 맡을 때마다 했던 그 말처럼 '그냥 좋다' 이 말이 왜 이리도 편안한지요.
아직 어려 호떡을 함께 나누어 먹을 수는 없었지만 선우를 업고 장가방을 지고 호떡을 두 개 사서 집까지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오셨을 엄마의 소소한 기쁨이 감사하고 좋습니다.
친정엄마의 등에 매달려 오롯이 외할머니와 체온을 나누는 아이가 있기에,
아직 "엄마! 엄마"하고 엄마를 찾으며 엄마를 의지하는 딸이 있기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그래도 한 사람의 몫을 다 해내고 하루를 알차고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기에
엄마는 그냥 좋으셨나 봅니다.
엄마만 그냥 존재 자체로 마냥 좋은 존재가 되어주시는 줄 알았는데 작은 아이도 친정엄마에게는 그냥 존재 자체로 함께해서 좋은 선물이 되어주었습니다.
조용한 집안에 들어서 짐을 풀고 또 따듯한 온기 속에서 호떡을 먹으며 아이를 곁에 두고 한낮의 여유를 부렸을 엄마의 소소한 하루가 참으로 고맙고 그립습니다.
나도 엄마와 함께여서 그냥 좋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