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일기 정리 프로젝트, 일곱

너와의 첫 크리스마스

by hummingham
아이와 함께 하는 첫겨울


엄마와 함께 서울 큰 병원으로 가는 일정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항암 치료를 하시는 엄마를 위해 친정아빠와 저는 번갈아 가며 연차를 냈고, 남동생은 시험기간이 아니면

언제든 엄마와 데이트하듯이 병원을 다녀왔습니다.

8년 가까이 이어진 병원방문은 엄마를 중심으로 데이트 파트너가 바뀌는 일이 되어 우리 가족에게 또 하나의 추억이 되어주었습니다.


병원에 도착하면 진료를 받기 전까지는 마음을 졸이지만 진료 후에는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푸드코트로 가서

맛있는 식사를 했고, 병원 마트에만 있던 민속과자를 사서 차에서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집으로 향하기도 했습니다.




선우가 태어나고 처음 맞이한 겨울,

엄마는 그 해 겨울에도 치료를 위해 남동생과 병원으로 가셔야 했습니다.

아이를 사위에게 맡기고 가기 전까지 엄마는 아이 목욕도 다 끝마치고 낮잠까지 재워서 일 마치고 오는 사위가 힘들지 않게 해두시려고 하셨네요.


IMG_4261.JPG 집을 나서기 전 엄마의 마음


엄마의 정성 덕분인지 아이는 아빠가 오고도 한참을 푹 자고 개운하게 일어나 놀았습니다.

엄마가 퇴근하고 오기 전까지 아빠와의 시간은 달콤했겠지요?



선우 욕조.JPG 아기 욕조와 장난감


마냥 커 보였던 저 욕조가 꽉 찰 만큼 자란 아이가 외할머니와 목욕을 잘하기까지

아이도 친정엄마도 많은 시간을 겪으며 서로에게 적응해 환상의 호흡을 맞춰온 것 같습니다.

앉아서 한참을 놀고, 씻기는 것이 더 이상 힘들지 않음에 감사한 하루였네요.



유모차에서 자는 선우.JPG 유모차에서 자는 선우


아기침대에 잘 적응하지 못했던 우리 아기.

바운서는 더 이상 무게 때문에 안 쓰고, 유모차로 슬슬 밀어주면 스르륵 잠을 자던 우리 아기.

그렇게 아빠가 도착해 외할머니와 바통을 터치할 때까지 외할머니는 거실을 돌며 아이를 두 눈에 담고 기도를 하셨습니다.

'아가... 할머니 가고 나서도 울지 말고 잘 자거라 아가'


본인의 치료를 받으러 가면서도 아이를 걱정하셨던 친정엄마의 무거운 마음.

영원히 끼고 보며 안아주고 품고 싶지만 잠시 떠나는 시간을 못내 미안해하셨던 마음.

엄마의 마음은 온통 가족들로 채워진 것 같아요.




외할머니 껌딱지


날로 날로 커가는 아이는 온 집안을 누비며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를 따라다니며 보행기를 끌고 다니기도 하고, 말귀도 다 알아듣고, 조금만 잡아주면 벌떡 일어나 걸어보겠다고 다리에 힘을 주곤 했습니다.



IMG_4262.JPG 예쁜 껌딱지


늘 엄마는 말씀하셨어요.

"우리 선우 IQ 170!"


이 숫자가 엄마에게 언제부터 꽂히셨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노래를 불러주거나 음악을 틀어주면 기가 막히게 박자를 맞추며 반응하고,

외할머니의 넋두리에도 알아듣고 반응하는 아이의 표정과 눈빛에 엄마는 '이 녀석이 보통이 아니구나'하며

감탄과 예언의 메시지를 날리신 듯합니다.


따듯한 마음으로 평소에도 아이들을 잘 보던 남동생은 조카가 힘들까 봐 엄마에게 잔소리를 했나 봅니다.

친정엄마만큼이나 첫 조카인 선우를 아낌없이 사랑해주던 남동생.

선우가 크면 같이 해주고 싶은 게 많다고 좋아하던 동생은 금세 결혼을 하고는 그 에너지를 조카에게 쏟으며

아이와 다양한 액티비티를 해주는 멋진 아빠로 살고 있습니다.


외삼촌 품에서 자는 선우.JPG 외삼촌과의 낮잠


언제나 최고 외삼촌이 되어주는 우리 동생.

아이도 늘 외삼촌 품에서는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나 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선우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맞는 성탄절!

예배 가기 전 미리 준비한 크리스마스 옷을 입히고 설레는 마음으로 교회로 갔습니다.

하지만 선우의 첫 크리스마스를 기다린 건 저뿐만이 아니었어요.

친정아버지도 선우에게 씌워주고 싶으셔서 산타모자를 사 오셨고

양가 조부모님은 아직 선물이 무언지도 모르는 손주를 위해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셨습니다.


IMG_4263.JPG 선우의 첫 크리스마스


이렇게 작은 아이로 인해 특별해진 크리스마스를 온 가족이 함께 맞이했습니다.

화려한 트리는 아니지만 반짝이는 작은 전구와 따듯한 집안의 온기로 모든 축복을 몰아 받은 것처럼

행복하기만 시간이었습니다.

시간의 개념을 모르는 아이에게는 어제와 다를 것이 없는 하루였겠지만

아이와 처음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던 어른들은 이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감사하고 기뻤습니다.



미키마우스 선우.JPG 미키마우스 선우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기다리던 선물을 받았기 때문이지요.

반짝이는 전구보다 아이의 몸부림이 더 아름답고 황홀했습니다.

저 작은 존재가 아픈 친정엄마에게는 큰 희망이 되어 오늘과 내일 그리고 앞으로를 살아갈 힘을 주었습니다.

오물오물 내뱉는 아이의 목소리가 가보지 않은 부모의 길에 대한 기대와 책임감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아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날,

또 하나의 천사가 저희 가정에 찾아와 평화와 사랑의 메시지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때 그날처럼 엄마도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고 계시겠지요.


모두에게 따듯한 크리스마스로 기억되기를 소망합니다.




Merry Christ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