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이야기
엄마가 쓰신 일기장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참 주민센터 강좌로 그림 그리기를 배우시던 엄마가 문구점에서 사신 크로키 노트,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사각사각 연필로 그리기에 좋은 딱 좋은 재질의 종이.
손에 힘이 없어지는 엄마에게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은 딱 알맞은 노트 한 권이 엄마의 이야기를 담기 알맞은 공간이었습니다. 이 작은 노트도 첫 손주를 만나면 개시하려고 서랍에 고이 보관해 두셨던 엄마.
저는 엄마의 글씨를 참 좋아합니다.
그냥 슬쩍 보아도 '엄마 글씨구나!'하고 알아볼 수 있는 엄마 느낌이 나는 글씨.
이름하여 '박제숙 여사체'.
제가 자라면서 엄마의 글씨에 대해 붙여준 이름입니다.
엄마는 아이의 이름이 지어지자마자 일기장에 제목을 적어놓으셨습니다.
'나의 딸의 아들, 선우'
엄마의 글씨인 박제숙 여사체로 말이죠.
2박 3일의 산부인과 입원을 마치고 저는 조리원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2주간 천국 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에게는 천국의 시간이었지만 엄마는 작은 손주를 만져보지 못하는 이별의 시간이었던 것 같네요.
차로 1시간 거리에 떨어져 사시는 엄마는 주말이면 친정아빠와 조리원에 오셨습니다.
사실 주중에도 친정아빠 시간만 맞으면 보러 내려오시긴 했네요.
몇 분의 면회로 보고 싶던 그리움을 다스리며 다시 보러 올 날만을 기다리셨습니다.
어쩜 이 모습은 엄마가 들려주신 외할머니 이야기와 이토록 닮아있을까요?
엄마는 친정에서 조리를 마치고 외할머니와 함께 집으로 올라오셨다고 해요.
외할머니는 며칠만 엄마를 더 챙겨주시고 다시 춘천으로 돌아가시기로 하셨다는데 고속버스를 타고 돌아가시는 길에 눈물바람을 하시며 춘천터미널에 내리자마자 다시 엄마네로 가는 표를 끊고 올라가셨다고 합니다.
첫 아이를 낳은 딸과 어린 아기가 눈에 밟혀 그 길로 몇 주는 더 있다가 가셨다고 해요.
엄마는 그런 엄마를 닮았고, 엄마의 엄마처럼 딸과 아이를 보살피는 것이 행복이라고 느끼셨나 봅니다.
드디어 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날.
엄마와 아빠가 사주신 하얀 아기침대 위에 놓인 아기 이불과 침구류.
임신기간 동안 엄마와 함께 천을 사고 재봉틀로 드륵드륵 나눠서 박으며 아기 침구를 만들었는데요.
아직도 이때 만든 이불은 우리 아이들이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집에 처음 온 날은 9월이어도 여전히 더운 초가을날이었고, 배넷저고리에 속싸개까지 한 아이는
에어컨도 없는 집에서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했습니다.
"애기 너무 덥겠다. 신생아라 놀란다고 해도 속싸개 좀 잠깐 풀어주자."
그렇게 엄마의 권유로 속싸개를 풀자마자 아이는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본인 뜻대로 안 되는 몸놀림에 낯선 해방감을 누리는 듯했습니다.
친정엄마와 함께 했던 초보 엄마의 어설픈 육아.
엄마는 많은 것을 도와주셨습니다.
반찬도 해주시고, 아기 옷은 따로 손빨래해주시고, 매일 저녁 목욕도 시켜주셨습니다.
조심조심 머리부터 따듯한 물에 감기고, 속싸개를 벗겨 물에 아이를 넣자 아이는 외할머니 손을 꼭 붙잡고 외할머니를 한껏 의지하는 듯했습니다.
'엄마는 못 믿겠지만...... 할머니는 믿음이 가요!'
저 찐한 인상에서 느껴지는 아이의 긴장.
손이 야무진 외할머니와의 목욕은 개운하게 끝났습니다.
온몸에 로션을 바르고 방 안을 둘러보던 아이는 목욕을 하고 나면 할머니의 품에서 단잠을 잤습니다.
그렇게 엄마가 함께 해주시면 모든 것이 자리를 잡아가는 듯했습니다.
시부모님도 오셔서 마음 편히 오래도록 앉아 집으로 온 아이를 보고 가셨고,
기다렸다는 듯이 멀리서 이모들이 아이를 보러 오셨습니다.
나에게는 이모들이지만 나로 인해 처음으로 이모할머니가 된 이모들.
이모들은 여전히 생생한 첫 조카였던 저와 관련된 추억들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우주복만 보면 우리 혜미 처음 옷 사주던 게 생각나."
"도청 집 아랫목에서 데리고 잤는데 글쎄 너무 더워해서 태열 오르고 했잖아."
추억은 돌고 돌아 지금의 이 아이가 주는 기쁨으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대망의 그날!
신랑이 출생신고를 마치고 왔습니다.
착할 선, 도울 우!
그것이 아이의 일생에 의미를 심어준 이름이었습니다.
'너의 삶이 누군가를 선한 일로 돕는 삶이 되기를 바란단다.'
이상하게 외할머니 품에서는 아이가 잘 잤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아이를 재우는 데는 젬병인지 잘 자던 아이도 제가 안아주면 불편해하며 울곤 했는데......
엄마는 포대기로 아이를 업고도 흘러내리지가 않았고, 아이도 5분 안에 잘 재우시는 육아의 달인이셨습니다.
낮동안 육아로 힘드셨을 엄마를 위해 자는 시간만큼은 확실히 주무실 수 있도록 옆방에서 주무시는 엄마의 도움 없이 신랑과의 밤샘 육아를 고집했습니다. 밤동안 아이의 울음소리가 커지면 엄마가 깨실까 미안한 마음에 아이에게 얼른 수유를 하며 아이를 재웠습니다. 아이와 밤새 자는 둥, 마는 둥 씨름을 하고 나면 새벽같이 엄마방으로 아이를 데리고 갔습니다.
"할머니~ 잘 주무셨나요? 선우 왔어요~"
"어서 와! 우리 선우~~"
그렇게 아이를 엄마방에 맡기고 다시 아침잠을 잤습니다.
곧 배고프다고 울면 일어나야 했지만 그 잠깐의 시간은 친정엄마가 주시는 꿀 같은 시간이었지요.
아이는 외할머니의 기도소리를 들으며, 찬양을 들으며, 방안을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한참을 놀았습니다.
외할머니와 맞이하는 아이의 아침
그리고 엄마와 시작하는 저의 아침은
언제나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