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나라들과 비슷하겠지. 특별히 뭐가 좋을까?' 하고 속으로 갸우뚱하는 나의 마음을 읽었다는 듯 그녀가 덧붙였다.
이렇게 라오스는 내 마음 한편에 자리 잡게 되었다. 그녀는 나 보다 10살 위지만 나와 공통된 성향을 갖고 있어 가끔 단둘이 만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게 되는 사람이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말을 기억해 두고, 그것들은 선택의 순간에 결정적 참고가 되기도 한다. 씨앗은 그렇게 떨어져서 자리를 잡고 모르는 사이 자라는 법이다.
그렇게 2023년 설날 연휴 사또(사랑 또 사랑) 가족 단체 여행지는 '라오스'로 결정되었다.
메콩강. 라오스는 아침 호텔 식당에서 바라본 희뿌연 안개가 내려앉은, 잠에서 들깬 듯, 슬픈 듯, 여유로운 듯, 풍족한 듯, 무심한 듯 흐르는 메콩강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물 반 고기 반, 풍부한 메콩강입니다. 라오스 사람들은 저 메콩강에서 물고기 잡아먹고 살아요."
가이드 말이다.
강이 살아서 생명을 낳아 키우고, 그 은혜를 누리며 살아간다는 것. 우기에 범람하는 강은 땅을 비옥하게 하고 사람들은 그 땅을 터전으로 농사를 짓고 먹고 마시며 삶을 이어간다. 과거 우리의 강도 삶의 터전이었다.
기억.
여행은 사람들의 기억에 따라 다른 이야기를 펼쳐 낸다.
나는 어린 시절 여름날, 하루 종일 강에서 놀았던 기억이 있다. 뜨거운 해가 여름 공기를 덥게 데우면 친구들과 삼삼오오 강으로 내려갔다. 뜨겁고 더운 여름날, 물놀이만큼 자유롭고 재미있는 놀이가 있을까. 우리는 물에서 입술이 새파래질 때까지 놀았다. 놀다가 몸이 차가워지면 햇볕에 달구어져 따뜻해진 바위에 누워 몸을 데웠다. 다시 몸이 뜨거워지면 물속에 뛰어들기를 반복하며 하루 해가 저물 때까지 놀았다. 남자아이들 따라 물고기도 잡고 다슬기도 잡으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강은 그렇게 살아서 우리들 삶과 연결되어 있었다.
멈춤.
라오스가 과거 어느 즈음에서 멈춘 나라라고 말한다.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멈춘' 나라일지도. 하지만 라오스 사람들에게 라오스는 어제도 오늘도 그냥 라오스이지 않을까. 멈추지 않고 이어지는 명징한 삶. 변화의 의미를 되새길 여유도 없이 빠르게 좇아오느라 잃어버린 '무엇'을 찾아서 이렇게 기억을 소환하는 여행을 굳이 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문명과 비문명이 어느 것이 더 우월하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다.
꽝시폭포 가는 길
슬픔.
아시아 곳곳은 슬픔을 안고 있다. 식민지 약탈과 침략의 상흔을 안고 살아간다. 빼앗기고 짓밟힌 곳의 아픔을 빼앗고 짓밟는 자는 모른다. 삶이 이어지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 딛고 일어서며 지켜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 슬프다.
아름답다.
푸시산의 일몰을 기다리며 메콩강을 끼고 펼쳐지는 루앙프라방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을 때였다. 그 풍경을 연신 카메라에 담고 있는 프랑스인 옆으로 한 외국인 커플의 대화가 들려왔다. 남성은 마을 곳곳에 묘연하게 피어오르는 연기를 가리키며 몇 마디 이어갔다. 한참을 바라보다 "So sad, So beautiful" 하고는 자리를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