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무실 책상 위에 바라보아 기분이 좋아지는 물건들을 놓아두는 것도 좋고, 하루 중 어느 때든 내가 좋아하고 영혼이 쉴 수 있는, 그런 기분이 드는 곳으로 잠깐씩이라도 발길을 옮기는 것도 좋다.
책상에, 남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남들이 보면 좀 부끄러우니까), 곁눈질을 하면 잘 보이는 곳에 나에게 힘을 주거나, 마음을 밝고 긍정적으로 만들어주는 글귀를 붙여두어도 좋다. 전에 근무했던 사무실은 좁은 책상과 컴퓨터가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다소 숨 막히는 분위기였다. 아마도 최고로 열악한 근무환경이었지 싶다. 나는 가끔 사람들의 책상 위를 재미삼아 보곤 했다. 늦깎이 결혼에 남들보다 다소 늦게 아빠가 된 김주무관님 책상 위에는 순둥이 아들이 웃고 있었다. 새침데기 노처녀 정주무관님 책상에는 못난이 삼형제 인형이 울고 웃고 찡그린 재미난 표정으로 그녀를 응원하고 있었다. 신앙심이 깊은 박 과장님 책상 위에는 성모마리아와 성요셉이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평화로운 성가족 조각상이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좋아하는 물건들과 함께 하루치의 삶에서 나름대로의 기쁨과 행복한 '시간을 마련' 하고 있구나 했다.
'행복은 목적이 아니라 순간순간 느끼는 것'이다.
작은 행복이라도 자주 느끼는 사람이 결국 행복한 사람이다.
작은 행복들이 몸과 마음을 기쁘게 하고 삶을 잔잔한 행복으로 채운다. 잔잔한 이 행복은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고 그들도 덩달아 행복해지게 만드는 힘이 있다. 스스로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은 주변도 행복으로 물들인다. 내가 행복해지는 일을 자주, 곳곳에 마련해 보자.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이지만 그 시간을 쓰고 누리는 방법은 모두 다르다. 시간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가 어쩌면 그 사람이 아닐까 싶다.
온천지가 봄, 봄, 봄, 봄이 왔다고 난리다.
조금만 눈길을 돌리면 아름다운 봄은 지천에 깔렸다. 자연은, 계절은 그렇게 또 우리에게 행복하라고, 기뻐하라고 말을 건다. 그냥 대꾸하기만 하면 된다. 데이트하자고 내미는 손을 덥석 잡기만 하면 된다. 데이트하자고 할 때 거절하면 다시 똑같은 기회는 없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상대의 권유를 웬만해서는 거절하지 않기로 했다. 나의 좁은 식견으로 상대의 마음을 모두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또 상대의 제안이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행복을 선사한다는 것을 알기에.
이번주는 수원에 있는 융건릉과 경기도 화성에 있는 제부도를 다녀왔다. 아들에게 짐도 갔다 줄 겸 남편이 여행지를 제안했다. 두 말할 것 없이 좋았다. 사도세자와 혜경궁홍씨, 정조와 효의왕후가 합장된 왕릉을 만나고, '언젠가'하고 미루어두었던 '제부도'를 걷고 느낄 수 있었던 선물 같은 주말여행이었다. 역사가 전공인 남편 덕분에 문화유적지를 종종 여행하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아픈 역사와 이야기를 간직한 왕릉은 숲들과 어우러져 아름다웠다. '살아생전 父子의 못다한 정을 시간을 초월하여 내내 나눌 수 있기를' 했다.
사도세자의 능은 원래 경기도 양주군 남쪽 배봉산에 있었는데 정조가 즉위하면서 아버지의 존호를 장헌으로 올리고, 1789년 이곳으로 묘를 옮긴 후 능호를 융릉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서해의 얼굴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제부도. 바닷물이 쓸려간 자리 너른 갯벌이 광활하게 펼쳐지고, 이 바다의 은혜로 제부도 사람들의 삶은 지속된다. 갯벌이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남해와 동해와 다르게 서해바다의 고유한 색채가 봄바람에 출렁이고 있었다. 보고 또 보고 싶은 풍경이었다.
바닷물이 빠진 자리 너른 갯벌이 반짝인다.
"아, 행복하다."
"아들, 이런 시간을 만들어준 아빠께 고맙다고 말해."
"아빠, 고마워요. 정말 좋네요."
아들도 연신 핸드폰 카메라를 눌러댄다. "참 예쁘네요." 자꾸 자꾸 같은 말을 내뱉는다. 좋은 풍경을 보고 따뜻한 대화를 나누는 것은 말그대로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