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신이 가진 지식과 경험치 밖에 있는 상대의 언어를 '당장' 이해하지 못한다. 감각인식이나 지적 수준의 차이일 수도 있지만 각자 통과하는 시간이 달라서다. 이솝의 청개구리 우화가 전하는 교훈은 '엄마 돌아가신 후에 후회하지 말고 살아 계실 적에 말 잘 듣자.'일지 모르나, 나는 모자가 통과하는 시간이 엇갈린 데서 연유한 비극을 본다. 아들 청개구리는 엄마 청개구리가 죽은 다음에야 엄마의 시간을 산다. 엄마 청개구리는 아들 청개구리가 계속 그 시간에 머물거라 여겨 그에 걸맞은 유언을 남긴다. 그 결과 청개구리는 비 오는 날만 되면 엄마 무덤이 떠내려 갈 것 같아 개굴개굴 울어댄다. 둘은 함께 살았으나 한 번도 같은 시간을 살지 못했다. 서로 말이 통하는 시간을 살지 못한 것이다.(<어른의 어휘력>, 24~25쪽)
책을 읽는 행위란 나에게, 내가 사랑하거나 사랑할 이들에게 당도할 시간으로 미리 가 잠깐 사는 것이다. (26쪽)
그래서 인간의 삶은 비극과 가까울 수밖에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뒤늦다. 후회는 피할 수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함께 살아도 한 번도 같은 시간을 살지 못하는 그 간극', 존재론적 비극이 인간의 숙명이기도 하다. 엄마의 갱년기를 통과하는 시간을 살면서 나는 엄마의 아픔과 고통을 실감한다. 이 거추장스럽고 변덕스러운 갱년의 시간을 좀 더 이해해 주었더라면 하고 후회한다. 아직도 살아보지 못한 엄마의 시간을 앞으로 나는 또 살면서 '엄마는 그때 그랬겠구나' 하고 시차를 두고서라도 우리가 같은 시간을 살 수 있을 것임에, '당장'은 아니라도, 나중에라도 이해할 수 있기를 한다. 그리고 엄마가 경험하는 여자로서의 감정 등등을 딸과 대화를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쩌면 각자 통과하는 시간이 달라서, 어쩌면 더욱 각자의 삶에 충실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하고 동시에 생각한다. 그래도 '인생에 후회를 남기지 말라'는 조언을 받아들인다면, '내가 사랑하거나 사랑할 이들에게 당도할 시간'을 '책을 읽는 행위'로 미리 당도하여 잠깐 살기도 하면서 후회를 줄일 수 있다고 하니 간접경험으로라도 '경험치'를 넓히기 위한 노력을 부단히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