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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아름다운 詩

<엄마의 꽃씨>, 100명의 어머니가 쓰고 김용택이 엮다.

by lee나무

사십 년 전 편지

조남순


사십 년 전 내 아들

군대에서 보낸 편지

언젠가는 읽고 싶어

싸움하듯 글 배웠다


뜨는 해 저무는 하루

수없이 흐르고 흘러

뒤늦게 배운 한글 공부

장롱 문을 열어본다


사십 년을 넣어둔

눈물바람 손에 들고

떨리는 가슴으로

이제야 펼쳐본다


콧물 눈물

비 오듯 쏟아내며

사십 년 전으로 돌아간다


사십 년을 장롱 속에 꼭꼭 넣어둔 그 마음을, 어떻게 감히 알 것 같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자신보다 소중한 아들이 군대에서 보낸 편지를, 사십 년이 지나서, 아들이 환갑이 훌쩍 넘긴 지금, 팔순을 넘긴 어머니는 빛바랜 아들 편지를 '콧물 눈물 비 오듯 쏟아내며' 읽어봅니다. 얼마나 읽고 싶었을까요? '뜨는 해 저무는 하루 수없이 흐르고 흐른' 세월을 어떻게 기다렸을까요? 사랑은 이런 건가 봅니다. '사십 년을 넣어둔 눈물바람 손에 들고 떨리는 가슴으로 펼쳐보는',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닳지 않는, 영원히 연결된 사랑인가 봅니다.





아버지 생각

박기화


단발머리 까만 교복 하얀 에리 제쳐 입고

아침 일찍 종종걸음 학교 가는 아이들

담장 너머 그 모습이 너무나도 부러워서

꼴망태 둘러메고 눈물콧물 흘렸어요


농사일로 고생하는 부모님이 안쓰러워

말 한마디 못해보고 논일 밭일 일만 하다

연로하신 아버지께 뒤늦게서 원망하니

마음 아파 슬피 울던 울 아버지 생각나네


그렇게도 메고 싶던 그 책보는 아니지만

더 좋은 가방 메고 문해학교 다니면서

평생 쌓인 한을 풀며 새 인생을 시작하니

하늘 계신 아버지가 새록새록 그리워요


옛날 우리 부모님 세대의 어린 시절은 너무 빨리 철들어야 했습니다. '농사일로 고생하는 부모님이 안쓰러워' 학교 가고 싶다고 '말 한마다 못'하고 속에 넣어두고 참고 참고 그렇게 어린 마음을 숨겼습니다. 꼭 꼭 숨겨둔 마음을, 한참 세월이 흐른 뒤 꺼내어 아버지께 원망의 말을 쏟아낸 날, 아버지 마음은 더 찢어졌겠지요. 아버지는 '자식 공부도 못 시킨 아비가 뭔 아비여' 하며 지난 세월이 허망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각자 통과하는 시간이 달라서' 서로 원망하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시간을 살면서 딸은 '하늘 계신 아버지가 새록새록 그리워'집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짙어지는 것임을 느낍니다.





나의 꿈

이분녀


어릴 적 나의 꿈은

남의집살이 안 하고

배불리 밥 먹는 것이였네


젊은 때 나의 꿈은

새벽부터 일어나 밭일하며

자식새끼 배불리 밥 먹이고

학교 내 힘으로 보내는 것이였다


지금의 내 꿈은

삐뚤거리는 글씨로

죽은 남편 묘 위에

'고맙다'는 글 한번 써서

그리운 남편 옆에서 잠드는 것이라네


어머니의 꿈은 '삶, 생존 그 자체'였습니다. '배불리 밥 먹고 자식새끼 배불리 밥 먹이고 학교 내 힘으로 보내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어머니의 꿈은 언제나 가족을 향하고 있습니다.

나는 어떠했지 생각해 봅니다. 결혼하고 아이들이 태어나고 한 가정을 이루면서는 '나의 꿈'도 가족과 가장 탄탄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선택한 사람, 나와 가장 가까운 인연을 맺은 남편과 아이들이 나로 인해 마음 아파하거나 불행해지지 않게 늘 염두에 두자. 아이들이라는 소중한 보물을 얻었는데 고난이 없기를 바라지 말자.' 지금의 나의 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자기 몫의 삶을 살아감에 정신적 기댈 곳이 되는 부모, 엄마 아빠를 생각하면 행복한 기억들이 떠올라서 웃음이 피어오르는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할미 꿈

김생엽


아주 까막눈 때는

공부가 꿈이엇는디

인자 쪼맴 눈뜨니

애미 업는 손자 고등학교

마칠 때까지 사능기 꿈이요

내 나이 칠십다섯잉께

얼마나 더 살랑가 몰라도

우찌등가 즈그 앞가름까지

잘 거더 매기고 다부지게 살 거시요

그것이 이 할미 꿈이요


학교에서 일하다 보면 결손가정 아이들을 종종 만납니다.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은 아이들은 세상으로 나아감에 '큰 걸림돌 하나' 안고 살아갑니다. 그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믿고 자신을 지긋이 바라봐주는 한 사람의 어른'이라고 합니다. '우찌등가 즈그 앞가름까지 잘 거더 매기고 다부지게 살 거시요' 하시는 김생엽 할머니 같은, 다부진 어른이 정말 멋집니다. 요즘은 김생엽 할머니 같은 어른 뵙기가 힘든 세상이라 더욱더 훌륭하게 느껴집니다.





첫 답장

박순자


부엌 문에 붙어 있는 쪽지

고이 접어 일터로 가져갔다


옆 친구에게 읽어달라 하니

"어머니! 오늘도 수고하세요

사랑합니다!" 란다


며느리의 사랑 읽고 싶어서

난 오늘도 학교에 간다


내일은 나도 쪽지 붙여볼란다

"며늘아, 너도 수고하렴

그리고 사랑해"라고......


글자를 배우는 이유, 글을 읽는 이유, 서로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나의 보물, 동백나무 한 그루

조매현


우리 집 앞마장에 동백나무 한 그루

남편이 시장에서 사오신 동백나무

심은 지 2년이 되던 해 먼 세상으로 가벼렸다

그 동백나무는 무럭무럭 잘 자랐고

그 이듬해부터 해마다 꽃이

탐스럽게 피어 내가 아침마다

쓰다듬으며 칭찬도 했다


지난겨울이 얼마나 추웠는지

잎이 얼어버렸다

그것을 본 내 마음은

남편을 두 번 잃은 것 같았다

다음해 끝순해서 새싹이 돋아나

얼마나 반가웠는지 눈물이 났다

남편이 선물한 나무 한 그루가

나에게는 아주 소중한 보물이다


부부. 피는 물보다 진하다지만 피한방울 안 섞였는데도 부모형제보다 더 가까이서 더 많은 세월을 동고동락하며 서로의 반려자로, 동반으로, 친구로, 연인으로 살아갑니다. 그렇게 살다가 한 사람이 먼저 먼 길을 떠나면 남은 한 사람은 '아침마다 쓰다듬으며' 추억하고 힘을 얻을 '나무 한 그루' 필요한 거지요. 둘이 함께 떠날 수 없다면 남은 한 사람을 위해 남은 생을 견디고 힘이 될 '나무 한 그루' 잘 준비해야 할텐데요.






동생이 준 시집. 개인적으로 모호한 시보다 구체성을 띈 산문을 더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 시집을 펼치는 순간부터 손을 뗄 수 없었습니다.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진솔한지요. 시란 이처럼 '진솔한 삶을 담을 때 진정한 시가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브런치에 옮겨 쓰고 싶은 시들이 수두룩한데 그러다가는 끝을 못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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