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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나무 May 26. 2023

그저 바라만 보아도

그림, 그저 바라보아 좋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클림트가 그의 연인 에밀리에게 하트를 가득 채워 마음을 전한 편지



멍하니, 가만히, 그저 바라만 보는데 하염없이 그리워지기도 하고, 위로받기도 하며, 하염없이 편안해지기도 하는,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 사물, 음악, 그림, 공간 등이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 그림은 그런 존재 중 하나이다. 화가, 그림, 미술사 등에 대한 전문적 지식은 나에게 거의 없다. 들어도, 읽어도 그때뿐, 기억하지 못한다. 이미지만 덩그렇게 머릿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일부러 애써 기억하기 위해 노력도 하지 않지만 그림과 그림의 제목을 연결하는 것조차도 나에게는 쉽지 않다. 나는 그림이 좋아서 그저 바라보는, 그림을 통해 휴식을 취하는 그런 부류인 듯하다.


미술을 전공하는 많은 전문가들이 화가의 시대와 삶을 알면 작품을 더 잘 이해하며 감상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에 많은 부분 동의하지만, 한편으로 지식이, 아는 것이 또 사람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다.)

나의 경우 이해하기 어려웠던, 예를 들면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의 그림이나, 불안과 우울한 이미지가 주를 이루는 뭉크의 그림들은 화가의 삶을 읽고 나서 새롭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다룬 이러한 그림들은 '가만히' 바라보기는 다소 어려운 종류의 것들이어서, 다른 말로 하면 '불편하기도' 하여, 대개는 얼른 페이지를 넘겨버리게 된다.


내가 선호하는 그림은 따뜻한, 오후의 햇살이 나른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 있는, 자연과 인간이 교감하는, 화가의 시선에서 자연과 사람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그런 종류의 그림이다.


구스타프 클림트라는 화가의 이름을 몰라도 그의 그림 '키스'는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작품이다. 사랑하는 남녀가 입맞춤하는 순간의 몸짓, 표정, 감정을 이처럼 황홀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 그림 하나로 나는 '클림트'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되었고, 그의 그림을 소재로 한 영화 '우먼 인 골드'도 찾아보았다. 하나에 대한 관심은 종종 또 다른 호기심으로 연결되어 아마추어적인 방법으로 앎의 영역을 확대해 나가게 된다고 할까그의 대표작으로 거론되는 황금빛 화려한 인물 중심의 작품들과 매우 대비되는 수많은 풍경화를 남겼다는 사실과 과거에 내가 잠자리에 들기 전 즐겨 보았던 그림책의 표지 그림이 클림트의 풍경화 중 하나임을 알고 적잖게 놀랐다. 그 그림 하나로 하루의 피곤을 잊곤 했었는데......


얼마 전 서점에서 그림에 관한 책을 보다가 그의 또 다른 풍경화 <아트제 수>를 발견하였다. 그의 평생 사랑이었던 에밀리 플뢰게와 함께 여름을 보냈던 호수의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산호색 바다를 연상케 하는 이 그림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위안이며 휴식이다. 그들의 평화와 사랑이 이토록 고스란히 그림을 '보는 사람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힘. 그는 에밀리에게 400 통도 넘는 사랑의 편지를 보냈다는데, 덧붙이자면 위의 그림, 검은 선과 붉은 하트로만 이루어진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엽서 같은 그림이 어떤 사랑의 말보다 '사랑스럽고 귀엽지' 않은가.


구스타프 클림트,  <아트제 호수>


전문적인 미술 평론가들이 극찬하는, 한 시대를 정의하는, 미술사에서 한 획을 긋는 그림들에 대해  나는 '무지한'이다그냥 보아서 좋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 그림을 대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재미있는 것은 좋아하게 되면 또 언젠가 알게 되더라는 것.


우연찮게 음악과 미술에 관한 연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아니다. 직장에서는 해마다 몇 시간의 직무연수를 요구했고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음악과 미술에 대한 기본 소양을 쌓아볼까 하는 요량으로 연수를 듣게 되었다.

앙리 마티스는 학창 시절 '야수파 화가' 정도로 배웠다. 그의 작품이라면 나체의 사람들이 손을 잡고 춤을 추는, 붉은색과 초록, 파랑 세 가지 색으로만 단순하게 그려낸 '춤'이 떠오른다. 솔직하게 나는 미술사에서 대표작으로 소개하고 잘 알려진 작품 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에 더 이끌린다. 많은 전문가들이 여러 이유를 들며 칭찬하는 그림들은  내가 아닌 그들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고, 내 부족한 식견으로 '그 의미들'을 이해하기 어렵기도 해서 그런 것 같다. 마티스가 생을 마감하기 직전 암으로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면서 병상에서 '컷아웃'으로 작업한 작품이 나에게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햇살 좋은 날, 바닷속, 생명, 평화로움, 희망과 꿈, 수용, 자유로움........ 이런 낱말들이 연상되는 그림. 가만히 바라보며 마구마구 상상하게 되는 그림.


앙리 마티스, <폴로네시아 바다]>, 컷아웃 기법으로 만들어진 그림


프랑스 니스 외곽 방스에 가면 앙리 마티스가 죽기 직전에 건축의 설계와 모든 디자인 작업에 참여했던 '로사리오 성당'이 있다는데. 사진으로 만난 그곳은 고요함, 단순함, 간결하고 본질적인 것만으로 만들어진 한 폭의 그림 같다. 마티스는 수술 후 그를 극진하게 돌봐 주었던 수녀가 된 간호사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성당 디자인 작업에  심혈과 정성을 쏟았다고.  '로사리오 성당'이 가진 이야기도 아름답지만, 자꾸만 바라보고 싶은 그런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로사리오 성당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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