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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나무 Jun 01. 2023

실루엣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건네는 그림

영국이 사랑한 화가, 윌리엄 터너

<해 질 녘>,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 출처 네이버


하늘이 노랗게, 붉게 물들었습니다. 해 질 녘입니다. 바다도 하늘처럼 붉게 물들었습니다. 화폭에 담긴 실루엣들이 무엇을 그려내고 있는지 유심히 들여다봅니다. 멀리 높은 종탑 같은 것이 보입니다. 성당일 것 같습니다. 바다 위로 희미하게 다리가 놓여있고 다리 위로 노란 해가 떨어지기 직전입니다. 눈길을 가까운 곳으로 옮겨봅니다. 두 마리 말이 끄는 마차가 멈추어 있습니다. 마차를 탄 사람들도 노을과 노을에 물든 도시와 바다를 바라보며 하루의 피로를 잊는 듯합니다. 일몰의 순간이 여운을 깊이 남깁니다.


그림은 영국인이 사랑하는 화가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의 작품입니다. 영국 '내셔널갤러리'에는 윌리엄 터너의 작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십 년 전 내셔널갤러리에 들렀을 때는 왜 이 그림을 보지 못했을까 싶네요. 나이가 들어서일까요? 이처럼 실루엣만으로 많은 것을 상상하게 하는 그림이 좋아집니다. 그림에 대한 앎이 쌓일수록 그림을 보는 안목도 커지고 더 풍성하게 즐길 수 있겠지만, 나의 성향이 '직관적'인 면이 많아서 우선 그림이 눈에 띄어야, 그리고 마음 안에 머물러야 궁금증이 생기고 이것저것 찾아보게 됩니다. 윌리엄 터너에 대해 검색해 보니 19세기 프랑스 인상주의 화풍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모네의 <해돋이>라는 그림이 <해 질 녘>와 비슷한 느낌이 있습니다.



<산 조르지오 마조레 성당>,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 출처 네이버


물 위로 배가 떠 있고, 성당도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안개가 낀 날일까요? 멀리, 화가의 눈에 보이는 그대로 성당과 배의 모습을 화폭에 담은 것일까요? 원거리에 있는 풍경의 느낌을 살린 것 같기도 하고 물의 도시 베네치아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선택한 기법 같기도 합니다. 또렷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더 많은 상상을 하게 하는 역설입니다. 어쩌면 보아도 못본 척, 들어도 못들은 척, 실루엣만, 본질만 볼 수 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지혜와 연결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떠나온 뒤, 세월이 흐른 뒤, 기억에 남는 것은 디테일이 아니라 '그때 그곳의 느낌', '그때 그 순간 감정'인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림이 가진 힘입니다. 화가가 산 시대와 나라로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그곳을 동경하고 상상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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