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길이 닿는 곳에 마음이 쉬고

오래된 동행 나의 반려식물

by lee나무
사시사철 꽃이 피고 지고, 제라늄

날이 따뜻해지면서 아침에 일어나면 베란다로 나가 나의 식물들에게 '굿모닝' 인사를 한다. 추위에 매우 약한 나는 겨울 동안 베란다로 나가는 것조차도 용기가 필요한 사람이다. 미안하지만 실내 겹창으로 그들의 안부를 확인하고 물을 줘야 할 때를 살피고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 나의 식물들은 이미 주인의 성향에 익숙해져서, 스스로 겨울을 잘 지낸다. 그리고 봄기운이 감돌면 어김없이 새 잎을 내밀어 '이제 그만 망설이고 나와요' 한다.


대단할 것도 없지만 나의 식물들은 여러 가지 연유들로 우리 집에 왔고 나이도 제법 많다. 가장 나이가 많은 것은 '파키라'이다. 파키라는 딸아이와 동갑이다. 딸아이를 임신하고 기념으로 집에 들였다. 들이자마자 1년도 안되어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다. 산후조리원에서 2주, 딸아이가 패혈증으로 병원에 입원했던 2주간 집을 비운 사이였다. '어떻게 이렇게 물 한번 안 줄 수 있냐'며 무심한 남편에게 투덜거렸던 기억이 있다. 마른 가지를 정리하는데 굵은 밑동에서 나온 가지 하나가 탱탱하니 탄력이 남아 있었다. '아, 뿌리가 살아있구나' 싶어서 물을 주고 보살폈더니 다행히 새 순이 돋아났고, 그 이후 줄곧 같이 살고 있다. 멜라니 고무나무는 아들아이와 나이가 같다. 고무나무는 남자아이의 왕성한 에너지를 그대로 닮아 쑥쑥 잘 자랐다. 베란다 천정까지 줄기가 뻗어 몇 번 가지치기를 해주어야 했다. 17층 높은 아파트의 베란다가 식물에게 좋은 환경 일리 없는데도 지금까지 잘 자라주어 고맙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나의 식물들을 들이면서 의미를 부여했던 대로 그들을 마치 나의 딸, 아들 보듯 했으니까.

멜라니 고무나무와 파키라

제라늄은 교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가지 하나를 집으로 데려오면서 기르게 되었다. 아이들이 장난치다가 제라늄을 건드렸는지 잔가지가 부러졌고 종이컵에 담아 집으로 가져왔다. 물컵에 담아 두었더니 몇 날이 지났을까 하얀 뿌리가 부러진 가지 끝에서 자라났다. 이후 빈 화분에 옮겨 심었는데 용케 자리 잡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다. 마음대로 들쭉날쭉 자라 정돈된 맛은 없지만 사시사철 꽃이 피고 지고 하는 터라 겨울에도 꽃구경을 선물하는 고마운 아이다.


게발선인장은 누군가 학교 화단에 던져둔 것을 화분째 데려와서 키웠는데 벌써 십 년도 더 지났다. 이 아이가 봄이면 분홍색 꽃을 활짝 피운다. 겨우내 숨죽이고 있어 '올해는 꽃을 못 보려나' 하며 기대를 내려놓고 있으면, 4월 어느 무렵 뾰족 꽃봉오리를 내민다. 얼마나 기특한지 모르겠다. 아무렇게나 내버려 둔 것이 미안해서 꽃대를 세워주고 '이뻐라', '고맙네' 하며 한번 더 쳐다보게 되는 아이다.

올해도 게발선인장에 꽃봉오리가 맺혔다


식물은 그저 좋아서 키우고 있다. 식물을 키우는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가끔 쌀뜨물, 우려낸 찻잎, 커피 찌꺼기를 거름으로 주기도 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무심할 때도 있다. 그런데도 이 아이들이 지금껏 잘 자라고 있어 고맙다. 바라보면 들뜬 마음이 안정되고 기분도 좋아진다. 남들처럼 멋진 화분을 키우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은 데려오거나 얻은 것들이라 제멋대로 자라고 있는데 나는 오히려 그것이 더 좋다. 깔끔하고 정돈된 맛은 없지만 오랜 시간 함께한 애정과 애틋함이 있다.




베란다에 나가는 이유, 그곳에 나의 식물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을 주고, 마른 잎과 줄기를 떼어주고, 지는 꽃대와 꽃잎을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와 마주하게 된다. 손길이 닿는 곳에 마음이 쉬고 이 아이들을 매만지며 어느 순간 내가 위안받고 있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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