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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나무 Mar 09. 2024

소통은 자연스럽게

소소하지만 따듯한 관심으로 소통합니다.

3월 첫 주가 지났다. 올해는 삼일절이 금요일이다 보니 새 학년 시작주가 꼬박 5일이 되었다. 그만큼 선생님들의 긴장감도 길었다. 삼일절이 화, 수요일 정도에 끼어 있으면 이틀이나 사흘 근무하고 주말을 쉬면서 새 출발로 인한 긴장과 피로를 조절할 수 있는데 말이다.


교사 시절,  나는 3월을 보낸 후 어김없이 감기몸살을 앓았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하듯, 한 해의 학급 살이는 3월이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급 아이들 이름을 외우고, 아이들 특성을 파악하고, 아이들과 함께 학급의 규칙을 정하는 등 세심하게 챙겨야 할 것이 많다. 2월 봄방학부터 준비하기 시작해서 학급 및 학년 교육과정 세우기, 학교 교육과정 설명회, 학급 환경 정리도(90년대 초등학교는 학급 환경 미화에 대단한 정성을 기울였다.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학교 관리자분들이 각 교실을 돌며 평가를 했다. 보여주기식 교실 환경 꾸미기에 왜 그토록 집착했는지 그 당시 교사인 우리는 불평이 많았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과 관계 설정인데 말이다.) 3월 말까지 마무리해야 했다.

또한 교사는 교사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분위기 파악(?)하느라 온 신경을 곧추 세우는 시기가 바로 3월이기도 하다. 이 관계 설정이 잘 되어야 학급 레일은 가끔 터널을 통과할지라도 무사히 종착역에 도착할 수 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친근하면서도 결코 만만해 보이지 않아야 하며( '아이들도 선생님 간 본다'는  말을 우리는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선생님께 사랑받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서로 눈치를 살피며 긴장 속에 있으니 아이들도 교사도 몸살을 했다. 봄날의 날씨 탓으로 돌리기엔 시작에 대한 기대와 부담, 잘하고 싶은 마음의 몸살이었다. 그 긴장감이란 것도 계속될 없는 법. 3월 마지막날을 기점으로 몸살기운이 덮치고 아이들도 선생님도 스르르 조금씩 긴장을 풀며 서로 조금씩 타협하며 일상을 그려나간다. 그래야, 조금씩 구멍이 있어야,  선생님도 아이들도 살 수 있으니까 말이다. 살짝 허용된 느슨함 속에서 사랑도 꽃피고 추억도 쌓이고 선생님도 아이들도 성장하게 된다.




부임 첫날 교직원 첫 모임이 있었다.(전체 교직원 모임은 한 달에 한 번 있다.) 일반적으로 교직원과 교장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 '거리'가 있다. 아이들이 담임 선생님을 살피듯 선생님들도 교장이 어떤 스타일인지 스스로 파악하기 전까지는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고개를 들어 교장과 눈을 맞추는 선생님들은 거의 없다. 고개를 숙인 채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자'는 제스처를 소극적으로 표현하면서 말이다. 내가 교사시절 때 교장의 말이란 지시, 지적이 많았고 가끔 사자성어를 섞은 훈화로 이루어졌다. 선생님들은 교사수첩에 낙서를 하며 그 시간을 죽이곤 했다.(그 당시 교직원 전체 모임은 매주 있었다.) 지금은 학교가 수평적으로 많이 바뀌었다. 그래도 여전히 관리자인 교장과 선생님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지만 서로 느끼는 '선'이 그어져 있다. 역할이 다르고 입장이 서로 다르니까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선의 굵기가 점점 굵어져서 벽이 되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선'을 지키되 서로 넘나들 수 있어야 한다. 넘나들어야 자연스럽게 소통하게 되고, 신뢰가 쌓이고, 각자의 결대로 행복하게 학교 생활을 할 수 있다. 교장이 되기 전 나에게 선배 교장선생님들도 후배 교사들도 공공연하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충고하곤 했다. "교장이 되면 교장실에 가만히 앉아 있어야지 복도 순회하고 그러면 안 돼요. 선생님들이 싫어해요." 그럴 때마다 나는  "나는 돌아다닐 건데요. 밥값 해야지요" 하며 농담 섞인 톤으로 응하곤 했다. 마음속으로 '소통을 멈추면 끝이지' 되뇌며 말이다. 돌아다니는(?) 목적이 선생님들 마음에 와닿으면 되는 것이니까. 감시가 아니라 '소통'이 목적이면 달라진다.


첫 교직원 모임에서 학급 경영에 필요한 팁, 특히 학생과 학부모와의 관계에 대해 짧게 이야기했다. 학교가 악성 민원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에서 선생님들을 지키기 위한 셀프 무기 하나라고나 할까. 그리고 땅을 잘 고르고 씨앗을 뿌리고 가꾸듯 3월 출발점에 선 이 자리에서 아이들과 관계 설정이 중요함을 짚었다. '사랑을 바탕으로 한 단호함'이 필요하다고. 아이들과 일대일로 만날 때는 사랑과 포용이, 전체를 대상으로 만날 때는 허용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분명하고 단호하게 인지시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금쪽이'가 많아지면 교실은 순조롭게 항해할 수 없으니까.




첫 주, 긴장 속에서 애썼을 선생님들을 격려하고 싶었다. 부임을 축하하며 지인이 보내준 견과류를 에코백에 챙겨 넣었다. 유치원부터 들렀다.

"선생님, 일주일 동안 수고 많았어요. 주말 푹 쉬셔요!"

"어머, 교장선생님. 감사합니다. 교장선생님도 주말 잘 보내세요!"

가볍게 인사를 하고 2층 급식소로 향했다. 급식 정리를 끝내고 휴게시간인 모양이었다.

"똑똑. 한 주 동안 맛있는 급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급식소 식구만큼 견과류가 담긴 병을 내밀며 인사했다.

"교장선생님, 매번 이렇게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학교 급식이 정말 맛있어요. 하하."

급식소를 나와 1학년부터 6학년 교실을 차례로 방문하기로 했다. 11 학급의 작은 규모 학교라 전 교실을 둘러보아도 금방이다. 교장이 교실문을 노크하면 당황할까 봐 최대한 자연스럽고자 몸과 마음을 다잡았다.

"똑똑."

"어머, 교장선생님!"

"일주일이 길었지요? 이거 선물!" 가져온 견과류를 내밀며 대화를 이어갔다.

"운동삼아 왔어요. 교실이 아늑하고 온기가 있네요."

새롭게 지어진 지 6년이 된 교실은 밝은 톤으로 아기자기하게 디자인되어 따뜻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꼬박 5일이라 힘들었어요."

"맞죠! 삼일절이 중간쯤 있어야 숨을 돌리는데..." 선생님의 그 마음을 모를 리 없지 않은가!

"맞아요. 다른 때는 몰라도 시작하는 주 5일은 가혹하게 길게 느껴지지요. 하하. 주말 푹 쉬셔요!"


원로선생님께서 맡고 있는 교실에 이르렀다. 뒷모습을 보면 삼십대로 착각하게 되는 외모를 가지고 계시다. 일단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길고 몸과 옷매무새도 젊음이 묻어난다. 점심시간에 교감선생님께서 귀띔을 해주어서 원로교사인지 알게 되었다. 정말이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외모를 가지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근** 이시라면서요. 아니 근데 왜 이렇게 젊으신 건가요?"

"하하하, 하하하, 딸이 둘이면 이렇게 됩니다. 하하하." 선생님은 얼굴 가득 함박 웃으며 나를 맞이했다.

"교직 선배님이신데 젊고 활기찬 모습 정말 보기 좋습니다."

"교장선생님이 너무 젊어서 제가 더 놀랐습니다. 하하. 지금까지 본 교장선생님들과 스타일이 달라서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하하."

"제가 좀 그렇지요.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하하."

"아니, 아니에요. 에너지가 밝아서 참 좋습니다."


나보다 4년이 선배이신 선생님과 하하 호호 웃으며 일주일 간의 노동의 긴장을 풀었다. 한 주를 보내며 행정실 직원, 청소여사님, 배움터지킴이님, 급식소 직원들과는 마주할 일이 종종 있었는데 선생님들과 일대일로 얼굴을 보며 만나지는 못했다. 일부러 시간을 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학교 교장실은 1층 오른쪽 외진 곳에 있다. 아이들과 선생님들 통행이 거의 없는 곳이다. 일부러 교장이 나서지 않으면 고립되기 알맞은 장소이다. 동물학자 최재천 교수님은 '수 베짱이가 짝을 구하기 위해 식음을 전폐하고 하루 종일 뒷다리를 날개 가장자리에 비벼대는 중노동을 마다하지 않는' 예를 들면서  '소통은 원래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필사적이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아침 맞이하면서 아이들의 얼굴 표정을 살피고 좋은 하루가 되도록 응원하는 것, 쉬는 시간, 점심시간 틈틈이 운동장으로 나가 아이들 목소리를 듣는 것, 선생님들의 교육활동에 넌지시 관심을 표하며 격려하는 것, 직원들의 안부를 묻고 감사의 인사를 하는 것 등 사소하지만 따듯한 관심으로 소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견과류병과 '서로 사랑하라' 새겨진명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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