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묵칼레 지역에 있는 로마의 도시국가 히에라폴리스.
검색해 보니 페르가몬의 왕 에우메네스가 기원전 190년 경에 건설하기 시작한 도시 유적지로 로마와 비잔틴 시대에 가장 번성하였다. 12세기 셀주크 튀르크 시대에 도시 이름이 히에라폴리스에서 지금의 파묵칼레로 바뀌었다. 1354년 대지진으로 도시가 사라졌지만, 1887년 독일의 고고학자들이 이곳을 발굴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도시가 얼마나 번영했는지 그 규모와 화려함, 정교함이 말해 주고 있었다. 당시 1만 5천 명을 수용했다고 하는 원형극장은 원형대로 보존되고 있고 다양한 형태의 1천 기의 무덤, 신전, 성문 등은 형태가 대부분 해체되었지만 당시의 건축 기술과 도시의 번영을 가늠하기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대지진으로 도시는 파괴되었고 사람들은 이곳을 떠났고, 도시는 버려졌다. 버려졌기에 사라지지 않을 수 있었고 발굴되고 복원되어 그 번영을 증명하고 있다.
길게 보면 불운이 불운만은 아니었던 경우는 쉽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역사에 '만약에'라는 가정은 소용없는 일이지만 우리는 종종 '만약에' 하면서 역사를 통해 지금을 성찰하고 더 나은 선택을 하고자 한다. 그러나 더 나은 선택이라고 믿었던 것이 불운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길게 보면 운과 불운은 뒤바뀌고 전환한다. 알 수 없으므로, '최선으로 노력하되 결과는 수용하는 것'이 인간이 할 일이라고 역사는 말하는 듯하다.
가이드 말에 따르면 이 원형 극장은 복원한 것이 아니라 원형대로 보존된 것이라고 한다.
원형 극장 건축 양식이 매우 정교하고 아름답다.
로마시대의 유적을 보노라면 그들의 건축 기술과 미의식이 얼마나 수려했는지 감탄하게 되고, 그 아름다움에 매료된다. 몇 천년을 살아낸 돌의 생명력과 질감, 그것이 뿜어내는 아름다움은 경이에 가깝다. 질리는 법이 없다. 적어도 나에게는. 손으로 만져보고 눈으로 응시하고 가슴으로 느껴본다. 원시의 돌에 특별한 형태를 불어넣은 석공의 예술혼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동시에 도시 건설에 동원된 수많은 노동력과 석공들의 피땀, 희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모든 화려한 영광 뒤에는 그와 비례한 희생이 동반되기 마련이다. 기계가 발달하지 않았으니 오로지 노예의 가혹하고 혹독한 노동에 의존했을 텐데, 무거운 돌을 채굴하고 옮기고 자르고 다듬는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숙연해졌다. 나는 하느님을 가르침에 따라 살고자 하는 신앙인이다. 이런 역사의 현장에 서면 신앙인인 나는 '하느님, 제발 천국이 있어서 가난하고 힘없는 그들이, 고되고 고된 노예적 삶을 살았던 그들이 부디 천국에서 평화롭고 행복하도록 자비를 베푸소서' 하고 기도하게 된다. 시대가 그랬고 인간은 시대를 벗어나 살 수 없다고 하지만 나는 이럴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오래된 역사 유적을 접할 때마다 역사란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한다. 유적이 화려하면 할수록, 규모가 장대할수록, 희생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후대는 그 조상들 덕에 잘 먹고 잘 살며 그 번영을 누린다. 악덕 군주를 비판하다가도 그들이 남긴 유산 덕을 톡톡히 보고 있으니 결국엔 '역사란 그런 거지' 하며 대충 얼버무리게 되는 것 같다. 그런 까닭에 지금도 푸틴이나 네타냐후 총리 같은 사람들의 설 자리가 있는 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역사 유적은 여러 질문을 던진다.
아치형 성문과 다양한 형태의 정교한 기둥은 견줄 수 없는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다.
터키 여행을 계획하며 내 마음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 것은 '에페소'이다. 신앙인이 되고 난 후 나는 여행할 때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그 지역의 성지나 성당을 방문하는 것이다. '에페소'는 그리스 로마 유적으로 유명하지만 기독교인에게는 사도 바울의 선교 여행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사도 바울이 선교여행을 하며 에페소에서 교회를 세우고 3년간 거주하기도 했고, 로마의 감옥에서 2년간 수형생활을 하며 쓴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으로 나에게 친숙한 곳이다. 사도 요한이 성모 마리아가 승천하기 전까지 함께 살았던 거처도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니, 에페소는 신앙인들에게는 또 따른 의미가 있는 곳이다.
에페소는 터키에서 볼 수 있는, 단연 최고의 아름다운 곳이라는 생각이다.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어도, 대리석 바닥을 걸으며 주변의 헬레니즘 양식의 성벽과 기둥, 건축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탄성이 절로 나고 그 아름다움에 취하는 곳이다. 터키 남부의 뜨거운 태양도 무색하다.
에페소는 2,500년 보다도 훨씬 전,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로 건설된 고대도시이다. 에게해 연안에 자리하고 있는 에페소는 수천 년 전부터 중요한 상업의 요충지로, 고대 문화의 꽃을 피운 예술과 문명도시로 발전했다는 설명이다. 기원전 6세기에 세워진,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이름을 올린 '아르테미스 신전'은 참으로 아름다운 건축물인데 현재는 터만 남아 있어 안타까웠다. 유시민의 <유럽도시기행>에는 신전의 기둥은 이스탄불의 '지하 궁전'을 만드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비잔틴 제국 시절 가톨릭을 믿었던 그들에게 그리스 신을 모시는 신전은 제거 대상이었으니. 과거 없는 현재가 없으며, 현재는 늘 과거의 선상에서 출발하는 것인데도 좀 더 통크고 폭넓지 못한 인간은 이전 역사의 흔적을 지우거나 해체하는 것에서부터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고자 했다. 새 권력을 굳건하게 하고 강력한 통치를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 그래도 여전히 아쉬운 점은 있다.
2만 5천 명을 수용했던 원형 대극장에서 공개적으로 기독교 박해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눈여겨볼 포인트가 많지만(하드리아누스 황제 기념 신전, 수세식 공중 화장실, 분수대, 그리스 신화 조각들, 하렘, 주거지 등) 독보적인 자태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곳은 '셀수스 도서관'이다. 135년 아시아의 주 총독으로 에페소에 부임한 율리우스 아퀼라가 70세에 죽은 그의 아버지 셀수스를 기리기 위해 무덤 위에 세운 도서관이다. 정말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이곳에 양피로 만든 1만 2천여 권의 장서가 보관되어 있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기록하고 도서관에 보관했으니, 설계도를 보며 원형에 가깝게 도시를 복원할 수 있는 것이다. 셀수스 도서관을 장식하고 있는 4명의 여신상은 지혜, 운명, 학문, 미덕을 상징한다는 설명이다. 아름다움과 문명을 이끈 철학을 모두 담은 셀수스 도서관은 정말로 여유를 갖고 머물며 느끼고 싶었지만 패키지 여행자인 나에게 시간은 너무나 짧게 허락되었다.
셀수스 도서관 전경
셀수스 도서관을 장식한 문양과 여신상은 바라보면 볼수록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섬세하고 정교한 조각은 극도의 고상하고 우아하며 품격 있는 아름다움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리스 로마 유적을 보며 나도 모르게 의문이 들었다. '나는, 우리는 왜 고대 유적에 이토록 열광하는가! 무엇이 이토록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가!' 하고 말이다.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고 우리는 학창 시절에 역사를 배우며 무의식 속에 그들의 문화를 우월하게 여기도록 세뇌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기까지. 명쾌한 해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어쩔 수 없이 나는 그리스 로마 문화유산에 매료되고 마음을 빼앗겼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조각이 돋보이는 여신상
영원한 것은 없다. 권력도 영예도 번영도 영원할 수 없다. 항구 기능을 상실하고 말라리아가 유행하면서 에페스도 버려졌다. 버려졌기에, 사람이 살지 않았기에 다시 복원되어 그 시대를 증언하고 있다. 사람이 살았다면 이곳의 흔적은 곳곳으로 흩어졌거나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신의 뜻이었을까! 이렇게 하여 몇천 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한 것일까! (이곳 에페소는 1896년 오스트리아 고고학자에 의해 발견되었고 현재 발굴된 것은 전체의 10% 정도이다. 모두 발굴하려면 300년 이상 시간이 걸린다는 설명이다.)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조차 모르는 나약한 인간에게 보다 큰 안목으로 보는 지혜를 가지라고 말하는 것일까!
기억은 언제나 불완전하여 사진을 자꾸만 찍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