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는 지역 공단이 위치한 도시 소외지역에 있다. 부모님의 대부분은 이른 아침부터 일터에 나가신다. 생계를 꾸리기 바쁘시니 아이들 교육이나 생활을 살뜰히 살필 여유가 부족하다. 도시의 외곽에 있으니, 집 근처에 학원도 많지 않고(학원도 형편이 되는 아이들이 다닌다.) 학교의 방과 후 과정 프로그램도 다양하지 못하다. 수익이 보장되어야 하니 학원도 강사도 학생수가 많은 시내나 큰 학교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까닭에 수업이 마치면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아이들은 학교 구석구석에서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거나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 학교의 중앙 현관에는 아이들 신발장이 있고 2층과 연결된 중앙 부분은 공연이나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무대 형식의 계단으로 되어 있다. 아이들이 눕거나 앉을 수 있도록 푹신한 인조가죽이 씌워진 중앙 계단은 Meet & Stay라고 이름이 붙어져 있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맨발로 이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잡기 놀이를 하고 뒹굴거리기도 한다. 보기에도 예쁘고 쓸모가 다양한 용도의 공간이 있다는 것은 아이들에게도 교육적으로도 긍정적인 면이 많다.
문제는 수업이 끝나면 이 공간이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Shorts 영상을 보거나 게임을 하는 장소로 바뀐다는 거였다. 눕거나 서로 기대어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의 고민도 깊어졌다. 사실은 아이들 아침맞이 하면서도 나는 적잖이 놀랐었다. 아이들의 집에서 학교까지 등교하는 데는 통상적으로 10분 이내인데, 등굣길에 스마트폰을 보면서, 또는 손에 들고 오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는 거였다. 전에 근무했던 학교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매월 한 번 있는 전체 교직원회의 때, 나는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보며 등교하는 모습, 학교 곳곳에서 영상을 보고 게임을 하는 모습이 걱정이 되며, 만약 내 아이가 학교에서 저렇게 하고 있으면 마음이 많이 아플 것 같다고 아이들 스마트폰 사용에 대해 지도해 주기를 당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만큼 아이들의 모습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무리 요즘 아이들이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하지만 유해 환경에 과노출되는 것은 아닌지, 교육기관에서 이런 모습이 과연 자연스러운 일인지, 일상인 듯 너무나 자연스러운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그저 용인해야 하는 것인지 생각이 더욱 많아졌다.
"전에 교장선생님도 그랬습니다. 중앙 현관, 조회대 앞에 모여서 스마트폰 보는 모습이 너무 보기 싫다고요."
교감선생님의 말씀이었다. '그런데 왜 아직도...' 생각하고 있는 찰나에 아이들 가정환경, 요즘 학교의 현실 등등 말씀이 이어졌다. 그러던 와중에 6월 말쯤 1학년 남학생이 성관련 영상을 친구들과 상급 학년 형, 누나들에게 억지로 보여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프랑스, 미국 등에서 스마트폰 과사용으로 인한 부작용이 많아서 학교에서 사용을 제한하거나 통제하는 법안이 마련되고 시행하고 있다는 기사도 종종 접하고 있었다. 나는, 적극적으로 지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교감선생님, 부장선생님과 먼저 논의를 했다. 스마트폰 사용에 대해 학교에서 지도하는 내용을 담아 가정에서도 협조를 부탁한다는 '가정통신문'을 미리 준비해서, 2학기가 시작되자마자 가정에 안내하기로 말이다. 특히 뇌가 성장하고 전두엽이 발달하는 시기인 초등학생에게 스마트폰 과노출은 부작용이 많다는 내용, 등교할 때는 가방에 넣고 다닐 수 있도록, 또 유해 영상 시청이나 게임은 학교에서 금하고 있으며 가정에서도 시간을 정해놓고 조절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협조 바란다는 내용을 담아서 안내했다.
안내가 되었다고 바로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게임을 좋아하던 아이가 갑자기 게임을 조절하여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아이들의 변화가 느리더라고 결코 실망하지 말고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내가 할 수 있는 교육을 하자고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두 번 째는 학교 도서실 이용에 관한 것이다.
우리 학교에는 도서실 일을 전담하는 사서가 없다. 어머니 사서도우미의 도움으로 12시부터 3시까지 대출과 반납 정도로 소극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도서실은 오전 내내 닫혀 있었다. 간혹 1~2학년 담임 선생님께서 학급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실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긴 했지만 도서실을 이용하는 아이들 모습을 보기란 매우 드물었다.
'천만 원이 넘는 예산을 사용하여 신간도서를 구입하고 있는데..., 도서실이 책만 보관하는 장소도 아니고...' 혼잣말로 불평 섞인 말을 하곤 했다. '교장이 바뀌었다고 지금까지 해오던 것을 바로 바꿀 수도 없고 적어도 한 학기는 지켜보고 말해야겠지' 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2학기가 시작되었고, 독서교육을 담당하는 선생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도서실을 이용하는 아이들이 너무 적은 것 같아요. 그래서 말인데요, 2주에 한 번 정도로, 한 학급당 20~30권 학급으로 책을 대출해 주면 어떨까요?"
"좋습니다. 저도 **초에 있을 때는 학급 대출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대출만 해주고 책 읽을 시간이 없으면 문제니까, 아침 8시 50분에서 9시까지 10분간 책 읽는 시간을 운영하는 것은 어떨까요? 만화책이든 그림책이든, 한 페이지든, 한 문장이든..., 아이들 수준에 따라 자유롭게..."
"좋습니다. 우리 학교는 교실에 학급 문고도 없고 해서. 교장선생님 의견에 저도 동의해요."
대화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의 생각과 내 생각이 똑같아서 얼마나 안심이 되었는지 모른다. 도서실 운영을 맡고 있는 교무부장님과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도서실 상시 개방 시스템으로 바꾸면 어떨까요?"
"사서어머니들이 싫어하실 텐데요. 아이들이 책을 꺼내 보고 아무렇게나 끼워 놓아서, 나중에 책을 찾으려면 어렵다고 하시고, 또 분실의 위험도 높고요."
"그럼, 아이들에게 책을 보고 난 뒤에는 반드시 '도서 반납함'에 넣게 지도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도서 좀 분실하면 어때요? 가만히 보관되어 있는 거 보다야 누군가 보고 분실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요. 하하."
"그리고, 사서어머님들 안 계실 때는 '무인 대출기록부'를 쓰고 빌려갈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요?"
그렇게 해서 우리 학교 도서실은 '상시 개방', '무인 대출 시스템', '학급 대출 시스템'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주 전체 교직원협의회 때, 나는, 나의 진심을 담아, 선생님들께 아이들이 도서실 이용하는 방법을 익히고 자주 이용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지도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는 월요일 방송 조회 때, 2학기 되면서 학교 도서실 이용 방법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안내하고, '좋은 책들이 너희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자주 도서실에 가서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보면 좋겠다'라고 교장선생님의 마음을 전했다.
(10월에 시도서관의 도움으로 학교 도서실 서가를 재배치 하기로 했다. 책이 중심이 아니라 아이들이 중심이 되는 도서실로 변신할 생각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알록달록 친환경 소파도 미리 봐 두었다. 푹신한 빈백 소파도.)
오늘 아침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어제의 텁텁한 습기가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햇살은 밝고 맑았다. 아침 맞이를 하는데, 아이들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렸다.
"바람이 시원하다 그렇지.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네."
덩치 큰 6학년 남자아이들이 "맞아요. 바람이 시원하네요." 하고 웃었다.
까까머리 예강이는 "하하하, 바람에 머리카락이 날리네......!" 하며 너무 짧아서 날릴 것도 없는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만지작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