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만났던 지인이 우스갯소리를 했다. 우리가 밭을 시작하고 난 뒤 밭이 아니라 밀림이 되어버렸다는 내 말에 그는 웃으며 말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이 아니라 콩 심은 데 풀 나고 팥 심은 데 풀 난다." 매일 관리해도 여름 밭은 풀밭인데 일주일에 한 번 여의치 않으면 그마저도 빼먹는데 당연하다는 말이었다.
호박넝쿨이 뻗어나가는 기세가 엄청나다. 땅은 물론이고 감나무, 대추나무, 쉼터 벽 가리지 않고 뻗어 나간다. 방심한 사이 온 밭을 덮었다. 호박 줄기 맨 끝이 마치 연체동물의 촉수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른 아침에 좀 시들해진 호박 줄기를 걷어내는 작업을 했다. 호박 줄기와 잎에 칭칭 감겨 숨을 못 쉬고 있던 대추나무가 가지가 부러진 채 맨살을 드러냈다. 넝쿨 식물의 힘이 이 정도로 대단할 줄이야. 진작에 걷어 주었어야 했는데 싶었다. 여름의 기운을 먹고 나무처럼 자란 잡초를 남편이 낫으로 쳐내고 내 키보다 웃자란 깻잎대도 잘라 주었더니 숨겨져 있던 감나무 밑동이 드러나서 내가 다 시원하다.
초록 대봉감이 탐스럽게 달렸다. 지금 모습은 탱글탱글 잘 익어갈 것 같긴 한데 농약을 전혀 쓰지 않고 있으니 가을엔 맥없이 떨어질지도 모르겠다. 밭에서 일하시던 어르신이 물 한잔 달라며 쉼터를 찾아오셔서는 "약도 쳐주고 돌봐야 되는데..." 하시며 걱정하셨다. 남편은 "천천히 배우면서 해봐야지요." 하며 겸연쩍게 웃었다.
연신 '이놈의 호박넝쿨 ' 하면서 아무 잘못도 없는 호박이 몹쓸 놈이라도 되듯 툴툴거렸다. 그런데 그 가늘다면 가는 줄기 어느 지점에 큼직하고 탐스런 호박이 둥실 달려 있으면 그렇게 반갑고 기특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맛으로 텃밭을 가꾸는 것이지. 노동의 개운함은 덤이다. 호박 넝쿨 사이 조그만 노란 꽃이 달린 넝쿨이 보였는데 그 아이는 참외였다. 돌보지도 않았건만 여름은 그렇게 참외도 키우고 호박도 영글게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