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가 건네는 '나침반', 문요한, <내가 커지면 문제는 작아진다>
중요한 것은 나의 존재를 키우고 나의 마음을 넓히는 것입니다. 당신이 커지면 문제는 작아지고, 당신이 작아지면 문제는 커집니다. 당신의 마음이 넓어지면 갈등은 작아지지만, 당신의 마음이 좁아지면 갈등은 커집니다. - 173쪽
2023년 저자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교원 정신 건강 아카데미' 이름으로 열린 강연 자리였다. '정신과 전문의는 어떤 이야기를 할까', '뾰족한 방법을 알려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강연에 참석했다.
기억을 떠올려 보면, 지금의 학교는 저자가 근무하는 정신 병원과 유사한 점이 많다고 느낀다며, 그중에 "환자가 의사를, 학생이 교사를 공격한다는 점이 비슷하지 않나요?"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공주, 왕자가 점점 많아지는 요즘의 학교에서 근무하는 선생님들은 정신적 스트레스가 많고, 실질적으로 정신건강과를 찾는 교사들도 급격하게 증가했다는 말씀이었다.
당시 저자는 일과 관계에서 느끼는 피로감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자기 돌봄'으로서의 '오티움(Otium)' 활동 하기를 제안하였다. 마음대로 되지도 않고, 될 수도 없는 일과 관계에 집착하기보다, 그 자체로 나에게 기쁨을 주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며 스스로에게 친절하고 스스로를 돌보라는 것이었다.
흔히 '해야 하는 일을 먼저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한다. 하지만 '우선순위가 무엇이다' 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하고 싶은 일을 했더니 해야 하는 일이 더 잘 되는 경험도 얼마든지 했으니까. 저자의 제안처럼, '내 영혼이 기뻐하는, 내 숨이 잘 쉬어지는 활동'으로 에너지가 충전되면, 그 긍정적 에너지는 '일과 관계'로 흘러들어 잘 풀리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까.
어떤 형태로든 내 영혼이 그 자체로 기뻐하는 '오티움' 활동이 '자기 친절', '자기 돌봄'의 방법이라면, 이 책에서 담고 있는 내용들은 "흔들리더라도 꺾이지 않는 삶을 위한 마음 수업", 다시 말해 삶의 방향을 잃고 헤맬 때 정신과 전문의가 쥐여주는 '나침반' 같은 것이다(저자가 2005년부터 정리한 치유적 경험을 글로 정리한 것이다).
▲책표지<내가 커지면 문제는 작아진다>, 문요한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문제를 만납니다. 그러나 나 자신이 문제를 만났을 뿐, 그 문제가 바로 '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제와 존재 사이에 칸막이를 두어야 합니다. 당신이 문제를 만난 것이지 당신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는 사실! 잊지 않기 바랍니다. - 151쪽
"문제와 존재 사이에 칸막이를 두는 것", "문제가 바로 '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님"을 아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이고 핵심인 것을. 이 지당한 진리를, 인쇄된 문장의 형태로 전문가의 확인을 받기까지 오십 년 넘게 걸렸다. 온통 문제에 빠져 문제가 '나'가 되어버렸던, 그래서 힘들었던 젊은 날이 얼마나 숱했던지.
그랬다. 문제 속에 있을 때는 시야가 좁아지고 그 문제만 보였다. 그리고 문제와 나를 동일시하며 자책했다. 살면서 부딪히게 되는 어려움들은 '문제'와 '존재'를 분리하는 것에서부터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한다. 조금은 떨어진 위치에서 '나'를 조망하며, 1인칭과 3인칭을 오가며 자신을 객관화시켜 관찰하면 해결 방법이 윤곽을 드러내는 경우를 종종 경험했다. 그것을 글로 써보는 등 시각화 과정을 거치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달라지며, 흔들리더라도 '꺾이지 않고' 존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주는 충고>의 시구처럼 "중요한 건 / 모든 것을 살아보는 일이고 / 언젠가 먼 미래에 /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 줄 테니까." 모든 문제는 살아보아야 그 본질을, 그 의미를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적어도 나의 경험으로는 그랬다. 그러니 문제를 살아내면 된다.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의 말이 귀에 박히는 이유다.
여가 시간에는 정작 사람들의 몰입 상태가 18퍼센트에 불과했지만, 일할 때에는 오히려 최대 64퍼센트의 몰입 상태를 경험하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일은 괴로운 것'이라고 마음을 닫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일을 더 좋아하면서도 싫어한다고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197쪽
적어도 사람의 일생 절반은 '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일 때문에 힘들고, 일 덕분에 자아실현, 성취감을 맛보기도 한다. 일이 없어 걱정하고 무료해하며, 일이 많아 번아웃에 이르고 자신을 잃기도 한다. 그러니 성인이라면 적어도 '일'에 대한 나름의 철학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일터에서 좀 덜 소진되고, 좀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나는 늘 늦깎이다. 일에 대한 저자의 조언을 젊은 날 알았더라면 그토록 일요일 밤이 괴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은퇴가 점점 가까워지는 시간을 살고 있는, 이제야 비로소,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일은 고역이나 껍데기가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드러내는 것이고 삶의 중심이며, 평생 함께할 사랑의 대상이니까요. - 198쪽
일하는 여성으로 산 세월이 강산이 세 번 바뀌고도 남는다. 미운 정 고운 정, 산전수전공중전 다 겪고, 지금에 이르러 나는 '이 일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있을까...' 싶다. 나를 성장하게 했고 사람들과 연결되게 했으며, 생계를 유지하게 했고, 더 넓은 세계를 열어 주었다. 저자의 말처럼 '평생 함께할 사랑의 대상'인 일을 기쁘게 할 수 있도록, "죽는 날까지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게 하시고" 했던 어부처럼 기도하게 된다.
삶이 무너지는 것은 너무 쉽게 흔들리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너무 흔들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기에 어느 순간 삶이 무너져 내리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 흔들림은 성장의 신호입니다. ... 흔들리기에 삶은 깊이 뿌리내리고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119~120쪽
오십 고개 중턱을 넘고 있는 지금도, 또 앞으로도 가끔 흔들리고 좌초될 것이다. 나이 들어가는 일이 결코 만만하지 않음을 주변에서 많이 듣고 보고 있다. 전문의의 나침반을 곁에 두고, 경계하고 명심하면서, 가끔 몸에 밴 어리석음이 표출되고 그 모습에 전율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기도 하겠지만, "흔들림은 성장의 신호"라니까, 정신 줄 단단히 붙들고 삶이 건네는 문제들을 살아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