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기억하며

모든 기억은 다행이다.

by lee나무


바다를 기억한다.

기억으로 나는 바다를, 부드럽게 퍼지는 봄 햇살 아래 가장 아름다운 파랑을 찬란하게 펼쳐내던 그때의 바다를 만난다. 카메라로 당겨온 바다는 나와 바다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좁히고 눈앞에 떡하니 그 바다를 가져다 놓는다. 그리고는 장면들을 그려낸다.


그 바다에 서면, 어깨 짐을 잠시 내려놓고 숨 고르기를 하는 더벅머리 청춘이 있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아픔을 발판으로 다시 일어서 도전하는 청춘이 동해 바다처럼 넓고 푸르게 웃고 있다. 밀려 밀려와서 바위에 부딪히며 하얗게 부서지고 다시 물러나기를 반복하는 파도가, 좁은 골목 낮은 지붕 아래 생선 국물이 진했던 모리 국수를 훈훈하게 내어주셨던 아주머니가, 진한 초콜릿이 감미롭고 부드러웠던 에그타르트가, 새벽 고기잡이를 마친 배들이 한낮을 쉬고 있는 넉넉한 항구가 파노라마로 있다. 유채꽃밭 속에서 노랗게 물든 한 가족이 2022년 사월의 하루를 각자의 기억 속에 저장하고 있다. 어느 날 문득 꺼내어 미소 짓게 될 다정한 기억 하나 꿰고 있다.


모든 기억은 다행이다. 슬픈, 아쉬운, 아픈, 부끄러운 기억조차도 다행이다. 사는 것은 감정을 사는 것이기도 하니까. 이 모든 감정들이 우리를, 삶을 더욱 깊어지게 하고, 넓어지게 할 테니까. 정호승 시인의 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처럼 우리는 '그늘 아래서', '눈물 속에서' 쉴 자리를 찾고 위안을 얻기도 하니까.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 정호승, <내가 사랑하는 사람>


살아가는 일은 기억을 쌓아가는 일이다.

삶의 단계 단계마다 놓인 과제들이 무겁게 느껴질 때, 쉬어가며 다시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도록 다정한 온기가 느껴지는 기억의 돌다리를 종종종 놓아두자. 소소하고 작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했던 구슬 같은 기억들이 삶이라는 순례길에서 운동화 끈을 다시 멜 수 있는 힘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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