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경영을 가꾸다

최재천의 경영 십계명

by lee나무
얼떨결에 꿇은 무릎이지만 사실 나는 줄곧 바로 이 마음으로 생태원을 경영했다. 단 한 차례도 나는 직원들을 무시하지 않았다. 언제나 눈높이를 같이하며 함께 일했다. 나를 따르라고 부르짖기보다 "이런 문제가 생겼는데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었다. 쉽사리 내 의견을 말하기보다 좀 더 많은 직원의 의견을 모으기 위해 이를 악물고 들었다. 절대로 군림(君臨) 하지 않고 군림(群臨)하려 노력했다. -최재천-


이 책은 2013년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을 맡아서 3년 2개월간 국립생태원 경영 경험을 바탕으로 쓴 리더의 '경영 전략(최재천의 경영 십계명)'에 관한 글이라 할 수 있겠다.


저자인 최재천 교수님은 서울대학교에서 동물학을 전공하셨다. 이후 미국 하버드대학교 대학원에서 생물학 공부를 하셨고 그곳에서 15년 생활하셨다. 내가 교수님을 알게 된 것은 '통섭'에 대한 강의를 들으면서였다. 그 이후로 가끔 교수님의 강의를 유튜브로 찾아 듣곤 했다.

이 책은 내가 평소에 존경하는 교장선생님께서 선물로 주셔서 읽게 되었다. 좋아하는 분이 주셨기에 그 내용이 몹시 궁금하였다. 할 일들이 많았지만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사람을 닮아 책이 참으로 향기로웠다. 책을 읽고 책 리뷰를 쓰거나 독후감상문을 쓰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해당 분야에 대해 높은 전문성을 가지고 있고 인품이나 경험에서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분들의 글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그저 마음속에 새겨야 할 문장들을 필사하고 그대로 옮겨 곁에 두고 익힐 수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미국에 살던 시설 틈만 나면 월든 호수를 찾았던 나는 알게 모르게 그(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철학을 체득한 것 같다. 생태학을 이론뿐만 아니라 삶 속에 녹여내는 길을 찾았다. 나는 나를 위해서는 거의 돈을 쓰지 않는다. 아내가 강권해 사주기 전에는 스스로 옷을 사본 기억이 거의 없다. 아무리 멋진 전자기기가 새로 출시돼도 그걸 사기 위해 줄을 서본 적은 더더욱 없다. 미국 유학 초창기에서 잠시 독일 차 BMW 2002를 흠모했던 이래 여느 사내들처럼 차에 대한 로망도 일절 없다.

일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면 영혼이 자유로워진다. 자본주의의 고질인 과소비를 덜어내고 단순한 삶을 살면 기후 변화와 생물다양성 고갈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의 책 <월든(Walden)>에는 절제된 삶을 실천하며 관찰한 자연의 섭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생물의 다양성만큼 다양한 사람들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갖추어야 할 기본 소양이겠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단순한 삶'을 지향하며 '친자연적인 삶'을 실천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물욕이 많은 사람 중에서 내가 존경할만한 점을 찾을 수 있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는 교수님의 이런 점이 우선 좋았다.




나도 조심스레 경영 십계명을 꼽아보려고 한다. 경험 많은 경영자가 보면 전혀 새로울 게 없는, 말의 유희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렇게 머리로 배운 교훈들이 실전을 겪으며 서서히 가슴을 거쳐 손발에 쥐어지기 시작하기를 바라며.


[최재천의 경영 십계명]


하나. 군림(君臨) 하지 말고 군림(群臨)하라.

언제나 직원들과 눈높이를 맞춘 상태에서 업무를 처리했다. 눈높이를 맞추면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으로 하여금 주인 의식을 갖게 하는 훌륭한 효과도 덤으로 기대할 수 있다. 권위를 얻는 길에는 두 갈래가 있다. 스스로 드러내며 취하는 권위와 남들이 마음으로 떠받들어주는 권위는 질적으로 다르다. 가진 자와 높은 자는 무조건 미안해해야 하고 더 허리를 굽혀야 한다.

모두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당당하게 군림(群臨) 해야 한다. 두뇌 하나가 두뇌 열 또는 백을 능가할 수 없다.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내가 진정 남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품어본 적이 없다. 나는 대가 약하다는 소리를 귀가 따갑도록 듣고 자랐지만 세상을 이만큼 살아보고 난 지금은 주변에서 확신에 차 있는 사람들을 보면 측은하기까지 하다. 세상 모든 사소한 일에까지 자기 생각이 뚜렷하고 그대로 되지 않으면 못 견뎌하는 사람들은 더 넓고 큰 세상을 품지 못한다. 나는 내 생각이 틀렸고 남이 옳을 수 있다고 굳게 믿으며 산다. 그래서 카리스마가 없다는 얘기를 들으며 사는 모양이다. 카리스마로 꽉 찬 두뇌 하나가 유연한 두뇌 여럿의 집단 지능을 이길 수 없음을 나는 너무나 잘 안다. 나는 카리스마 없는 리더로 살기로 했다.


둘, 가치와 목표는 철저히 공유하되 게임은 자유롭게.

'생명 사랑, 다양성, 창발, 멋' 핵심 가치의 정신을 전 직원이 공유하며 정말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원장으로서 내가 한 일은 여기까지였다. 미션과 비전을 확고히 해 직원 모두가 공통된 목표를 향해 매진할 수 있게 하고 그 일을 해나가는 과정에서는 핵심 가치를 수단 또는 철학으로 삼았다. 게임의 룰만 정해줄 뿐 정작 게임 자체는 더할 수 없이 자유롭고 신명 나게 하도록 놓아준다. 나는 '일터를 놀이터로'라는 기치를 내걸고 핵심 가치와 목표는 모두 확실하게 공유하지만 설제 일은 자발적으로 기획하고 진행할 수 있도록 자율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셋, 소통은 삶의 업보다.

소통은 원래 안 되는 게 정상이다. 잘되면 그게 신기하고 비정상이다. 베짱이 수컷들은 한 마리도 빠짐없이 식음을 전폐하고 하루 종일 뒷다리를 날개 가장자리에 비벼대는 중노동을 계속한다. 암컷 한 마리와도 소통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삶의 현장에서 소통은 이처럼 처절한 것이다. 그래서 소통은 그저 한두 차례 시도한 다음 상대의 비협조를 불평하며 포기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소통은 될 때까지 악착같이 해야 한다. 우리가 사회적 동물로 태어난 이상 소통 없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넷, 이를 악물고 듣는다.

사람이 지위가 높아질수록 제일 하기 힘든 일이 뭘까? 입 다물고 남의 말을 경청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리더가 말을 줄여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 윗사람이 입을 떼는 순간 아랫사람들은 영원히 입을 다문다. 그래서 나는 3년 동안 정말 어금니가 아플 정도로 참았다.


직원들의 창의성이 꽃피려면, 조직이 성장하려면, 우두머리 입에 재갈을 물려야 한다. 처음 몇 차례 처참하게 실패하더라도 긴 안목으로 보면 이를 악물고 참으며 실패의 아픔마저 감수해야 한다.

사람은 모름지기 말을 아끼며 살아야 한다.


다섯, 전체와 부분을 모두 살핀다.

리더가 큰 그림을 보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전체를 보느라 부분을 챙기지 않으면 조직이 어디로 굴러가는지 미처 모르고 있다가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것. 악마는 언제나 디테일에 있다는 얘기다.

부분과 전체를 모두 챙긴다면서 절대로 저지르지 말아야 할 실수는 자기가 모든 일을 실제로 다하는 것이다. 과감하고 슬기롭게 일을 나눌 줄 알아야 한다. 위임(Delegation)의 묘를 살릴 줄 모르면 리더로서 몸과 마음을 모두 잃는다.


여섯, 결정은 신중하게, 행동은 신속하게.

리더(leader)는 리더(reader) 여야 한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일단 리더로서 자격이 없다. 리더는 조직의 그 누구보다 많이 알아야 한다.

리더는 생각하는 사람(thinker)이어야 한다. 생각을 깊이 할 줄 모르고 경거망동하는 사람이 조직의 리더가 되면 본인의 인생만 망치는 게 아니라 애꿎게 함께하는 많은 사람의 인생도 한꺼번에 수렁에 처넣을 수 있다.

리더는 길잡이(pathfinder) 여야 한다.

제33대 미국 대통령 트루먼의 책상 위에는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일곱, 조직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치사하게.

나 자신의 안위와 행복을 위해서는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매달려본 적이 없지만 조직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무릎을 꿇고 한없이 치사해질 용의가 있다. 예산 확보를 위한 노력, 국립생태원 홍보를 위한 노력 등 조직을 위해서라면 고집스럽게 지켜온 삶의 철칙도 조금 구부릴 수 있다.


여덟, 누가 뭐래도 개인의 행복이 먼저다.

조직에 좋은 일이 내게도 좋아야 할 수 있다. 조직의 실적이 중요한가? 아니다, 그 보다 그 조직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 나는 개인이 행복해야 궁극적으로 조직도 성공한다고 믿는다.

나는 오래전부터 경협(coopertition)의 개념을 깊이 생각해왔다. 이 말은 경쟁(competition)과 협력(cooperation)의 합성이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협력한다는 뜻이다. 평생 자연을 관찰하며 살아온 내가 한 가지 확실하게 단언할 수 있는 게 있다. 이 세상에서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


아홉, 실수한 직원을 꾸짖지 않는다.

나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도 야단치며 키우지 않았다. 아주 어렸을 때 몇 번 버릇을 고친답시고 혼을 낸 적은 있지만 사춘기로 접어들 무렵부터는 모든 걸 대화로 풀려고 노력했다.

야단을 많이 맞는 학생은 야단을 맞지 않으려 노력할 뿐 근본적으로 더 훌륭한 학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성장은 남이 키워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크는 것이다.

실수한 직원은 자기가 실수했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런 직원에게 너 왜 실수를 저질렀냐고 짓밟아본들 그가 갑자기 더 훌륭한 직원으로 거듭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완벽한 결과를 얻으려고 직원들을 닦달하지 말고 과정을 완벽하게 다듬는 노력을 해야 한다.

직원을 덕치로 섬기는 원장이 되고 싶었다. '이해와 포용의 덕치'


열, 인사는 과학이다.

직원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중간 관리자 이상의 직원들에 대해서는 일일이 행동 목록을 만들었다. 호모 사피엔스 관찰. 그들이 뭘 좋아하고 어떤 일에 흥미를 느끼는지를 파악하고 그에 따라 인사 조치를 했다. 인사야말로 관찰을 바탕으로 한 진정한 과학이다.




교장 자격 연수의 마지막에 교수님의 "숲에서 경영을 가꾸다"는 책을 만난 것은 '학교 경영의 나침반'을 선물 받은 느낌이다. 곁에서 두고 자주 쳐다보며 길잡이로 삼고 성찰할 수 있어야겠다.


조직이 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리더의 사리사욕과 아집 때문이다. 사심 없이 모든 문제를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상의하며 추진하면 망하기가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리더가 조직을 이용해 자기 욕심을 챙기려 하거나 자기가 조직의 누구보다도 훨씬 탁월하다고 믿기 시작하면 위험하다. 아무리 대단한 천재라도 자기 두뇌 하나가 많은 다른 두뇌의 집단 지능(Collective intelligence)을 능가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멸망의 길로 접어든다. 하나의 두뇌보다 여러 두뇌가 궁극에는 반드시 더 훌륭하다. 경영(經營)이 아니라 공영(共營)이다. 혼자 다스리려 하지 말고 함께 일하면 망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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