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는 몸의 모든 감각이 이곳을 편안해함을 느낀다. 그녀는 더 이상 의지나 열정 같은 말에서 의미를 찾지 않기로 했다. 그녀가 기대야 하는 건 자기 자신을 몰아붙이기 위해 반복해서 되뇌던 이런 말들이 아니라, 몸의 감각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가 어느 공간을 좋아한다는 건 이런 의미가 되었다. 몸이 그 공간을 긍정하는가. 그 공간에선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가. 그 공간에선 내가 나를 소외시키지 않는가. 그 공간에선 내가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가. 이곳, 이 서점이, 영주에겐 그런 공간이다.(10쪽)
지난 제 경험이 가르쳐준 건 이 정도예요. '나는 남을 위해 일을 하는 순간에도 나를 위해 일해야 한다. 나를 위해 일을 하니 대충대충 하면 안 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일을 하는 순간에도, 일을 하지 않는 순간에도 나 자신을 잃지 않아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일을 하는 삶이 만족스럽지도 행복하지도 않다면, 하루하루 무의미하고 고통스럽기만 한다면,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나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인생을 살고 있으니까.(343쪽)
지난 1년 휴남동 서점은 크고 작은 변화를 맞았지만 사실 어떻게 보면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과거의 휴남동 서점에도, 현재의 휴남동 서점에도 영주의 이상과 생각이 반영된다는 점이 그렇다. 영주가 해외 독립책방을 둘러보며 깨달은 점은 모든 책방이 그만의 개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개성은 책방을 운영하는 주인에게서 나왔다. 그리고 개성을 만들어 가는데 필요한 건 용기였다. 주인의 용기가 손님에게 가닿기 위해 필요한 건 진심이었다. 그러니까 용기와 진심.(358쪽)
내 몸의 모든 감각이 편안해하는 공간. 내가 선택한 직업 공간이 자기 자신을 몰아붙이지 않아도 되는, 몸이 저절로 긍정하고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으며, 나를 소외시키지 않는 그런 공간이라면. '아무리 좋아하는 일도' 직업으로 하게 되면, 노동의 한계를 초과하게 되기 십상이고, 결국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 되어 버리기 일쑤인 것이 '직업의 아이러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일찌감치 직업적 공간에서 이런 것을 추구하는 것은 불가능이며 가당찮다고 생각하며 제쳐두었는데.
주인공 영주에게 서점은 그런 공간이다. 그곳에서 '몸의 감각에 기대어' 자신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에 '나와 타인을 더 좋게 만드는 일'을 한다니. 이럴 수 있다면 진심 좋겠다. 그럴 수 있을까?
그래서 생각해 보았다. 나의 일터, 학교는 나에게 어떤 공간인가. 학교. 학교는 나에게 '내 몸의 모든 감각이 편안해하는 공간'인 것 같다.(적어도 80% 이상은 그런 것 같다.) 정말 감사하게도. 예전에는 몰랐었다. 떠난 뒤, 떠나보고 난 뒤, 다시 돌아온 뒤 깨닫게 되었다. 매일매일 긴장과 압박, 업무 중심의, 7년간의 교육청 생활을 해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올 3월부터 학교로 출근하면서 내가 느낀 행복감을 잊을 수 없다. 일요일 오후부터 슬슬 올라오던 월요병도 없어졌다. 학교폭력, 아동학대, 자기 아이만 생각하는 소통이 정말 어려운 학부모님의 민원이 있어도 나는 학교라는 공간이 좋다.
물론 영주처럼 내가 만든 것은 당연히 아니다. 학교의 주인은 한 사람이 아니므로.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숨 쉬고 생활하는 모두가 학교의 주인이므로.
교문 앞에서 아이들의 안전한 등교를 살펴주시는 교통도우미 어르신들, 학교 화단과 운동장 곳곳을 돌봐주시는 깔끄미 어르신들, 한결같이 아침 일찍 출근하여 교무실 창문을 활짝 열어 신선한 아침 공기로 하루를 시작하게 신경 써주시는 청소 여사님, 맡은 학급 아이들의 학습과 생활을 무탈하게 챙겨주시는 선생님들, 학교 시설 곳곳을 살피시고 예산을 챙겨주시는 행정 주무관님들, 엄마 같은 마음으로 점심을 정성으로 챙겨주시는 조리실무원님들. 이 모든 분들 덕분에 학교라는 공간은 '나를 긍정하고,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되고 있다. 나는 그분들이 '첫번째로는 무탈하게, 두번째로는 기쁘게 일할 수 있게, 적어도 스스로 소외되지 않고 자신의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게 배경이 될 수 있어야지' 하는 생각이다. 나는 학교의 여러 주인들 덕분에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고 이 순간 긍정하게 된다.
서로의 진심이 모여서, 각자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일'을 할 수 있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게' 하는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으면 '아, 정말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소설이다.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을 읽다가 자판을 두드렸던 부분들입니다.
"아까 말했잖아. 솔직하게 쓰라고, 정성스럽게 쓰라고, 솔직하고 정성스럽게, 그렇게 쓴 글이 잘 쓴 글이야."(276쪽)
민준은 이제 그만 흔들리기로 했다. 흔들릴 때 흔들리기 싫으면 흔들리지 않는 무언가를 꼭 붙잡으면 된다는 걸 배웠다. 그래서 커피를 붙잡았다. 마음을 비우고 커피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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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준은 커피를 내리면서 목표를 세우지 않았다. 말 그대로, 정말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거다. 할 수 있는 만큼 해도 실력이 늘었다. 커피 맛이 좋아졌다. 그러면 된 것 아닌가. 이런 속도로, 이런 마음으로 성장해도 충분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세계 최고 바리스타가 돼서 뭘 하겠는가. 삶을 갈아 넣은 후에 최고라는 찬사를 받아서 뭘 하겠는가.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서 민준은 지금 자기가 신 포도의 여우가 된 건가 싶었지만, 아니라고 결론을 냈다. 목표점을 낮추면 된다. 아니, 아예 목표점을 없애면 된다. 그 대신 오늘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거다. 최선의 커피 맛. 민준은 최선만을 생각하기로 했다.(278쪽)
영주는 정답을 안고 살아가며, 부딪치며, 실현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걸 안다. 그러다 지금껏 품어왔던 정답이 실은 오답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다시 또 다른 정답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평범한 우리의 인생.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 안에서 정답은 계속 바뀐다.(32쪽)
책은 뭐랄까, 기억에 남는 것이 아니라 몸에 남는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기억나진 않는 어떤 문장이, 어떤 이야기가 선택 앞에 선 나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제가 하는 거의 모든 선택의 근거엔 제가 지금껏 읽은 책이 있는 거예요.(57쪽)
오늘도 민준은 이 당연한 깨달음에 약한 전율을 느꼈다. 처음 사는 삶이니 그렇게나 고민을 했을 수밖에. 처음 사는 삶이니 그렇게나 불안했을 수밖에, 처음 사는 삶이니 그렇게나 소중했을 수밖에. 처음 사는 삶이니 우리는 이 삶이 어떻게 끝을 맺을지도 알 수 없다.(321쪽)
영주와 함께하는 시간이 좋다는 것, 영주와 이야기 나누는 것이 좋다는 것, 그러니 사랑에 너무 겁먹지 말고 외로울 때, 혼자 있기 싫을 때, 자신에게 오라는 것, 영주가 문을 두드리면 언제든 문을 열어주겠다는 것.(33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