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정은우 글, 그림, 사진

by lee나무

그 여행에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다만 해끔한 햇살 아래를 걷고 싶은 만큼 걸었고

걸었던 만큼 돌아오기를 반복했다.(51쪽)


그곳에는 걷는 것 외에 달리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

나는 목적지도 약속도 없이 아바나의 말레콘 방파제를 걸었다. 걷기만이 내 유일한 목적이었다.

어둑함이 어스름으로, 어스름이 희붐해지다 여명이 밝아올 때까지 나는 걷고 또 걸었다.(204쪽)


그의 삶에 드라마가 있다면 평생을 같이한 아내 '조 호퍼'다. 둘은 모든 여행을 함께했고 영화나 책을 본 후에는 밤새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96쪽)


그저 매일 인사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소중하고 애틋하게 여기며 살고 싶다.(121쪽)


별스럽지 않은 것들, 사소한 것들을 기록하다 보면 앞으로 이렇게 소소하게 쓰고 그리면서 살아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순간을 멋지게 도려내 잊을 수 없는 글로 남겨두는 것. 그 과정을 통해 쓸모없는 것들에 대한 사소한 긍정과 자신에 대한 상냥한 체념을 배운 덕분이다.(170쪽)





오십 줄에 들면서 스스로 다짐한 일이 있다. 나의 좁은 선입견에 얽매이지 말고 살아온 방식을 고집하지 말고 사람과 세상을 경험하기로 하자고. 스스로 틀을 만들고 경계를 짓는 일을 하지 말자고. 보고 싶은 것을 찾아 떠나고, 하고 싶은 것은 너무 재지 말고 일단 해보자고. 판단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고. 아이들이 각자 자리를 찾아 떠나고 여러 의무에서도 어느 정도 자유로워진 나이. '지금이 딱 좋은 시기이다'는 생각.


걷기에 더욱 진심이고 싶어졌다. 진작에 '걷기는 나를 향하는 길임'을 깊이 느끼고 있기에 나는 걷기를 사랑하고 사랑한다. 이제부터는 집에서 가까운 동네길, 산길, 둘레길을 너머 낯선 길을 찾아 떠나고 걸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길 위에서 사람을 만나고, 마을을 만나고, 꽃과 풀과 바람을 만나고, 계절을 만나고, 나와 너를 만나기로 마음먹었다. 걷다가 이쁜 카페를 만나 커피 한 잔을 할 수 있으면(담백한 빵이 함께라면 이건 천국이다), 피곤한 육체를 쉴 수 있으면 충분하리라. 당신이 내 옆에 있고 소소한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면 충분하리라. 그날의 우리의 걷기에 대해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 순간 평안할 수 있다면 충분하겠다는. 특별할 것 없는 날이 가장 특별한 날임을 우리가 함께 느끼고 나눌 수 있으면 충분하겠다는.


나중에 내 몸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져 걸을 수 없는 때가 오면, 그때 우리가 걸었던 길과 우리가 나누었던 소소한 이야기를 추억하며 평화로운 하루를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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