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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인사발령, 이젠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이벤트

by 자향자

2024년 12월의 넷째 주 금요일, 2025년 상반기 인사발령 결과가 공개됐다. 직장인이라면 승진 소식만큼이나 관심도를 보일 수밖에 없는 '인사발령 시즌'. 특히, 승진을 했거나 부서 내 발령을 앞둔 대상자의 경우에는 타 부서 이동으로 인해 희비가 엇갈리기도 하는(?) 남다른 날이기도 하며, 기존 부서 내 직원들에게는 어떤 직원이 부서로 발령이 날지 가슴조리게 되는 날이기도 하다.



크리스마스에 이어 연말이 다가왔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이번 인사발령 시즌에 사실 나는 큰 감흥이 없다. 7월을 복직을 하게 된 터라 당분간은 인사이동 대상자에 해당하지도 않을뿐더러, 어느 한 사건 덕분에 흔히 말하는 요직으로 나아갈 연유가 요원한 현재의 상태에서 인사이동은 어느샌가부터 내게 큰 의미가 없어졌다. (지금 내게는 '육아시간'을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부서가 최고의 부서이다.)



참고로, 공무원은 상하반기로 나누어 연간 2회 인사발령을 진행한다. (내가 속한 회사의 경우 1월 그리고 7월 이렇게 두 번 나누어서 진행하고 있다.) 우리 회사 기준, 한 부서에서 최소 2년 근무를 하게 되면 인사이동 대상자에 해당하게 되며, 누군가에게는 안식처였던, 또 다른 이에게는 지옥과 같았던 부서를 떠날 시간이 도래한다. (물론 고충 제도를 활용해 타 부서로의 이동도 가능하다.)



인사 관련 부서에서는 '전보 계획'이라는 방침을 만들며 승진자, 직급별 인원 그리고 직원들의 여러 고충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인사를 준비하게 된다. 인사는 007첩보 작전과 같이 마지막 순간까지 비밀리에 진행한다고 하는데, 그들의 노고만큼은 정말이지 인정할만하다.



그렇다면 내가 속한 부서에서는 어느 정도의 인원이 인사이동을 하게 됐을까? 부서의 과장은 국장으로 승진하게 되며 다른 국으로 인사이동을 하게 됐고, 이번에 5급 사무관으로 승진한 과장이 우리 부서로 발령을 받았다. 부서 내 잔류 기간(최대 3년)을 꽉 채운 직원 1명은 동사무소로 발령이 나는 전출 소식을 전하게 됐고, 신규 직원 1명과 7급 직원 1명이 부서 내 전입되는 것으로 이번 인사이동을 마치게 됐다. 30여 명이 넘는 부서 인원을 감안했을 때, 부서의 수장(과장)이 변화한 것을 제외하곤 그리 큰 변화는 없다.



한 부서의 과장이 바뀌면 부서는 분주해지기 마련이다. 진행 중인 각종 사업에 대해 과장에게 보고할 자료를 준비하고 팀별 업무 브리핑 또한 진행해야 하기에 실무자나 팀장급이나 조금은 긴장할 수밖에 없겠다. 자료를 준비함에 있어 내용 자체에 큰 변화는 없지만 그렇게 제목만 다른 엇비스무리한 자료를 또 하나 만들어냈다. 작성자 입장에서 봤을 때, 실무자인 나 조차도 도대체 뭐가 다른 건지 잘 모르겠다. (오와 열이 잘 못 됐을까?)



인사발령 공문이 내려오니 부서 내의 전보 소식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누가 어디 갔네, 누가 복직을 했네부터 시작해 전화로 축하 소식을 전하거나 안쓰러운 마음을 전하기도 한다. 아는 직원 몇몇이 눈에 뜨인다. '이분은 희망지에 가게 된 걸까?' 전보 희망지에 연착륙 했길 바라본다.



직장인에게 인사발령은 무엇을 의미할까?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이벤트 정도일까? 내 입장에서도 몇 년 간 회사생활을 해야 하는 곳이니 신경이 당연히 쓰이는 일겠다만 예전만큼 큰 의미를 더 이상은 두지 않으려 한다. 더 이상 내 인생을 좌지우지할 만큼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우리는 조직 내의 부속품이며, 언제든 대체 가능한 인력임을 어느 순간부터 알게 된 이후 마음 상태가 그러하다. (임원의 꿈을 좇고 있는 이들은 예외겠다.)



공무원들이 흔히 언급하는 좋은 부서와 나쁜 부서라는 게 있다. 총무부, 기획부 등이 전자에 해당하겠고, 복지, 교통 부서 등은 후자에 해당할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과연 단 두 가지로 이를 가를 수 있을까? 기준점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시장, 구청장을 자주 대면하는 주요 부서는 과연 그들이 말하는 좋은 부서일까? 과중한 업무로 야근은 일쑤이며, 숨 막히게 조용한 부서 내에서 군말 없이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는 게 과연 좋은 부서라는 말인가? 승진이 보장되어 있는 자리여서 그렇다고? 꼭 그곳에서 승진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반면에 민원인과 종일 싸우며 민원 처리만 반복하는 부서는 나쁜 부서일까? 스트레스는 받겠지만 상급 부서에서 받는 압박감보다는 상대적으로 덜할 것이다. 어느 부서든 장단점이 분명히 있다.



조금 멀리 떨어져 바라보자. 좋은 그리고 나쁜 부서의 기준은 결국 회사를 중심에 두고 있다는 소리로 귀결된다. 회사에 종속되어 있는 삶이 여러분이 어렸을 적 꿈꾸었던 모습인가? 그렇지는 않으리라 본다. 회사는 우리를 끝까지 책임져 주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사고만 안치면 정년이 보장되어 있는 공무원인 나도 이런 생각이 드는데 여러분의 생각은 과연 어떠한가?



나는 더 이상 인사에 너무 얽매이진 않으려 한다. 따지고 보면 회사와 나는 계약관계에 불과하다. 심지어 하루 10시간 이상을 바쳐대고 있으니 내가 더 불리하다. 회사에 대한 의존도를 조금씩 줄여보고자 한다. 평생직장의 개념은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인사 발령에 휘둘리지 않는 우리가 될 수 있도록 조금 더 날카롭게 우리의 능력을 키워가 보자.



신규 시절, 퇴직을 앞둔 과장님께서 내게 해주신 말씀 하나가 있다. "회사는 전부가 아니다. 세상을 넓게 보고 너만의 능력을 반드시 길러라." 그때는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런데 이제는 그분이 해주신 말의 뜻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다. 회사가 나와 여러분의 인생 전부가 아님을 인지하고 인사에 휘둘리지 않는 나로써의 삶을 만들어 나가보자. 독립된 자신으로서의 모습을 발견할 때 우리의 인생은 달라질 것이다. 그렇게 믿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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