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주중의 일과를 마치고 함께 돌아오던 자동차 안에서 아내가 내게 물었다. "어린이집에서 공지사항 올린 거 봤어?" "응? 아직 못 봤는데?" 하며 얼른 키즈앱을 열어 무슨 내용인지 확인해 본다. '돌아오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산타 잔치를 개최합니다. 가정에서 손수 썰매를 제작하여 다음 주 월요일까지 보내주세요.' 라는 공지가 버젓이 게시되어있다.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아이를 키우는 선배들에게 이따금 들었던 말. 어린이집에서 뭘 만들어 보내라는 숙제가 은근히 부담된다는 이야기를 몇 번 듣긴 했는데 드디어 내 차례가 다가왔다. 아이가 없던 시절에 들었던 이야기인지라 당연히 한 귀로 듣고 흘리기 일쑤였는데, 막상 상황이 닥치고 당장 내일모레까지 썰매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부담감이 절로 따라붙었다.
왜 부담이 됐을까? 사실, 만들기 숙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첫 번째 숙제는 페트병을 활용한 화분 만들기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당시에는 그냥 대충 만들면 되지 하며 아내에게 맡겨버리며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잘못했다.) 어쨌거나, 내 기준에 아내의 결과물은 꽤나 멋져 보였다. 캐릭터 스티커를 왕창 사온 다음 사면을 촘촘하게 붙이며 꽤 괜찮아 보이는 화분을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어린이집에서는 연계된 앱을 통해 아이들과 함께한 하루의 일과를 사진으로 찍어 올린다. 화분 만들기를 한 당일, 그날도 어김없이 사진을 훑어보는데, 나는 아이들의 활동사진을 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아이가 만든 화분이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로 멋지고 기발한 화분들이 즐비했다. 아기상어 캐릭터를 형상화한 화분부터 인기를 끌고 있는 캐릭터들로 화려하게 꾸며진 화분들을 보고 있으니 아이에게 절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페트병 하나로 이런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했다.)
그래서 이번 '썰매 만들기' 숙제는 정말 진심을 다해 보기로 했다. 혹시나 해서 소셜커머스에 '종이박스 산타썰매' 검색을 해보니 결과물은 나오지 않는다. 방법은 단 하나. 직접 만드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렇게 대망의 산타 썰매 만들기가 시작됐다. 남편이나 아내나 손재주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념하나만은 충분하다.
사무실에 앉아 이면지 뒷장에 대략적으로 어떻게 만들지 조감도를 그리고 아내에게 협업을 제안한다. 시트지를 구입해 온 지난 금요일의 저녁부터 우리는 '산타 썰매' 만들기에 매진했다. 제목은 루돌프 산타 썰매 만들기. 튼튼한 종이박스를 잘라내며, 시트지를 붙이고 하단부는 마스킹 테이프로 마감을 해줬다. 그것만 하는데 두 시간 남짓의 시간이 흘렀다. 엄마가 아이를 재우는 동안 산타 할아버지가 프린팅 된 포장지를 이용해 박스 내부를 마감 처리한다.
다음 날까지 썰매 만들기는 이어졌다. 밋밋한 외부면을 꾸미기 위해 다이소를 들러 크리스마스 용품 몇 개를 사 와 글루건으로 붙여줬다. 루돌프를 상징하는 썰매를 만들기로 했으니 종이 박스를 뿔처럼 잘라 붙이기도 하고, 귀여운 눈을 붙이는 것을 끝으로 기어코 산타썰매를 완성해 냈다. (딸아이가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
이번 산타썰매 만들기를 하면서 내 옛 추억이 하나 떠올랐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내게 '고무동력기'를 만들어줬던 그 일화. 학교에서 개최하는 '고무동력기' 대회에 출전하겠다며, 아버지와 함께 만들어볼 요량으로 문방구에서 2천 원짜리 고무동력기 하나를 사 왔던 그 기억.
당일 늦은 퇴근을 한 아버지가 고무동력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내 사연을 들었을 때의 아버지 표정과 목소리가 희미하게 느껴진다. '왜 이런 걸 사 왔어? 쓸데없이.'와 같은 느낌을 받았달까? 사실은 고무동력기 만들어 달라는 명분으로 매일 늦게 퇴근하는 아버지와 조금이라도 함께 시간을 갖고 싶었던 요량이었는데 말이다. 내성적인 내 나름의 시도는 그렇게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 당시의 의도를 아버지는 지금 알고나 있을까? 아마 모르겠지.)
의기소침해진 나는 그대로 방에 들어가 잠에 들었다. 그러고 맞이한 다음 날의 아침, 눈을 비비고 거실에 나서니 고무동력기는 세상 멋지게 전시돼 있었다. 말은 내게 그렇게 했지만, 전심을 다해 밤새 고무동력기를 만들어 주셨던 것이다. (정말 츤데레 같은 아버지였다.) 종이 날개에 분무기를 뿌리며 다 완성됐다며 내게 선물을 건냈다. (종이가 젖었다가 마르면 굉장히 팽팽해진다.) 어쨌든 아버지는 내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해 주었다.
이제 내가 아버지의 바통을 이어받아 딸아이에게 추억을 선사할 차례다. 아버지의 츤데레 방식(?)을 뒤로하고 나만의 방법으로 이 귀여운 녀석에게 다가가보려 한다. 훗날, 녀석이 언젠가 뒤돌아보았을 때 '아빠가 나한테 이렇게 해줬었지.'라며 포근한 기억으로 간직되길 바라본다. '산타썰매'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과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담아 그렇게 완성됐다. 이제 출격할 준비를 마쳤다. 딸아이가 맞이하는 세 번째 크리스마스. 기억에 남는 선물이 되길 바라며, 행복한 크리스마스가 되길 동시에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