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기르다 보면 시간의 소중함을 절로 느끼는 순간이 찾아온다. 시간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었던 미혼의 시간을 지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가 되면 어느샌가 혼자만의 시간은 이미 사라져버린 지 오래다. 형언할 수 없는 행복감이 들긴 하지만 허무하게 끝나버리는 하루의 삶에 입맛을 다시기도 한다.
양육하는 부모라면 한 번쯤은 느껴봤을 감정. 얼른 아이를 재우고 둘만의 시간을 갖자는 부부는 아이와 함께 누워다가 다음 날 아침을 맞이하기 일쑤고, 다음 날 아침, 서로 왜 깨우지 않았냐는 볼멘소리를 하기도 한다. (금요일, 토요일 밤에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정말이지 아쉽기 그지없다.)
특히 엄마를 잘 따르는 아이 덕에, 아내는 나보다 훨씬 자주 아이와 함께 방에서 한참을 꺄르르 하다가 이내 조용히 깊은 잠에 빠져들곤 한다. (가끔 코를 골기도 하고.) 이게 요즘 단순하기 그지없는 우리 가족의 삶이다.
아이가 주는 행복감과 내 삶에 대한 의미를 더하기 위해 일과 후에는 웬만한 일이 아니면 야근은 하지 않기로 했다. 이따금 급한 상황을 제외하곤 오후 7시 전후로 퇴근하는 것이 나의 요즘 회사 생활이다. 해야 할 일에 대한 부담감이 없다는 것은 거짓말이겠지만, 이를 잠시 덮어두는 것도 다른 방면에서는 우리 가족을 위한 일이니 별 수 없다. (가족을 위해 돈을 버는 것이니까.)
일주일에 한두 번은 육아시간(조퇴)를 사용하며,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을 아이에게 깜짝 이벤트를 선사하기도 한다. "엄마네?! 아빠네?!" 하며 달려오는 아이를 부수어져라 안아줄 때면, 하루의 긴장감과 피로는 날아가기 일쑤다.
그렇게 회사에서 나는 주연이 아닌 조연이 되기로 결심했다. 내로라하는 부서에 가고 싶은 목표도 희미해졌고, 승진을 위해 밤늦게까지 야근하는 등의 행위는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이제는 사실 못하겠다.'라는 말이 더 정확하겠지. 굉장한 실력자들이 즐비한 사내에서 주연로서의 삶을 살기 위한 목표는 내려놓았다.
그 대신, 아이와 아내에게만큼은 진정한 주류가 되어보려 한다. 아이에게는 지금과 같이 달려와 편히 안길 수 있는 거인 같은 아빠로, 아내에게는 따듯한 말 한마디를 건넬 수 있는 주류로 거듭나고 싶다는 말이겠다. 그렇게 나는 더욱더 가치 있는 일에 힘을 쏟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