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갈수록 언어력이 향상되는 딸아이와 함께 하다 보면, 웃긴 일이 한두 번 일어나는 게 아니다. 혼자 중얼거리며 신이 나 춤을 추며 동요를 부른다거나(산중호걸 동요를 참 좋아한다.), 부모에게 뾰로통 해져 "삐졌어"라는 말 한마디와 함께 등을 돌리고 있는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이 녀석 언제 이렇게 컸나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가 이제껏 관찰한 29개월 차에 접어든 우리 딸아이의 성격은 이러하다. 관찰을 깊게 하고, 쑥스러움이 많으며, 배려심이 있으나, 욕심도 은근히 많은 아이.(특히 음식에 유독 집착한다.) 이에 더해 한 가지를 더 꼽으라면 부모(특히 엄마)에 대한 애정도가 깊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주말에 차를 타고 교외로 이동하는 날이면, 나는 주로 운전을 아내는 아이 옆에 앉아 이동을 하곤 한다. 아이가 차 안에서 잠을 청할 때면, 늘 엄마 팔을 잡고 자는 게 습관화되어 있는데 이 때문에 아내의 왼팔은 항상 아이 몫이다. (아마 아이에게 팔베개를 하고 재워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럼 잠자기 전에는 어떠할까? 엄마와 창밖을 관찰하며 새로운 사물에 대해 학습을 하기도 하고, 책 어딘가에서 본 단어를 끄집어내어 함께 하나둘 뱉어보는 연습을 하기도 한다. "소나무, 지하철"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런 식으로 하나둘 배운 단어를 아이는 자기의 사고로 단어를 조립해 문장을 만들어내곤 한다. 그렇게 아이가 만들어낸 하나의 문장을 통해 웃긴 에피소드들도 하나둘 생긴다.
이 날은 자동차를 타고 교외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복직을 하고 육아를 병행하면서부터 자주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는 우리 부부는 주로 차에서 짧고 굵게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데, 그날은 쇼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이번에 이거 사야 할 거 같은데?"
"응? 뭔데? 필요하면 사야지 얼만데?"
"OO만원 이라는데?"
"당근에는 안 파나?"
등의 소소한 이야기를 이어가던 중, 갑자기 아이가 부부의 대화에 끼어든다.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내가 그거 사주까?"
아이의 말 한마디에 잠시 멈칫한 부부는 박장대소하며 아이에게 묻는다.
"뭐라고? 크크크. 호떡아 그럼 그거 어떻게 사줄 건데? 호떡이 돈 있어?"
"없어"
"그런데 어떻게 사주려고?"
"그냥 사줄 거야"
"그게 뭐야. 그냥 어떻게 사줘. 푸하하하"
그냥 사준다니. 말인지 방귀인지 모르겠는 녀석의 말에 부부는 박장대소한다. 본인 앞에 돈과 사탕 두 개가 놓여있으면 사탕부터 바로 집어낼 녀석이 호기롭게 부모에게 무언가를 사주겠다고 말한다. 돈도 없이 그냥 막무가내로 말이다. 녀석이 호기롭게 무언갈 사주겠다고 말하는 게 참 기특했다. 아이의 마음은 역시나 참으로 순수하다.
'딸아이는 대체 언제부터 우리의 말을 알아듣기 시작한 걸까? 그리고 얼마나 본인도 말하고 싶었을까?' 부부가 대화할 때, 아이가 어렴풋이는 알아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꼭 그런 것만도 아닌 듯하다.
이제는 아이가 대화를 어느 정도 읽어내고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말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됐다는 방증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부모인 우리도 조금 더 말조심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사실 나만 조심하면 된다.)
머리에 새치가 하나 둘 늘어나고, 팔자 주름 등으로 조금씩 내 외형적인 모습을 바꾸어나가는 시간 동안, 아이는 그 사이 엄청난 성장을 해버렸다. 곧 있으면 딸아이는 지금보다 더 성숙한 대화로 우리 부부의 대화에 함께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 순간에도 지금처럼 순수한 마음을 담아 웃음까지 한방에 전달할 수 있는 말 한마디를 건낼 수 있는 아이로 자라나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아이의 말 한마디에 부부는 그렇게 또 하나의 평생 잊지 못할 추억하나를 남기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