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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뽀로로를 사랑하게 된 진짜 이유

by 자향자

두 돌 넘은 우리 딸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무엇일까?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는 바와 같이 당연지사 뽀로로가 되겠다. 전국에 있는 아가들의 대통령 흔히, 뽀통령이라 불리는 펭귄 캐릭터를 우리 딸아이 역시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



그런데 왜 뽀로로라는 캐릭터는 아이들에게 그리 큰 사랑을 받고 있을까? 글쎄, 널리 알려진 대중성 때문 아닐까? 뽀로로의 업적(?)을 추월하는 캐릭터들이 하나둘 나타나고 있지만, 여전히 뽀로로의 존재는 굳건하다. 뽀로로 캐릭터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럼 하츄핑은?)


양치를 제때 하지 않는 아이의 관심을 끌기 위해, 부모가 큰맘 먹고 산 예쁜 옷을 입히기 위해 때로는 밖에서 외식이라도 하게 될 때면, 조금이라도 가만히 앉아있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부모는 영상을 아이들에게 노출시키면서부터 뽀로로는 어느샌가 아이들의 대통령으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그럼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나 또한 동일한 행동을 해왔다. 아이를 위해 동반 육아휴직을 단행했고, 그렇게 많은 시간을 아이와 보냈음에도 아이의 어르고 달래는 일에는 아직도 미숙하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 또한 뽀로로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것도 아내 몰래.



아내는 나와 다르다. 부모의 편의를 위해 자식을 바보로 만들 수 없다는 주의라고나 할까? 매번 몸으로 부대끼며 체력에 한계에 다다랐다가 함께 잠들며 영상의 노출을 최소화하며 딸아이와 함께 한다. (당연히 그녀도 사람이기에 아주 가끔 영상을 보여주긴 한다.)



나는 아내와 정반대다. 아내 없이 홀로 아이와 함께하는 날에는 미뤄두었던 숙제를 하는 냥, 유튜브를 틀어 아이에게 뽀로로 영상을 보여주기 바빴다. 아이에게 저녁을 얼른 먹이고, 영상을 틀어주며 아이가 멍하니 뽀로로와 그의 친구들을 쳐다보는 시간 동안 조금 여유롭게 저녁을 먹거나 밀린 빨래 등을 하곤 했다. (오직 나의 계획과 나만을 위해서.)



이기적인 아빠 덕분에 딸아이는 유튜브에 게재되어 있는 뽀로로 관련 영상을 대부분 시청했다. (아이는 그저 반복해서 꾸준히 보는 것일 뿐이다.) 그런 로망을 꿈꿨는지도 모르겠다. 엄한 엄마 앞에서 주눅 든 아이를 데리고 와서 맛있는 걸 몰래 사주거나, 흥미로운 놀이를 해주는 그런 상상들.



이런 행동들을 꾹 참고 지켜본 아내는 근래 들어 내게 굉장한 실망감을 느낀다 말했다. 깨진 독은 아무리 물을 부어도 채울 수 없듯이, 부모의 다른 교육 방식에 아이는 헷갈릴 수 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이번에도 아내 덕에 알면서도 외면했던 사실 하나를 자각하며 그렇게 아이에게 뽀로로를 아주 이따금 보는 친구를 만들어주기로 했다. 그 빈자리는 아빠가 채우는 것으로 하고 말이다. 아내와 최근에 다이소에 들러 물감과 붓 하나를 사 왔다.



어제는 아내가 씻을 동안 아이와 함께 그림 그리는 시간을 가졌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붓에 물감을 그득 묻혀 하얀 도화지 위에 추상화 비슷한 그림을 그려나간다. 한컷 그림을 즐긴 아이가 내게 붓을 건네며, 기차를 그려달라 말한다. 아이가 좋아하는 기차도 그려주고, 무서워하는 호랑이도 그리며, 작은 책상에 앉아 오손도손 둘만의 시간을 보냈다.



어떤 날은 아이가 좋아하는 추피책을 열댓 권 가지고 와 곯아떨어질 때까지 읽어주며, 아이와 뽀로로 사이에 미묘한 간극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제 공식적으로 아이가 뽀로로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목욕시간뿐

이다. 피겨로 변한 뽀로로와 그의 친구들을 데리고 딸아이가 신나게 놀며 영상을 자주 잊어주길 바랄 뿐이다.



아이가 뽀로로를 사랑하게 된 이유는 철저하게 내 덕분(?)이다. 한동안 기울어져있던 뽀로로에 대한 사랑을 이제는 내가 담뿍 받아볼 차례다. (그림을 잘 그리는 연습을 해야하나 아니면 맛깔나게 동화책을 읽는 연습을 더 해야하나 고민이다.) 본래 아이에게는 뽀로로보다 내가 1순위였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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