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난 지 3년 차가 되면서 항상 웃는 일만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사랑스러운 아이의 말 한마디에 그리고 몸동작에 절로 웃음이 나고 하루의 피로가 씻은 듯이 날아가는 날이 대부분이지만 머리가 자라고 아이의 자기주장이 강해지며, 부모와 아이 간에 벌어지는 기싸움도 상당하다.
특히나 요즘 들어, 응석을 부리는 일이 많아졌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거나, 본인이 원하지 않는 것들을 해야 하는 상황이 닥쳤을 때 아이는 "싫어, 나빠"를 연발하며 울음을 시전 하곤 한다. 나도 처음에는 이런 모습이 안쓰러워 아이를 달래주는 날이 많았다. (아이가 뭘 알겠어, 아직은 잘 모를 거야 하면서 말이다.)
부모 중 한 명은 아이를 지도하는 역할을 맡아야 하는데, 현재 그 역할은 나보다 훨씬 똑 부러진 아내가 맡고 있다. 아빠가 훈육의 역할을 맡게 된다면 안 그래도 나에게 거리감을 느끼는 아이가 더욱 아빠를 멀리할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고, 아내 본인이 그 역할을 자처하겠다 자발적인 의견에 따라 역할은 정해졌다.
최근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설 연휴를 맞아 조부모에게 단정한 모습으로 세배를 하기 위해 아이 한복을 준비한 것. 예쁜 레이스가 달린 아이보리색 개량 한복을 보고 아이는 옷을 입어보는 과정에서 질색팔색을 해댔다. 허리 부분을 조여주기 위한 고무줄이 갑갑했는지 안 입겠다며 울고불고 난리를 친 것.
어린이집까지는 어르고 달래서 입혀 보냈는데, 막상 다시 입혀보려 하니 아이는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아내 친구로부터 물려받은 전통 한복 하나를 함께 들고 가 아내의 끈질긴 설득으로 전통 한복을 간신히 입히며 조부모에게 세배를 올렸다. (집으로 돌아온 날, 아내는 아이와 함께 뻗어버렸다.)
지난 주말에도 아이와 굉장한 신경전이 있었다. 저녁을 먹기 전, 아이가 냉동실 문을 열고 하츄핑 캐릭터가 포장된 하드 하나를 들고 와 하츄핑과 같이 밥을 먹겠다고 생떼를 부린 것. 차분한 대화도 설득의 기술도 통하지 않는 3살 딸아이와 다시 전쟁터로 들어갈 시간이었다.
"밥 먹을 때는 아이스크림 갖다 놓는 거야. 같이 쥐고 먹으면 아이스크림 다 녹아서 못 먹어."
"밥 안 먹을 거야."
"먹지 마, 대신 이따가 엄마 아빠 아이스크림 먹을 때, 달라고 하지 마"
"나빠!"
그렇게 아이의 울음은 다시 시작됐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순한 아이가 있나? 생각했는데 아이는 그사이 훌쩍 커버려 부모의 애간장을 태우는 나이가 됐다. 엄마는 아이를 안고 방으로 들어가 한참을 지도했다. (그 사이 하츄핑 아이스크림은 죄다 녹아버렸다.)
세상 저리 가라 울어대며 씩씩대는 딸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아내인 엄마도 당연히 지쳤으리라. 본인인들 이런 역할을 하고 싶을까? 30분 넘게 대치하던 딸아이가 조용해졌다. 입밖에도 내기 싫어하던 미안하단 말을 엄마에게 했을 것이다.
어르고 달래주고 싶지만 아이의 올바른 인성을 위해서 더 이상 이전과 같은 행동은 하지 않는다. 잘못한 행동을 했을 때, 울음보를 터뜨리며 나를 쳐다보는 순간은 눈을 회피하고, 아내의 충분한 훈육 이후 진정된 아이를 따뜻하게 안아주곤 한다. (물론 아내도 지도 이후에는 힘껏 안아주는 것은 물론이다.) 내성적인 아빠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이다.
우리 부모님도 그러했고, 부모가 된 우리 부부의 마음도 한결같다. 너무나 사랑스럽지만, 긴 건 기고 아닌 건 아니다.라는 철칙은 확고하다. 너무 많은 사랑을 주었던 탓(?)에 아이와 한 동안 씨름하는 날이 잦을 듯하다. 여기서 안짱다리, 다리 때로는 되치기로 부단하게 아이와 다투며(?) 세상은 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려와 인내가 있어야 끝이 달콤하다는 것을 딸아이에게 안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