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퇴고를 하며 깨달은 것

by 자향자

여봐란듯이 나의 속도에 맞추어 출판사가 내준 숙제를 하고 있을 즈음의 어느 날, 내가 생각한 제출 기한과 편집자가 제시한 기한에 오류가 있음을 발견했다. 정확히는 나의 잘못이었다. 2주 정도의 충분한 시간이 있다고 생각한 나의 생각과 다르게 편집자가 제시한 기한은 그보다 일주일이나 앞섰다. 완벽한 나의 착오였다.



약속을 중요시하는 내게 크나큰 실수였다. 편집자가 내준 숙제를 차근히 되짚어 봤다. 원고 1차 수정을 해야 하고, 장제목과 소제목도 바꿔야 한다. 더불어 어떤 스타일의 표지를 원하는지 전반적인 콘셉트 시안 등의 사항을 수정 요청했다. 글쎄, 내 착오가 컸다지만, 이 수많은 일들을 단 5일 안에 끝내는 게 과연 말이나 됐을까? 그것도 단 한번 출간 경험이 있던 내게 말이다. 내겐 어불성설이었다.



어쨌든 나의 착각이었음은 분명하니 편집자에게 연락해 이 사실을 말하고 기한의 연장을 요청했다. 솔직히 2주라는 기간이 주어졌다고 가정했을 때, 처음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쨌든 경험이 한 번은 있기도 했었고, 게다가 출판사가 내준 숙제의 정도가 이미 내겐 어느 정도 익숙하기도 했으니 아마 가능하겠지 싶었다.



생각과 실행의 속도는 판이하게 다르다. 이는 무슨 말일까? 중학교 시절, 기말고사를 대비해 밤샘 공부를 한 적이 있다. 벼락치기 공부 계획으로 '이렇게 저렇게 밤새 시간을 쪼개 공부를 하면 되겠다'라던 나의 계획은 사실 실현 불가능한 일이었다. 밤샘 공부한 결과는 어땠을까. 대부분의 과목에서 중간고사와 비슷한 성적을 받게 된다. 행동은 생각을 따라갈 수 없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의 나도 그때와 다를 바 없었다. 원고 수정에만도 두세 시간을 투입하고 장제목과 소제목을 바꾸는 등의 일까지 병행해야 했으니, 답답하더라. 교정은 교정대로 진행이 안되고, 새로운 제목을 만드는 일을 더욱 어렵게 느껴지고 마음만 조급해졌다. 실제로 기한 이틀 전 즈음에서야 원고 수정이라는 숙제 하나를 마치게 됐다. 그간 내가 얼마나 자만했는지,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회사에서는 회사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었다. 또 한 번 거대한 민원의 쓰나미가 밀려오게 된 것이었다. 난생처음 해보는 업무가 이제야 조금씩 적응돼가고 있었는데 또 한 번 그들이 내게 불꽃놀이를 하자는 제안을 내게 건넸다. (해보자는 건가.) 안 그래도 출간 숙제 때문에 정신없는데, 기가 막힌 타이밍에 걸어오는 대형 민원이었다. (그들은 항상 그래왔다.)



이 위기를 나는 어떻게 타개했을까? 숙제를 선택해서 하기로 했다. 전반적인 원고는 한 번은 손을 봐둔 상태였으니 일단은 문제없었고, 혼자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쩌면 편집자가 요청한 모든 숙제를 할 순 없더라도 몇 가지를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시간엔 물리적 제한이 있으니 내겐 그 방법이 최선이었다. 퇴근 후 10시가 넘어 다시 스터디 카페를 들렀다. (이 시간 대엔 사람이 많지 않다.) 고요한 카페 안, 커피 한 모금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독자의 눈을 사로잡는 장제목을 하나씩 바꿔나갔다. 40개나 되는 소제목들은 이번 1차 편집 과정에서 다 건드릴 순 없었다. 어쨌든 내가 심혈을 기울여 부여한 에피소드의 제목이기도 했으니 굳이 바꿀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편집자와 약속한 7월의 10일. 자정이 넘은 시간, 편집자에게 회신 메일을 보냈다. '늦은 회신드려 죄송합니다. 요청하신 부분 보완해 보내드립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이다. 이 한 문장 쓰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경험이 또 다른 시작에 있어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하나, 흐름의 정도를 알 수 있을 뿐이지, 매 순간 벌어지는 이벤트에 적재적소로 대응하기엔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원고에 대한 깊은 사색도 사색이라지만 이번 첫 번째 퇴고 과정에서 내가 얻어낸 가장 중요한 결과물은 경험이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경험은 그저 일정 부분에 도움을 줄 수 있을 뿐, 그 이상 그 이하의 어느 것도 아니다. 출간을 하면서 인생을 배워나간다. 다음 편집 과정에서 나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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