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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시간이 필요할 때

by 자향자

"나도 내 시간이 필요해." 아내로부터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당연히 언젠가 내게 할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한참을 꾸역꾸역 마음을 다잡아오던 그녀도 더이상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인가보다. 사실 나는 이미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시기의 차이일 뿐이지 그녀가 내게 위와 같은 말을 언젠가 하리라 당연하게 생각했다.



2023년을 기해 육아휴직을 한 이후, 내 삶의 신조는 180도 바뀌었다.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죽는다.' 그도 그럴 것이 딸아이로부터 얻은 '기한이 있는 조건부 자유'를 얻고 나서 내 사고의 한계가 깨어져버렸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 아내의 강력한 육아휴직 권유가 없었다면, 나 혼자선 절대로 내릴 수 없는 결정이었겠지만.



아내는 항상 나를 응원해왔다. 회사에서 어떤 성과물이 나오는 날에도, 일이 꼬여버린 부정적인 날에도 늘 그렇듯, 마치 나의 엄마와 같이 칭찬 그리고 위로를 해주던 그녀였다.


"역시 우리 남편 대단하다."

"에이 뭐 그런 일로 시무룩해. 한잔하고 털어버려."


7년 간 결혼 생활 내내 그녀가 내게 큰 과오를 저지른 적은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도 역시 없다.) 나를 열렬히 응원해주는 아내 덕분에 2년 이란 시간 동안 꽤 많은 일들을 해냈다.



글을 쓰고 싶다던 나를 배려해 충분한 시간을 내어 주고 전적으로 아이를 돌보면서 헌신했고, 그 결과물로 나는 그녀에게 내 이름으로 출간된 3권의 책을 선물했다. 주중 퇴근 후, 아이를 씻기거나 혹은 미처 씻기지 못한 날에도 글을 쓰러가야한다며 아이를 맡겨두고 나가버린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런 그녀 덕분에 나는 등 뒤에 날개를 단 듯이 훨훨 날아올랐다. 강의를 들어야한다며, 글을 써야한다며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누리려고만 했던 것이었다. (못났다.) 그런 그녀가 내게 말했다. "이제는 나도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나는 그녀의 말에 무어라 답했을까. "그래야지, 언제가 좋겠어?"



일주일에 이틀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그녀는 내게 말했다. 당연한 이야기를 내가 이제껏 하지 못하게 막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봤다. 사실 일전에도 그녀는 이런 말을 내게 한 적 있었다. 다만, 당시의 나는 두번째 책을 집필하는데 집중하고 있었던 터라, 그녀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을 뿐이었다.



본인이 그토록 원했을 자기만의 시간. 아내는 아이를 홀로 돌봐오면서,자연스레 아이는 엄마와 조금 더 깊은 관계가 형성돼다. 그리고 아내는 육아에 대한 짐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이를 '아이가 엄마만 찾는데 뭘.' 알면서도 모른척 했던 나 자신을 반성한다.



'통제 되지 않은 상황에서 누구든 폭발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 내가 믿고 있는 지론이다. 백색 형광등 아래 듀얼 모니터를 바라보며 직장인으로 살아갈 때보다, 육아휴직으로 조건부 자유를 얻고 주체적인 삶을 전개했을 때 나는 훨씬 삶에 대한 만족감이 컸다. (금전적으로 아쉬운 점은 물론 있었다만.)



그녀도 나와 같은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엄마로써의 삶을 잠시 내려놓고 이제 조금은 나의 꿈을 내려놓고, 그녀가 지금보다는 조금 더 자유롭도록 열렬히 응원해줄 차례다. 엄마, 직장인의 삶이 아닌 그녀 자신으로써의 삶을 위하여.



오늘은 우리 부부의 결혼 기념일이다. 7년의 세월을 함께 보내게 된 날. 의미가 남다르다. 독일의 영화배우 시몬 시뇨레라는 이는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부부 생활을 하나로 묶는 것은 쇠사슬이 아니라 수백 개의 작은 실이다." 작은 실로 얽힌 우리 부부의 삶이 더욱 촘촘하게 얽이길 간절히 바라본다.



사랑한다. 나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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