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남자 공무원의 육아휴직 세 번째 이야기
꽃피는 봄이 오는 3월이 성큼 다가왔다. 지난 1월 육아휴직 이후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나날이 아무래도 많다 보니 여유가 있는 듯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때문에 시간의 소중함을 더욱더 절실하게 느끼는 요즘이다. 요즘 나의 하루는 '순삭'이라는 단어로 대체 가능하기에 충분하다.
작년 겨울 육아휴직을 앞두고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핸드폰 메모장을 열어 수십 개 적어놨었는데, 호기롭게 새로 시작한 일들도 있지만 아직까지 엄두도 못 낸 것들도 굉장히 많다. 머릿속으로는 요래조래 하면 되겠지 싶었는데 막상 육아를 해보니 함께 병행한다는 게 생각보다는 쉽지 않음을 깨닫고 있다. 내가 생각보다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구나 새삼 깨닫는 요즘이랄까.
휴직만 하면 나는 뭐든 다 해낼 수 있으리라 다짐하면서 들어왔는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자유로이 주어진 시간을 스스로 통제하는 것도 쉽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회사 다닐 때와 같이 루틴화된 하루는 없다. 그냥 아이에게 맞춰서 당장의 주어진 과업을 쳐내다 보면 하루는 어느샌가 순삭이다. 이 때문에 술은 되도록 자제하려 하는 편인데 이는 술 한잔으로 다음 날의 모든 계획이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여하튼 내 몸은 하나인데 나 스스로 벌여놓은 일들 덕분에 아내는 전보다 더욱더 육아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집중하고 되었다. 무언가에 새로운 도전하는 것은 정말 의미 있는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생각보다 많이 벌여놓은 나의 과업들로 인하여 아내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벌여놓은 일들을 일일이 챙기는 것에도 슬슬 힘이 부치면서 조금씩 삐걱거리는 요즘 나는 육아도 아니고 내 일에 집중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최근 2~3일은 정말 자포자기 상태로 손 놓고 멍 때리고 있었다. 아내는 괜찮다고 하고 싶은 것들 다 해보라고 하지만 인풋 대비 아직 아웃풋이 나와주지 않는 이 시점에 나는 굉장한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
이 때문에 시간이라는 녀석이 더욱더 빠르게 지나간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 가족을 위해 시작한 일들이 오히려 피해를 줄 수도 있겠구나. 뭐 해본답시고 육아를 아내에게 살짝 떠민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아직 복귀까지 9개월이란 시간이 충분하다면 충분하게 남아있지만 그럼에도 뭔가 시간에 쫓기고 있는 이 느낌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지금 가족의 안녕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인가? 매번 핑곗거리를 찾으면서 차일피일 내가 할 일을 미뤘던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딸아이는 이제 180일을 지나 곧 있으면 200일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따금 딸아이가 낮잠을 자다 잠에서 깨면 우리 부부는 그 옆에 누워 생긋생긋 웃고 있는 아이와 도란도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우리 셋이 함께 보낼 수 있는 이 시간의 소중함에 감사하면서 한편으로는 이제 9개월이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서 과연 나는 그리고 우리는 어떤 값진 일들을 해낼 수 있을까 고민하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