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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남이 Oct 28. 2024

출판사 숙제, 피가 되고 살이 되리라(2)

얼마 지나지 않아 편집자로부터 2번째 숙제가 전달되었다. 메일 제목은 피드백이라 기재되어 있지만 매번 숙제처럼 느껴졌던 편집자의 메일 한통. 본격적인 숙제를 내놓기 전에 앞서 메일 서두에는 출간은 올해 안에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회사 업무로 인해 원고 수정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나의 토로에 편집자는 주말을 포함하여 보완 기한 조금 늘려 준다는 답변을 전했다. 다소 시간의 여유가 생긴 것 같아 안심이 되긴 했지만 또 어떤 숙제를 줄지 긴장하며 마우스 스크롤을 내렸다.



숙제를 내주기 전 환기 시키려는 의도였는지 몰라도 먼저 책제목과 부제가 확정됐다는 소식을 내게 전했다. 출간하게 될 책 제목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책 제목은「엄마도 아빠도 육아휴직 중」으로 이어진 부제는 「박봉 공무원 부부가 들려주는 공동육아 이야기」였다. 일전에 출판사로부터 제목 및 부제에 대해 본인이 원하는 책 제목 및 부제에 대한 예상 리스트 10개 정도를 추려 보내달라 했었는데 그 10개의 리스트에서 1차적으로 4개의 안으로 좁혀지고 그중 하나가 내부 회의를 거쳐 2차 최종 선택 된 것이었다. 꽤나 마음에 들었다.  부부가 동반으로 육아휴직한 경험을 담백하게 담아낸 느낌이었다. 출판사라는 게 괜히 있는 게 아니지 싶었다.



이어진 내용은 두 번째 숙제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목차에 대한 수정 및 보완 요청의 건이었다. 책의 전체적인 프레임을 확인할 수 있는 목차. 여기에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지 못하면 바로 이탈할 게 뻔하다.  브런치 글을 작성할 때는 내 맘대로 제목을 짓고 발행하기만 누르면 끝이었는데, 이제는 독자를 고려한 목차의 제목을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내야 한다는 데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부담감이 동시에 들었다. 어쨌든 돈이 들어가는 문제였으니 출판사나 작자 입장에서나 꽤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책을 출간하는 것은 결국 공장에서 제품을 만드는 것과 같다.



이후 부족한 원고량에 대한 보완 요청,  내가 즐겨 사용한 구어체를 문어체로 수정해 달라는 요구, 여전히 발견되는 오탈자 재확인 등 부드럽지만 날카로운 지적이 메일을 꽉 채웠다. 내 눈에는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았던 부분이 편집자의 시선으로 바라봤을 때는 적나라하게 드러나니 민망하기도 했고, ‘더 나은 집중력이 필요한 시점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또다시 일주일 동안 퇴근 후 스터디카페를 들락날락하며 기한 내 숙제를 마치고 다시 피드백 받고를 반복하게 됐다.



원고를 수정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도통 돌아가지 않는 내 머리였다. 내 원고는 구어체가 들어간 문장이 많았던 지라 이를 문어체로 바꿔야 하는 양이 상당했다. 구어체를 문어체처럼 바꾸면 문장이 이상해지고 다른 부분을 고치면 더 이상해지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곤 했다. '책을 쓸 거였으면 진작 문어체로 써놓을 걸.'이라는 껄무새 같은 말을 연신 되뇌며 작업을 했던 기억이 난다. 고치고 고치기를 반복하다 마음에 드는 문장이 안 나올 때는  '아. 왜 내가 고생을 사서 하고 있지? 바람 솔솔 부는 밤에 말이야.' 라는 푸념을 하기도 했다.



에세이 하나에도 이렇게 머리 터질 것 같은데 장편소설 등을 쓰는 작가들은 얼마나 오랜 시간을 투자하며 고민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 비싸긴 하지만 관점을 조금 달리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의 응축된 노하우와 삶의 경험을 단번에 습득할 수 있고 작가가 책을 만들기 위해 투입한 시간을 상상하면 '책이 비싸다.'라는 말을 쉽게 꺼내긴 쉽지 않다. 물론 내 책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다른 한편, 체력적이 문제도 조금씩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퇴근 이후 집에 잠시 들렀다 늦은 저녁을 먹고 씻고 다시 스터디카페로 출근(?)을 하다시피 하니 초반에는 그렇다 쳐도 조금씩 피로도가 쌓여갔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의 경우 새벽 늦은 시간까지 원고를 수정 했던 기억이 있는데 맨 마지막까지 홀로 남아 작업을 진행하며 여러 생각이 들곤 했다. 공무원 수험 생활 때만큼 힘들진 않았지만, 그래도 연중 가장 날씨 좋은 날, 빨간펜으로 원고를 수정하는 내 모습이 조금은 처량해 보였다고나 할까? 늦은 밤까지 모니터와 출력물을 쳐다보고 있노라니 눈에 과부하가 걸리는 느낌이었으니까.



2차 숙제에 대한 회신 이후 연달아 3차, 4차 원고 수정이 진행될수록 몸이 적응해서인지 아니면 글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인지는 몰라도 출판사에서 내주는 숙제에도 점차 적응할 수 있었다. 글쓰기를 제대로 배워본 적 없는 나였느니 수정할 사항도 많고 이에 따른 추가 주문도 정말 많았지만 계약 전 출판사에서  '글을 쓰면서 배우는 것이 많을 것이다.' 라고 이야기했던 것처럼 직접 부딪히며 수정해 보니 글쓰기를 하는 데 있어 아주 조금은 성장하지 않았나 싶다. 기존에 늘 써왔던 문장 대신 다른 문장을 써보면 어떨까 고민하고 단어 선택에도 이게 맞는지 한번 더 확인하는 정도 등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출판사에서 내준 숙제는 대부분 기한 내 제출할 수 있었다. 출간에 대한 열망과 올해 안에 뭔가 성과를 내고 싶다는 인정의 욕구가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회사에서 업무를 하면서 간헐적으로 성과에 대한 만족감을 느끼곤 했지만 이번 출간에 대한 나의 욕구에 비하면 새발이 피 정도일 것이다. 주체적으로 내가 무언가를 도전하고 온전한 내 의지에 의해 최종 결과물이 나오는 순간이 반드시 오리라 되뇌었다.



그렇게 10월 내내 4차 수정까지 이어가며 출간의 8부 능선을 넘었다.  올해 안에 책을 내는 건 무리일 것 같다는 아내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어설픈 면이 많아 보였지만 어쨌든 원고를 완성했다. 책 표지를 확정하고 보도자료 그리고 최종 수정 한 번까지 이어지면 드디어 책이 세상밖으로 나올 수 있다.  이제 마무리만 잘 지으면 될 것 같았다.



인간의 추진력은 정말 무궁무진하다. 진정으로 목표하는 바가 있으면 험난한 과정이 있더라도 그 순간을 오히려 즐기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눈알이 빠질 것 같고 졸려 죽겠었지만 책을 출간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나는 여기까지 다다랐다. 사실 즐거웠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게 이처럼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 시간이었다. 자신감 상승은 물론이거니와 '작가' 라는 인생 부캐를 발굴하는 기회가 출간으로 마련됐다. 여러분에게도 가슴 뛰는 무언가가 반드시 나타나길 희망한다.



백신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랑스의 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목표에 달성한 비밀을 말해줄게. 나의 강점은 바로 끈기야." 포기만 안 하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출간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정보의 생산자가 될 기회가 내게 주어졌다.어떤 일을 시작할 때 매번 난관에 부딪히면 지레 겁먹고 포기했던 내가 오랜만에 의미있는 성과를 낼 순간이 성큼 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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