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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아나 Dec 18. 2015

정말 혼자가 되었다

마지막 말의 무게



 "너는 나보다 강하니까 나보다 더 잘할 거야. 힘든 일이 많았지만 다 견뎌내. 다 견뎌내고 더 강해져. 더 강하게 살아야 해"


그녀가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 내게 남긴 말 다운 말이었다. 진짜 마지막 말은 말이라기보단 절규나 외침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오래전부터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오래전부터 마지막을 암시하는 말을 많이 해왔었다. 그녀는 몇 년 전에도 몇 달 전에도 착실하게 언제가 될지 모르는 마지막을 준비해왔다. 그저 나는 그것들이 내게 닥쳐올 미래의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별 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감정의 소모만 아니라면 생활 자체는 오히려 더 편해졌다. 온전히 내게 투자할 시간들은 많아졌고 내가 챙겨야 할 사람도 나말고는 없었다. 마치 아무 일 없는 듯 그녀가 잠시 어딘가로 여행을 갔다는 느낌이었다.


하루는 먹고 싶었던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남는 모든 시간 동안 하고 싶었던 게임을 했다. 새벽 3시가 넘어서야 자려고 이불속에 누웠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눈을 굴리다 보니 많은 것들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잊고 싶었던,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되는 기억들이었다.


그녀와 관련된 온갖 종류의 마지막들을 떠올려봤다. 그녀와 마지막으로 먹었던 음식, 그녀와 마지막으로 나눴던 대화, 그녀와 마지막으로 가봤던 여행, 그녀와 마지막으로 싸웠던 날. 하나씩 떠올릴 때마다 마지막이라는 단어의 무게는 점점 무거워졌다.


그녀는 줄곧 자신이 고아라고 했었다. 실제로 우리 두 사람이 서로에게 유일한 가족이었으니, 그녀가 자신의 처지를 고아라고 생각하는 것도 온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참 싫었다. 내 존재를 부정당하는 기분이라 싫었다. 나는 그때마다 그녀가 참 고독에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더 그녀 옆을 지켜왔었다.


이제 그녀는 떠났고 그녀의 말대로 지금의 내 처지가 고아였다. 친구들이 별 생각 없이 떠드는 가족 이야기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게 되었고, 내게 잔소리하는 사람도, 귀가를 보고해야 할 사람도 없다. 

이유 없이 몰려드는 외로움을 나 혼자 견뎌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야 그녀가 늘 외로워하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벌써 수십 년간 이런 외로움과 싸워왔던 것이다.


 "너는 나보다 강하니까 나보다 더 잘할 거야. 힘든 일이 많았지만 다 견뎌내. 다 견뎌내고 더 강해져. 더 강하게 살아야 해"


어딘가 쓸쓸하면서도 아쉬운 듯, 갈라진 음성으로 조심스레 전하던 그 말. 나는 설마 그 말이 마지막 말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리고 정말 혼자가 된 지금,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의 무게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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