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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아나 Dec 03. 2015

관성은 없었다

이겨내고 견뎌내기보다는 멈췄을 뿐이다


 '생각보다는 견딜만했다. 아니 실은 내 세계가 무너졌다.'


 내게 있어서 가족이란 엄마 한 명뿐이었다. 아빠도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형제도 친척도 없었다. 연고도 없는 서울에서 여자 혼자 사내아이를 멀쩡히 뛰어다닐 수 있게 키워내는 일이란 보석을 세공하는 일보다 어려웠을 것이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이 세계에서 오직 두 사람만이 가족이고 친구였다. 그리고 그녀는 내가 그 보답을 다 하기도 전에 날 떠났다.


 그저 조금 심각한 위염인 줄 알고 찾았던 병원에서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의 위암인 것을 알게 된지 약 2달. 그 분야의 저명한 의사답게 남은 수명도 정확하게 맞혔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야위어가고, 점점 죽음으로 가까워진다는 것은 생각 외로 담담했다. 


아니 어쩌면 나는 그 모든 사실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는 애새끼였을지도 모른다. 위암이니 4 기니 복수가 차니.. 그런 소리들을 해도 나는 그녀가 죽음을 맞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TV나 영화에서 보던 암환자들처럼 머리가 빠지지도 않았고, 기운이 없어 매일매일 기력을 잃지도 않았다. 아니 사실은 매일매일 기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죽음을 실감하게 된 것은 섬망 증상이 왔을 때부터였다. 나는 아직도 그 증상이 어째서 사람의 뇌를 좀먹게 되는 것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암세포가 뇌까지 침투한 것인지 뭔지 잘 모른다. 그저 섬망이 오면 마치 치매환자처럼 변하게 된다는 것 말고는 아는 것이 없다. 


다른 친척도 아무도 없이 혼자 암환자를 간병하는 일이란 아주 본능적인 부분부터 문제가 된다. 당시 내게는 허기였다. 다른 사람들이 번갈아가며 간병을 하는 동안 나는 온전히 혼자 그녀를 지켜야 했고, 끼니를 거르는 것도 한계였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잠시 동의를 구해 편의점으로 달려가 간단한 음식을 먹고 왔을 뿐이다. 단지 그것 뿐이었는데 그 짧은 사이 그녀는 깨끗한 정신을 잃었다. 

평소 외로움에 약했던 그녀였기에 그 병실에 혼자 누워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이었을지 상상하고 싶지 않다. 그 이후로 그녀의 정신은 수명 다 한 백열등처럼 깜빡이기 시작했다.


 이후로 그녀는 간호사에게 이해할 수 없는 부탁을 하거나, 사소한 일로 내게 화를 내곤 했다. 별로 두렵거나 낯설지는 않았다. 그때 나는 그냥 모든 것이 힘들었을 뿐이다. 


실제로 내가 당시 가장 원한 것은 누구라도 좋으니 한 사람만 더 있었으면 싶었다. 그리고 고통은 점점 심해졌고 그 때문에 쓰는 진통제의 강도도 강해졌다. 그러나 약효는 없었다. 


결국 그 날밤 우리는 간호사들 바로 옆 비어있는 병실로 옮겨졌다. 간호사들이 가까운 곳에 있었기에 관리받기에도 편했다. 처음엔 조금 안도했고 조금은 편안한 곳이라고 느꼈다. 

사람이 없는 곳이라 조금 춥다는 것 말고는 별 다른 점을 느끼지 못했다. 그곳은 사태가 위급해진 환자들을 보내는 일종의 특별 관리실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곳에 있는 의사나 간호사들은 모두 프로였다. 이러한 형태의 죽음을 수십 혹은 수백번도 겪어왔으리라. 

그래서인지 다들 태연했고 어쩐지 나도 그 분위기에 휩쓸렸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그녀는 살려달라는 말 말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것은 말이라기보다는 비명이나 울부짖음에 가까웠다. 결국 고통을 견디지 못해 진통제를 아예 몸에 달아놓았다. 병원에서도 이 모든 일을 혼자서 처리해야 하는 내가 걱정이 되는지 제법 배려들을 해줬다. 

그러면서도 편안하게 보내드릴 것인지 아니면 중환자실로 보내 고통스러운 연명을 할 것인지 몇 번이고 물었다. 


결국 나는 그곳에서 진통제를 통한 호스피스 진료를 선택했다. 나는 그녀를 편안히 죽이겠다고 선택한 것이다. 웃기는 말이었다. 죽음에 편안한 길이 어디 있을까. 살려달라고 울부짖던 그녀에게 나는 사형선고였다. 어쩌면 그냥 내가 편안해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결국 그녀는 떠났고, 내 세계도 멈춰버렸다. 관성이 있었더라면 우스꽝스럽게 몇 바퀴나 굴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게는 관성이 없었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처음부터 느리게 걸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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