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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아나 Apr 08. 2016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실은 괜찮지 않아


"이제 괜찮아 보이네."

"많이 좋아졌네."

"요샌 좀 괜찮아?"


조심스레 물어오는 질문이 더 이상 예전처럼 아프진 않다. 그것이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이전과 같은 모습 이리라 생각하며 나는 환하게 웃는다.


"괜찮아."


'실은 괜찮지 않아.' 


꼭 한 달 정도가 남았다. 그래, 지금부터 한 달 정도만 지나면 벌써 그녀가 떠난 지 1년이 된다. 입안에서 세 번쯤 굴려보고 다시 내뱉어본다. 


'벌써'


군대 간 친구들에게 전화가 오면 꼭 하는 말이 있다. "벌써?" 그들은 늘 내게 시간이 더디다고 말하지만 내 세계의 시간은 늘 빨랐다. 어쩔 수 없었다. 단절되지 않은 세상은 시간의 흐름도 느낄 새 없이 빨리 지나가버리니까.


1년.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내게는 짧았다. 짧았다기보다는 멈춰있다. 지금 당장이라도 1년 전 이 날의 기억을 더듬어볼 수 있다. 이때만 해도 그녀가 날 떠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단언컨대 못한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았다.


살 수 있고, 별 일이 아니며, 여태껏 그래 왔듯 그래 그런 일도 있었지. 하며 함께 되새기는 날이 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생각해보면 난 참 세상을 낙관적으로 바라보며 살았다. 물론 내가 살아온 삶이 늘 바닥과 붙어있었기 때문에 그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내 낙관적인 삶의 태도가 일종의 자기방어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 상황이 어떻게든 나아질 것이라 믿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전기, 가스가 끊기고 반지하방의 월세가 밀려 주인에게 방 빼라는 야속한 말을 들었을 때도 나는 필사적으로 그녀를 안심시켰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해결할 수 있다. 실은 괜찮지 않으면서도 말이다.


괜찮다는 말은 내게 방패이자 창이었다. 


나를 지키고 가족을 지키고 엿같은 삶에게 반격도 할 수 있었던 무기. 그리고 나는 그녀가 떠난 지 1년이 거의 다 되어서야 그 무기를 다시 찾아들었다. 


예전엔 좀 더 버릇처럼 자연스러웠던 말이 요샌 고등어 잔가시처럼 입안을 찌른다. 물론 나는 여전히 그 시간 속에 멈춰있지만 조금씩 일어설 준비를 해야 한다.


확실히 치료를 받고 스스로도 이전과 달리 많이 좋아졌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 걱정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층 더 밝아진 표정을 보이고 다시 웃고 떠들 수 있게 되었다.


불발탄 다루듯 나를 조심스레 다루던 사람들은 그제야 긴장의 끈을 놓는다. 그럼 나도 함께 긴장이 풀린다. 


'그래,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그리고 텅 빈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나는 다시금 깨닫게 된다. 불발탄은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라고.


우울, 무기력, 외로움, 그리움, 질척한 감정들은 끈적이며 달라붙는다. 그들은 잔인하게도 내가 약해지는 순간을 알고 그때만 찾아온다. 


어쩌면 이 질척한 감정들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영원히 내 곁을 맴돌지도 모른다. 시시각각 나를 괴롭히며 종당엔 나를 미치게 만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망쳐서는 끝나지 않는다는 걸 이미 충분히 겪어왔다.


하루하루 그 날에 멈춰 침전하는 삶을 살지만 낙관적 태도로 살아가던 과거의 나를 떠올려본다. 그리고 질척한 감정들 조차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진짜 어른이 되자고 다짐하며 다시 주문을 외워본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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