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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vin Mar 22. 2016

Some people, Some other place.

[Chapter I]#3. 불편한 진실들

달리는 차창밖, 서울과 다른 낯선 건물들이 뭐가 이렇게 많은 거냐.

건물 외벽의 울긋불긋한 중국어 간판이 아니더라도 낯선 빌딩들은 내가 지금 한국에 있지 않음을 알 수 있게끔 한다. 회사 운전기사 '펑'은 매 순간 사고의 경계를 넘나드는 중국의 도로 위에서 늘 느긋한 표정으로 핸들을 컨트롤한다. 짧게 자른 머리에 매우 작은 머리와 얼굴의 그는 양손 새끼손가락의 손톱을 2센티미터 이상 기르고 있다. 나는 그가 그 긴 손톱을 활용해, 박스의 얇은 비닐을 찢거나, 코를 후비고, 전화기 틈에낀 때를 빼는 모습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그리고 차량을 주차해놓고  대기할 때는 어떤 도구로 늘 그 손톱을 관리한다. (그렇다고 위생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는 어지간해서는  운전 중에 화를 내거나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물론 반드시 주행 중에 발생하는  예고 없이 끼어드는 차량, 보행자들의 무단횡단, 마주오던 차가 심지어 중앙선을 넘거나 하는 일이 있어도, 살짝 입술을 세게 다물은 채, 상향등을 몇 번 날려주고는 다시 평온한 주행모드로 돌아온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봤을 땐, 중국의 도로는  살아있는 난장판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만, 서로 언제 규칙을 어길지도 모른다는 공식은 오히려 도로 위 차량들의 평균속도를 60km/h 이하로 떨어뜨렸다. 나는 극도로 불안하고, 그들은 상대적으로 평온하다. 뭐 조금만 한산해도 100km/h를 쉽게 넘기는 서울의 순환도로와 비교하면 사고가 날지언정 죽을 것 같지는 않다는 안심이 들기도 하지만.


 처음에 중국이란 나라는 모든 것이 불편했다. 택시에 타서 정확히 길을 설명하지 않으면 제대로 가는 경우가 많지 않았고, 기온은 습식 오븐으로 쪄내는 듯이 불쾌했고, 장마는 머리가 아프고 무거울 지경으로 습해서 빨래는 마르지 않고 냄새가 쉽게 가시지 않는다. 10~15위안짜리 도시락 중에 먹을만한 음식을 찾는 일도 매일매일 미션이었고, 직원들과 소통의 어려움 끝에 찾아오는 자괴감도 마음을 조여왔다. 사무실에는 에어컨을 가동했지만 앞자리 여직원 '샤오짱'의 겨드랑이 냄새는 에어컨 바람을 타서 온도가 내려간다고 하여 견디기 쉬워지는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가끔 민소매 셔츠를 입고 와서 나에게 서류를 직접 전달하거나 수량 확인 등을 요청할 때는 그녀에게 내 불쾌감을 전달하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필요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카탈로그 시안을 교정하기 위해 브로셔 제작업체 여직원이 사무실을 방문했다.

 '저건 분명 잠옷 아니야?'

라는 의문을 들게 하는 하얀색 블라우스의 업체 디자이너는 전형적인 광동 사람 체형이지만 피부는 하얀 편이고, 직장인이 소화하기 어려운 양갈래 머리에 짙은 눈썹, 광대는 약간 불거진 얼굴에 큰 눈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그 하얀 블라우스 속의 그녀의 까만 T팬티와 브라가 적나라하게 비쳐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수줍은 얼굴로 헬로키티 파우치에서 꺼낸 유판(USB)을 내 PC에 꼽아 디자인 초안을 확인하였다.


(당시 브로셔 디자인 초안본)

'아.... 어쩌지...?'

물론 나는 브로셔 제작 경험이 없었지만 나 같은 아마추어에게도 디자인 초안은 당혹스러웠다.

 너무 단순한 사진들의 배치, 구석구석에 ppt 클립 파일 구석에나 있을법한 꽃무늬들....  

그런데 사실 그 아가씨의 수줍음이 나는 더욱 불편했다.

어쩔 수 없이 나란히 앉아 디자인 교정을 하게 됐는데, 그녀가 걸친 잠옷(잠옷이라 하자.)을 통해 비친 검은색 속옷과, 행운인지 복인지 가져다준다는 빨간 끈에 옥구슬이 몇 개 달린 목걸이와 허리의 장신구가 계속 신경이 쓰였다. 나는 미안하지만 요구사항을 정리해서 메일로 줄 테니 회신해 줄 수 있겠냐고 부탁했다.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所以,你的英语发邮件?(그럼 메일은 영문으로 주실 건가요?)"

"不好意思。我不会说中国话好。。。(아 제가 중국어를 잘 못해서요...)"내가 서툰 중국어로 대답했다.

"我们不知道英语。。。(저희는 영어를 못하는데요...)"


 하는 수 없이 우린 또다시 나란히 앉아서 교정을 계속했다.

서툰 내 중국어 덕에  손짓, 표정, 전자사전 등을 동원하여 대화하였고, 그녀는 재밌었는지 픽픽 웃음을 터트리기도 하고, 얼굴이 붉어지기도 했다. 나의 어설픈 교정 요구를 적용하면서 뭐라 뭐라 중국어로 답변하는 그녀의 애교 넘치는 말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녀는 매우 적극적으로 내 의사를 반영하려고 노력했고 작업에 있어서 꽤 진지했다.

'근데 왜 자꾸 얼굴을 붉히고 나랑 눈이 마주치면 고객을 숙이며 부끄러워하는 거야 당신....'

어느 순간 ' 이 친구 나한테 관심이 있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에 까지 이른다.(이것은 병이 아니다.)

 그것의 사실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런 생각이 들자. 일이 되지 않았다. 몇 개월간 사무실과 숙소 이외에 거의 가본 곳도, 여자 사람과 대화도 없었긴 했지만,

'아주 오랜 기간 데이트를 못해봐서인가? 뭐지? 이 불편한 감정은?'

 모니터에 디스플레이된 꽃 모양보다 그녀의 씨스루 잠옷과 까만 속옷, 빨간 끈의 옥장식 뭔가 여자치고 너무 많은 팔의 잔털, 깡마른 몸매, 양갈래 머리, 헬로키티 포우치까지 아무리 봐도 내가 싫어하거나 꺼려하는 요소를 가진 그녀가 애교를 가득 담아 마우스를 클릭하고, 얼굴을 붉혀가며 내 초급 중국어에 부드러운 화답을 계속하자 나는...

불.편.했.다.


더 이상의 교정은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대충 마무리하려고 마음을 먹는다. '오케이, 오케이' 해가며 일을 정리했고, 그녀는 돌아갔다. 그녀가 사무실을 나가자 사무실의 직원들이 모두 서로 쳐다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들이 보기에도 그녀의 패션은 중국에서라고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던가 보다.

 오늘도 더워서인지 분홍색이 감도는 민소매를 입은 앞자리 여직원 '샤오짱'사원이 와서 나에게 말을 건다

"방금 그 여자 어떤 거 같아?"

"뭐가 어떻긴 어때? 초안은 완전 이상하고 그 여자 옷도 좀 이상하고 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샤오짱이 또 물었다.

"그 여자 Marvin한테 관심 있는 거 같던데? 와하하하하하하" 샤오짱은 결국 웃다가 눈물까지 흘린다.

내가 대답했다.

"초안 수정만 아니면 조퇴하려고 했어. 아 오늘 정말 피곤해. 샤오짱.. 저리 가!ㅋㅋㅋ"

자리로 돌아간 그녀는 직원들과 또 한바탕 수다를 떨고 웃고 난리다.


 사무실 직원들과 서로 말도 잘 통하지 않지만 다 같이 하나의 공통주제로 크게 웃고 나자 마음이 편해졌다. 그제야 나는 이곳에 와서 그 날까지 몇 달간 한 번도 그렇게 웃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도 못 하는 외국인 직원으로서 무시받고 싶지 않아서, 나라는 사람의 존재가치를 보여주기 위해서, 당신들보다 무언가 더 나은 게 있다는 걸 보여주어야 한다는 쓸데없는 생각으로 딱딱하고 못난 막대기처럼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업무 중에 말이 안 통해서 답답한 상황에 그들이 '픽'하며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웃어넘길때마다 난 속이 불에 데인 듯이 뜨겁게 타오르는 감정을 누르고 눌러야 했다.

 그들 역시 말 안 통하는 본사 직원이 파견 나와서 자신들이 업무를 태만히 하거나 감시하려는 목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에 나라는 존재가 편할 수 없었다는 것은 얼마 후 기숙사 아파트에 같이 사는 중국 직원과 해바라기 씨를 까먹고 청도맥주를 마시면서 들을 수 있었다. 그들 또한 내가 불편했겠구나 생각했다.


 그 이후로는 직원들과 스스럼없이 편하게 지내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직원들 또한 태도가 조금씩 변하였다. 대리점 수불 담당 '후샤'는 조금 한가한 오후 시간에 혼자 킥킥 거리며 한국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고, 굳은 표정으로 엑셀을 띄워놓고 멍 때 리던 공장담당'진궈'사원도 짬짬이 사무실에서 본인이 좋아하는 소설을 읽기도 했다. 나는 후샤가 즐겨보는 드라마가 한국에서 방영된 것을 하루 뒤 중국 해적방송채널에서 스트리밍 하는 '커피프린스'라는 것을 알고 결과를 미리 알려주는 장난을 치기도 했고, 진궈사원이 읽는 책에 대해서 물어보고 중국 역사에 대해 조금이나마 배우기도 했다. 가끔 한국에서 어머니가 보내온 볶음김치 같은 반찬을 같이 먹기도 하며 우리는 가까워졌다. 먼저 다가가는 일은 생각만큼 어렵지 않았다.

 그들 역시 동관에 거주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타지 생활을 하고 있었다. 조선족들은 길림성에서, 나머지 직원들은 후난성과 후베이성에서 이곳까지 온뒤 인력시장에서 이력서를 돌리고 입사 지원하여 이 회사에 들어오게 된 직원들이다. 나만 힘들고 나만 낯선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타지 사람들이다.


몇 달 후 동관에도 가을이 왔다, 가을이라고 해봐야 아직도 낮기온은 30도를 훌쩍 넘는다. 앞자리 샤오짱이 결혼 소식을 전해주었다. 나를 포함한 직원들은 빨간색 봉투에 각자의 성의만큼 돈을 넣어 결혼 피로연에 참가하였다. 도착한 식당에는 샤오짱 주변 지인과 친구들 위주로 함께 식사와 술을 마시는 하는 즐거운 자리였다.

이미지 출처(theme bluesip by MKhuda)

   '샤오짱 진심으로 결혼 축하해! 행복하게 잘 살아.'라고 어설픈 중국어로 말했고, 그 어설픔 안에 있는 마음이 전달되었는지 그녀는 잇몸을 만개하며 환하게 웃었다.

 샤오짱은 평소에 거의 화장을 하지 않는데, 그날은 얼굴에 분홍색 분과 입술은 빨간색으로 칠해  다른 사람 같았고, 남편 옆에서 다소곳한 그녀의 온 얼굴은 행복이 넘쳤다. 따듯한 전구들로 빛이 가득하고, 붉은빛이 감도는 드레스와 반짝이는 장신구들로 치장한 신부를 중심으로 커다란 원형 식탁들에 많은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었고, 대부분은 남자들은 하얀 셔츠에 어두운 톤의 슈트에 발끝이 뾰족한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 모습이 조금 우스웠다. 다들 웃고 떠드는 풍경들이 한국의 술자리 분위기와 흡사하기도 하다. 그런데 안에서 담배를 하도 피워대서 나는 신선한 바깥공기가 마시고 싶었다. 잠시 식당 밖을 나와보니 탁 트인 주차장 너머로 동관의 중심부가 바로 눈앞에 있다. 벌써 6개월 정도의 시간을 중국에서 보내고 있었고, 나는 아직 이 나라, 아니 이 도시조차 잘 모른다. 다들 타지에서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서, 본인의 성공을 위해서 열심히 살고 있고, 곳곳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바쁜 크레인들이 건물을 쌓아 올리고 있다. 이 곳에는 '흥'이 있었다. 성장하는 국가에서 느껴지는 그런 흥이 도시 곳곳에서 느껴진다. 아침 출근길 가득 찬 버스에서도, 빠오즈(중국 만두)와 콩물 한 컵으로 아침을 시작하며 빌딩에 빨려 들어가는 그들의 얼굴 안에는 '중국이 더 잘 살 것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가 더 성장하고 있다.'라는 자신감이 배어있다. 무엇보다 그들 가슴에 담긴 강렬한 한 문장은 아마도  

 '나도 더 잘 살 수 있다.'


 라는 희망이 라고 느껴졌다.

 오후 5시 30분이 되면 직원들이 거의 일시에 '샤반~(퇴근) 샤반~'을 말하면서 퇴근했다. 저녁 8시에 밥 먹고 오자거나 금요일 퇴근시간에 업무를 주면서 월요일 오전까지 완료하라는 상사들이 넘치는 한국과는 거리가 있는 풍경이다. 오후 6시 정도면 나는 혼자 사무실에 남게 된다. 학원을 가지 않는 날에는 집에 가봐야 할 일도, 컴퓨터도 없다. 이곳에서 매우 느린 속도지만 하루 종일 다운로드해놨던 영화나 드라마를 불 꺼진 사무실에서 혼자 시청하곤 했다. 동관은 더운 도시였지만 천정이 높고 중앙 냉방을 하는 사무실은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꽤 쾌적하다. 아무튼 그러다 보니 나는 늘 사무실 야간 당직의 모습이었다.

 주말인 토요일은 보통 아침 일찍 일어나 양치부터 시작하는데, 월마트에서 구입한 Colgate 치약은 도저히 적응하기 힘든 맛이다. 군대에서 보급품으로 지급받던 페리오 치약이 그리울 정도지만 뭐 대충 입을 헹구고, 샤워를 하고 가벼운 운동을 한다. 푸시업 100개, 윗몸 일으키기 100회, 그리고 가벼운 스트레칭 정도지만 규칙적으로 해두는 것이 기분을 좋은 상태로 유지할 수 있게 하기 때문에 주말마다 게을리하지 않았다. 얇은 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숙소 1층으로 내려왔다. 날이 아무리 더워도 시내에 갈 때 반바지를 입거나 슬리퍼를 신고 외출하지 않는다. 추레한 모습의 외국인이고 싶지 않았기에 나의 외출복은 대부분 긴 바지에 셔츠, 갈색 로퍼였다.

 회사에서 마련해준 이 아파트는 보통 한국 주재원들이 체류하는 아파트 시세보다 절반 이상 저렴하지만 10개 동 정도로 규모는 꽤 큰 곳이다. 입구에는 꼬질꼬질한 정복 차림의 경비원이 햇빛을 쬐러 나온 아줌마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거나 몇몇 노인들의 장기판을 기웃거리며 설렁설렁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나는 걸어서 40분 정도 걸리는 시내로 걸음을 옮겼다. 집에 돌아올 때는 택시를 타지만 주말이면 땀을 흘리더라도 곳곳을 걸어 다니며 동관이라는 곳을 탐험한다. 이 곳 생활 반 년정도로는 중국어를 읽기가 어려워서 간판의 그림이나 유리창 안으로 비추어 보이는 상가 안의 분위기로 어떤 곳인지 알 수 있다. 가격표를 유리창 가득 붙여놓은 곳은 휴대폰 대리점이나 부동산이다. 이곳으로 유입인구가 계속 증가해 당연히 광동성 로컬 전화기 수요도, 부동산 임대업도 급성장 중이며 직원들은 늘 부산하게 움직인다. 한국에서 주재원으로 파견 왔다가 여유자금을 부동산에 투자하여 몇 배의 수익을 냈다는 이야기도 적지 않게 들리던 때였다. 부럽고 배가 아팠다.


  오토바이와 사람들로 가득한 월마트 정문에 도착했다. 에어커튼 같은 것은 당연히 없고, 이미 손때로 더러워진 정육점에서나 쓸 것 같은 두꺼운 비닐 커튼을 걷어내고 중앙 로비로 들어서면 냉방중이라 시원함을 느낌과 동시에 시식코너와 식당가에서 새어나오는 특유의 음식 냄새가 난다. 뭐 이 정도는 이제 익숙하다. 탁 트인 중앙 로비는 4층까지 중앙이 뚫려 있는 구조로 좌측과 우측끝의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오르내릴 수 있다. 1층 중앙에는 귀금속점, 악세사리점이 자리하고 생필품 코너 입구가 있다. 귀금속은 살 일이 없고, 마트는 평일에 가끔 오기에  3층으로 바로 올라간다. 3층엔 짝퉁 명품 매장들과 불법 DVD 코너가 아주 많다. 내 연봉이 적기도 했지만 전액 한국으로 보냈고, 본사에서 지원되는 생활비 2,000위안 정도로 한 달을 생활했기에 짝퉁이지만 몇 백 위안이 넘는 가방이나 지갑엔 큰 흥미는 갖지 않는 편이 편했다. 물론 론진, 샤넬 브랜드 시계는 몇 번 사보았지만 1년 넘게 고장 나지 않고 버티는 시계는 없다고 보는 게 맞다.

 곧바로 DVD 코너로 이동했다. CD 한 장에 보통 10위안, 점심 한 끼 가격이 조금 미치지 못한다.  그 날은 '첨밀밀'을 골랐다. 중학교 시절 친구가 추천해줘서 보려 했지만 당시 인기작이라 비디오 대여점의 첨밀밀 VHS케이스는 늘 '대여중'이라는 플라스틱 캡이 끼워 있어 볼 수 없었다. 그렇게 영화 CD를 사고, 입맛에 잘 맞지 않지만 중국어를 잘 못해도 주문이 편한 1층 KFC에서 전기구이치킨버거 세트를 포장해서 사무실로 갔다. 사무실엔 내가 켜놓은 데스크톱 팬소리만 조용하게 깔려있고 창 밖에는 동관 '난청 공원'의 야경이 배경이 되어주었다. 책상위 모니터에서 영화가 시작했다.


  영화 첨밀밀은 중국에서 건너온 두 남녀의 이야기로 나는 홍콩에서 품은 그들의 '꿈'이 더 가슴에 깊게 남았다. 맥도날드에서 점원으로, 학원에서 영업관리로, 식당의 닭 배달로 하루하루를 채워가도 CMA 계좌에서 나날이 불어나는 90년대 홍콩의 금융 호황을 겪으며 성장해 가는 두 사람은 난방을 하지 않는 홍콩의 설날, 설거지로 차가워진 손을 맞잡아 녹여주며 서로를 확인하고, 자전거를 함께 타고 홍콩을 누빈다. 중간에 남자 주인공 여명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여명 이 똥멍충이가 한참 썸 타는 장만옥을 데리고 주얼리샵에 가서  선물을 사주면서 고향 여자친구 것을 같이 산다...)때문에 둘은 헤어지는데, 몇 년 후 우연히 다시 만난다. 이때, 흘러나오는 등려군의 'Good bye My love(Zaijian wo de airen)'의 오래된 중국 복고풍 멜로디 속의 가녀린 목소리가 내 안에 숨겨둔 댐의 스위치를 건드렸다. 중국에 온 이후로 가족도 친구도 그리고 혼자 좋아했던 J양도 다 잊으려고 노력했다. 생각나면 아프기에 잊고, 또 생각나면 잊고 일과 중국어 공부에만 집중하려고 가열차게 자신을 몰아가다가 보니, 나는 텅 빈 사무실에 혼자 남겨져 있었다. 계속 가두고 눌러왔던  가슴 안쪽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댐 안의 외로움이 결국 터져 나와 가슴이 크게 찢어져 벌어지고 양다리의 감각도 없고, 부옇게 눈앞도 흐려진다.




 영화는 끝났고, 컴퓨터와 에어컨 전원을 내리자 밖의 야경이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고층빌딩에서 보는 중국 시내 모습은 초점을 흐리면 슬픈 황홀함으로 일렁인다. 냉장고에 두었던 산미구엘 맥주를 꺼내 마신다. 필리핀에서 마셨던 풍미는 없지만 그래도 청도맥주보다 조금 비싸기에 나에겐 호사다.

 급하게 두 캔을 다 비우자 기분이 조금 나아져 마음을 다잡았다. '일에만 집중하자.', '우선 능력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겠다.'애써 방금 본 영화를 마음에서 지우고 숙소로 돌아가며 생각을 정리했다.

 겉보기에는 참 번지르르한 '해외경력', '다양한 견문'이라는 목적을 갖고 중국 땅을 밟았지만 새로운 곳, 새로운 사람들과 시작하면서 불편함을 먼저 보고 그것을 겪으며, 조금씩 답답한 꼰대가 되어가고 있었다.

중국인들이 느끼는 성장하는 국가와 회사에 편승하는 마약 같은 쾌감을 나는 느낄 수 없었다. 무엇보다 한국어와 중국어를 구사하며 회사의 실제 총괄을 담당하는 두 조선족은 나에게 도무지 마음의 여지를 두지 않았다. 꽤나 여러 번 요청했던 술자리도 가정일 핑계로 거절했고, 철저하게 개인적인 일은 나에게 말하거나 하지 않았다. 나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빛 속에는 항상 경계의 날이 선 차가움이 배어 있었다.


며칠 후 중국어 학원에서 답답한 마음에 이런 상황을 친한 이사님께 여쭈어 보았다.

"이사님, 회사 총경리랑 과장이 조선족인데 친해지기 참 어렵네요..."

"뭐? 조선족이 총경리야?" 이사님은 많이 놀라셨다.

"삼성전자 출신에다가 자금관리나 공장 영업도 잘하고 능력이 좋은 것 같아요."

이사님은 아리송한 표정으로 대답하셨다.

"허... 이상하네, 그 사장님 왜 조선족을 총경리에 앉혔을까... 위험한데...."


나는 이사님이 오랜 중국 생활 가운데 얻은 조선족에 대한 편견이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사람도 결국 조선족과 같은 민족이고, 능력이 좋으면 그 위치에 가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나는 그들에 대해 어떤 의심을 품는다던가 혹은 낮게 깔보거나 하는 마음을 갖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본사에서 개인 휴대전화로 전화가 왔다. 엄 대리님이다.

"태현 씨, 잠깐 따로 조용히 통화 가능하세요?"

엄 대리의 목소리는 원래 톤이 낮고 무거운 편이긴 했지만 전화 속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긴장감이 흘렀다.

그녀는 본사에 총경리를 통해 보고된 공장 단가표와 내가 보고한 단가에 차이가 있다는 것과, 얼마 전 나는 여름휴가에 사비로 홍콩을 다녀왔는데, 내 경비가 회사 비용으로 지출된 것으로 본사에 보고되었다는 내용을 차분히 전달했다.

 난 사실 확인을 위해 거래처 중 하나인 공장장에게 받은 명함으로 문자를 하여 몰래 따로 접선하여 단가표를 재확인하였다. 총경리가 보고한 자료와 차이가 있었다. 그것도 적지 않은 차이가...


 사장님은 곧바로 중국 법무담당자와 함께 나에게만 연락하여 호텔에서 만났고, 대략 계산해보니 그동안 한화로 1억 원이 넘는 돈을 횡령하고 있다는 정황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동안'이라는 기간이 내가 한국에서 중국으로 파견된 시기와 정확하게 일치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총경리는 회사 사장님이 나를 중국에 보낸 이유가 사장님이 자신을 믿지 못하고  결국 자신을 밀어내고 한국 사람으로 이 회사를 넘길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고, 그래서 횡령을 시작했던 것이다.

 사장님과 비밀 접선 후 다음날 그 총경리는 어떻게 낌새를 챘는지 자취를 감추고 사라졌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밤늦게 사무실을 나와 숙소까지 걸어갔다. 11시가 넘는 밤거리에는 차량은 물론 인적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때였다.


 '탕... 탕! 탕... 탕......'

뒤에서 둔탁한 금속성 물질이 바닥을 때리는 소리,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었다. 현재의 걸음 속도를 유지하면서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얼굴은 확실히 보이지 않았지만 3명이었다. 짧은 순간에 두 명은 쇠로 된 파이프 같은 것을 들고 있었고,  가운데 머리를 꽤 기른 마른 남자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있는 모습을 확인했다. 특히 가운데에 서있는 긴 머리 사내는 늘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나를 노려보는 눈빛이 내 심장까지 찌를 듯한 기세였다. 본능적으로 그가 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친 듯이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나보다 내 심장이 위기가 왔음을 감지한 것 같았고, 나는 앞을 보고 계속 그 속도로 걸을 수밖에 없었다.

 오른쪽으로 돌아 조금만 더 가면 아파트 정문 게이트다. 꼬질꼬질 녹색 경비복에 배 나온 경비는 아마 지금 시간엔 그나마 없다. 아파트 바로 옆에 아주 작은 재래시장이 있다. 육류와 수산코너가 있어 문은 닫았지만 무기를 구할 수도 있을 것 같고, 시장 골목을 통하면 아파트 쪽문으로 통하는 길도 나는 잘 알고 있다. 난 시장으로 뛰어 들어갔다.


 '젠장, 너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모든 매대는 방수포 같은 것으로 꽁꽁 덮여 있어서 칼 같은 걸 찾아서 꺼낼 수가 없다. 어둠에 적응하자 아파트로 통하는 통로가 보였다. 자세를 있는 대로 낮추고 그쪽으로 쪼그려 이동했다. 잠깐 뒤를 확인했는데 긴 머리 3인조는 아직 안으로 들어온 것 같지 않다.

 나는 다시 전력질주로 내가 사는 아파트 입구로 가서 철문 게이트를 열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집으로 들어가 내방에 들어와 손바닥 길이의 작은 칼과 3kg 덤벨 2개를 챙겨 침대에 앉았다.

 방범철창 처리된 작은 창문으로 외부 조명 빛이 방을 비추어 덤벨과 칼이 반짝였다. 평소에는 방범용이 목적이라지만 반대로 나를 가두어 놓은 것처럼 느껴져 뜯어버리고 싶던 녹슨 철창이 나를 조금은 안심하게 했고(물론 7층 정도지만), 불 꺼놓은 방에서 유독 반짝이는 칼과 덤벨을 손에 쥐고 심장을 진정시켰다.

 그날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리고 나는 거의 한 달 가까이 아는 분 회사 아파트로 옮겨 몸을 피했다.


 그런 일을 겪은 얼마 후, 187cm 정도의 큰 키에 강한 경상도 말을 사용하는 직원이 중국 사무실에 오게 되었고, 그는 사장님의 처조카였다. 그리고 그는 바로 총경리 자리를 차지했다. 그는 영어는 물론 중국어도 나보다 서툴렀으며, 중국 비즈니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은행에서 통장 개설하는 방법도 모르는 그자 밑에서 나는 더 배울 것도 없었고, 자신을 늘 부산 사나이라며 허세 돋는 그를 상사로 보필하고 싶은 생각은 더욱더 없었다. 아직도 그가 입만 열면 뉴욕 이야기를 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의 뉴욕 무용담에 지쳐 도대체 얼마나 살았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미국에 4개월 정도 체류한 게 전부였다.

 어찌 되었건 대표님의 친인척임을 떠나서, 그와 계속 일하고 싶은 생각은 사라졌고, 결국 사직서를 제출했다. 아직 이렇다 할 경력을 쌓지 못한 것을 알기에 누구보다 쓰라린 속을 안고 나는 그 해 겨울 한국으로 돌아왔다.


 홀로 인천행 항공기 기내에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낮이었지만 구름 속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소꿉장난 같은 기내식을 반도 먹지 않았지만 속이 불편하다. 하이네켄을 홀짝이면서 2년 남짓한 중국 생활을 돌아본다. 나는 무엇을 얻고 돌아가는가. 세상은 내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지는 않다. 이미 꽤 많은 한국의 지인과 친구들과의 연락도 끊겼다. 이직에 대한 불안보다 인간관계에 대한 의구심이 비교할 수 없이 더 컸다. 나와 타인, 타인들 속의 내 모습이 어떤 것인지, 어떠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속마음을 그대로 표현할 수 없었다. 나도 나를 알 수 없었으니까, 표현이 정확하게 전달되지도 않는다. 받아들이는 사람은 모두 다르니까. 중국 생활에서 나는 '인간관계'의 여러 속성 중 하나 정도는 이해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의 중국은 나에게 참 불편한 곳이었다. 그러나 나라는 존재도 누군가에게 불편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때로는 내 의지로 풀어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관계되기 싫지만 관계될 수밖에 없기도 하고, 사무치게 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게 되기도 한다. 개똥 같지만 그렇다. 좋지 않은 머리로 긴 사념에서 빠져나오니 기내의 소음이 귀에 거슬려 머리가 지끈거린다. 눈을 감고 몸을 등받이에 기대고 착륙을 기다렸다.




 한국엔 어둡고 긴 겨울이 기다리고 있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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