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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vin Feb 05. 2016

빛에 이끌려

[Chapter I]#2. 세기말 초딩들

 성당을 아주 오래 다녔다.(지금은 아니다.) 다녔다고 말하는 게 맞을 것이다. 종교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때도 그리고 지금도 신앙을 이야기 하기에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며, 자격도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위안을 받았었다.. 신년이면 골목길에 쌓인 하얀 눈길을 걸으며 희망 가득 찬 마음으로 성당에 나와 새해 소망을 함께 기도하고, 봄에는 부활절의 기쁨과 따스함에  행복해하고, 여름엔 뜨거운 캠프를, 대림절을 맞이하면 조용히 성탄을 기다렸다. 아픔을 나누기도 하고, 기쁨은 몇 배의 크기로 함께 했다. 어린 시절 순수한 교사들 따듯한 신부님, 수녀님, 그리고 너무나 많은  친구들.

 하지만 고3 시기를 지나 장거리 통학의 대학생활 덕에 나와 성당과의 거리는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있었다.


 1999년 5월은 아름다웠다. 수유동 골목길의 담벼락 곳곳에는 장미가 피어있고, 아침은 싱그러웠고,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토요일 오후 4시는 더 없이 포근했다. 작지만 밝은 에너지가 넘치는  초등학교 3학년생 20여 명 정도가 내 앞에 모여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아이들은 햇볕에 잘 말려 놓은 이불처럼  뽀송뽀송했다.  한두 달 정도 보조교사로 교리 수업을 참관한 이후에. 드디어 내가 주관하는,


첫 교리 시간

교재는 따로 없었고, 교안 가이드를 따라서 어떻게 수업을 진행할 것인지 일주일 전부터 준비한 이후, 목요일 저녁 교사회의를 통해 상호 교정받는 시스템이었다.

 내가 무얼 가르친다는 말인가, 난 고3 때 먹은 한약 부작용으로 잔뜩 불은 살도 빠지지 않았고,  쓸데없이 마셔댄 술로 피부도 엉망에다 지방 통학으로  온몸과 정신상태가 최악 이었다. 거울 앞에서 선 스무 살의 나는 남보다 매력적이 못한 부분을 찾다가 너무 많아 포기하는 그런 상태였다

 '이런 내가 아이들 앞에서 '교사'라는 이름으로 선 것 자체가 잘못이야.'

 '아무래도 그만 해야겠어'

이런 생각들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당황해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먼저 말을  걸어온다.


"선생님이 함 요셉 선생님이죠?"

"하하하 우린 다 알고 있다고요~ㅋㅋㅋㅋ"

"선생님, 장록현이 자꾸 때려요!!"

"아니에요!! 안 때렸어요. 예지가  거짓말하는 거라고요!"

"선생님 오늘 교리 하지 말고 축구하러 가요!! 으히히히"

"아아아아!!!! 하지 말라고!!!!"


가만히 있으니 금방 난리통이 되어버렸다. 우선 아이들한테 인사를 했다.

" 안녕 얘들아, 앞으로 너희들과 함께할 함 요셉 선생님이야. 잘 부탁해~"

"네!!!!!!!!!!!!!!!"

"와~~ 선생님  결혼하셨어요?"

'그... 그렇게 보이...냐?'

"아니, 선생님 결혼 안 했어."

다른 아이가 다시 묻는다.

"ㅋㅋ 선. 생. 님. 그러면.... 애인 있으세요?" 그런 건 없었다.

"아니 선생님 여자친구 없어~"

"하하하하하하하하 애인도 없데!!! 하하하하하하!" 조금씩 현기증이 나기 시작한다.


"선생님 머리가 왜 노래요? 염색했죠? 맞죠??!"

당시 대학생이라는 걸 표시하듯이 약간 밝은 갈색으로 염색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염색했다고 말하기는 싫었다.

"아닌데? 선생님은 원래 조금 머리카락이 조금 갈색이야~"

한 아이가 바로 대답한다.

"뻥치지 마세요! 선생님 염색한 거잖아요~ 날라리 선생님이죠? 청바지도 찢어진 거 입고 오시고, 선생님 날라리 맞죠? 하하하하하"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아이들한테 말려서 수업을 진행할 수 없다.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준비했던 교리 수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돌아다니는 아이,  장난치는 아이, 멍 때리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보조교사 수업 당시 들었던 인상 깊었던 질문을 아이들에게 던졌다.


"너희들 귀신 알아?"

난리통이던 아이들이 갑자기 한순간에 집중한다.

"네~ 알아요~ 드라큘라 같은 거죠. 크아!!!!(입을 벌려 옆 친구를 위협한다)"

"에이 귀신이 어딨어요? 선생님 자꾸 뻥만 치시네~~"


"그럼, 너희들은 귀신이 무섭지 않니?"

정확하게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이 친구들 만한 나이에 친가 시골집에서 밤에 혼자 귀신을 본 적이 있었다. 창호지문 밖으로 보이던 갓을 쓴 저승사자의 실루엣은 서른이 훨씬 지난 지금에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아이들이 입을 모아 합창하듯이 대답한다.

"아니요~!"

내가 다시 물었다.

"아니 왜 귀신이 무섭지 않아?"

"하느님이 더 쎄요!! ㅋㅋㅋㅋㅋㅋㅋ"


아이들에게 신이란 자신들의 친한 동네 형 같은 존재, 든든한 빽이었다. 귀신이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내가 믿는 존재가 더 강력하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다. 지금도 신앙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게 없지만,

내가 생각했던 신앙이란


 이처럼' 순수한 믿음'이었다.


 다음 해에는 5학년 아이들을 담당했다. 아이들은 10명 정도 되는 초등부 교사들에 대해 관심이 아주 많았고, 새로 부임한, 또 가장 어린 교사인 나도 아이들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아이들은 미사가 끝나면 내 옷자락을 잡고 쫒아 다녔고, 내 표정을 살피고, 내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어 했고, 나와  친해지고 싶어 했다. 내가 하는 농담에 뒤로 넘어지듯이 웃는 아이, 내가 던진 장난을 때론 심각하게 생각해서 위로해 줬어야 하기도 했고,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친구처럼 가까워졌다.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맥도날드에 가서 햄버거를 먹으며 교리 시간을 대신하기도 하고, 근처 운동장에 가서 다 같이 축구를 하기도 했다.

 '가족과 친구들 이외에 내가 이런 관심과 사랑을 받았던 일이 있었나?' 학창 시절 좋은 성적을 냈을 때, 반장이 되었을 때, 농구를  잘해서 아이들 사이에서 돋보인다고 느껴졌었던  주변의 관심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

사랑이 빛이라면, 커다란 파스텔톤의 빛 뭉치들이 예쁜 색색으로 나의 온 마음과 몸을 감싸 안은 기분이었다.

수유1동 대성당 Nikon D90 Voigtlander 28mm f2.8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군입대를 앞둔 상황이었고, 교사를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맞이한 마지막 교리 시간.

대성당에서 지하 교리실로 내려가는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어두운 내 표정에 주변 선생님들도 나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봐 주고 있었다. 겨우겨우 마음을 가다듬고 아이들이 있는 교리실 문을 열었는데,


오르간 소리와 음악이  흘러나왔다.


피아노를 칠 줄 아는 아이 한 명이 오르간을 연주하고, 나머지 아이들은 입을 모아 나를 위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는 '스승의 은혜'였다.

나도 차마 준비 못한 마지막 인사를 아이들이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노래가 끝나자 한 아이가 노트를  건네주었다. 반 아이들 모두가 나를 위한 편지를 돌려가면서 써준  롤링페이퍼였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몇몇 아이들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해서 달래야 겠다고 생각할 때 나도 울고 있음을 알았다.  그렇게 한 명씩 아이들을 안아주고 또 만나기로 기약 없는 약속을 하며 세기말의 초딩들과 헤어졌다.


그 이후, 나는 지금도 성당을 다니지 않는다. 나는 신의 사랑을 받은  것인지 아이들의 사랑을 받은 것인지 둘 다인지 지금도 모르겠다. 다녔던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고, 지금은 확신이 없다.

 그 사랑이 참 좋았다는 것을 명확하게 기억할 뿐이다.


지난주, 수유1동 성당을 토요일 오후 4시가 넘어 혼자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대성당에 잠시 앉아 보았다. 몇 컷의 사진도 찍어 보았다. 지금은 사랑하는 내 아내와 딸의 아빠로, 어머니의 아들로, 회사의 매니저로 나의 자리에 서있지만, 아주 오래전 나는 이곳에 아이들의 선생님으로 서 있있다. 돌아갈 수 없는 자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앞으로 내가 서 있어야 할 곳은 분명히 내 가족들의 옆일 것이다.


나는 마음에 대해서 생각했다. 우리가 함께 나눴던 마음들을

이제는 멋지게 성장했을 아이들도, 그리고 아이 아빠인 나 역시, 우리들의 자리에서  그때처럼 마음을 나누며 행복의 빛으로 넘쳤으면 좋겠다.



수유1동 대성당 Nikon D90 Voigtlander 28mm f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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