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방향성 상실과 회복
몇 년 간 나는 불면증에 시달렸다. 작은 소리와 냄새에도 예민하게 굴었다. 서서히 끓는 물에서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개구리처럼, 이러한 변화도 대학원 생활 동안 서서히 나타났기에 나는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원래 그렇다고 생각하며.
올해 초, 역시나 잠이 오지 않는 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트로스트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심리검사를 했다. 우울감이 높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자존감 또한 매우 낮다는 결과가 나왔다. 심각한 점은 자존감 상실에 대한 나의 예상 점수는 30이었는데, 실제 결과는 83으로 꽤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높은 기대 때문에 자책이 심하다고 했다. 듣고 보니 그랬다. 부정적 사고도 나의 예상 점수 30에 비해 실제로는 66으로 꽤 높았다. 하지만, 다들 원래 이렇게 사는 게 아니었다고?
돌이켜보면 과거 나는 그렇지 않았다. 학창 시절 한 번도 공부에 끌려간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늘 내가 주도해서 공부해 왔고, 미래를 적극적으로 그렸다.
대학원에 온 후로 어느새 그 느낌을 잊어버렸다. 마치 어떤 엔딩을 목표로 인생을 몰빵해 끝에 가까이 왔는데, 그 끝이 내가 원하는 그림이 아닌 듯했다. 논문들은 인류의 지식에 공헌하는 과학적 글이라기보다는, 그저 과학자들의 스펙을 위한 쓸데없는 낭비들로 보였다. 세미나를 들어도 그랜트를 따기 위한 노력이 대단하구나 싶었다. 과거 꿈꾸던 과학의 본질을 학계를 비롯한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것 같았다. 길을 잃었다. 대학원 졸업 후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없었고, 그래서 처음으로 일을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 봐야 하는 것일까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다 최근 한국에 다녀왔다. 한국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잠시 푹 쉬면서 예전의 내 모습을 다시 보았다. 미국에서의 나는 생존에 급급한, 낭만과 휴식은 사치인 사람이었다. 바쁘게 살다가도 좋은 시절은 다 지나고 내겐 현실만 남았구나 싶어서 울적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방문한 한국에서 가족들, 친구들과 함께한 나는 여전히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였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깊은 대화를 하는데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이 너무나 오랜만이어서 눈물이 났다.
그 후 삶에 대한 내 인식은 완전히 바뀌었다. 미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나는 진짜 나의 모습을 경험했기 때문에 더 행복하게 연구한다. 살아있으면서 논문을 읽는 느낌을 안다. 작은 부분 하나하나에 집중한 논문들이 함께 그리는 큰 그림이 보이기 시작했다. 과학의 본질을 쫓는 많은 동료 과학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행복의 비밀은 살아있는 마음으로 눈앞에 놓인 것을 바라보는 마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