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역학 제2법칙이란 닫힌 계의 무질서도는 감소할 수 없다는 법칙이다. 예를 들어 잘 밀봉된 박스 안에 있는 질소 입자들을 생각해 보자. 질소 입자들은 상온에서 약 500 m/s로 움직이며 박스 전체에 골고루 퍼져 있다. 이 질소 입자들이 모두 박스 왼쪽 반에 모이는 경우가 생길 수 있을까? 질소 입자의 수가 충분히 크다면 답은 "없다"이다. 질소 입자들이 모두 박스의 왼쪽 반에 존재하는 경우의 수는 하나이지만, 박스 왼쪽과 오른쪽에 골고루 퍼져 있는 경우의 수는 훨씬 크기 때문이다.
질소 입자 N개가 상자 안에 있다고 하자. 이 중 반은 상자의 왼쪽 반에, 나머지 반은 상자의 오른쪽 반에 존재하는 경우의 수를 계산해 보자. 고등학생 때 배운 확률론을 적용해 보면, 이는 N개 중 (N/2) 개를 순서 없이 뽑는 경우의 수이다. 10개 입자만 돼도 이 수는 252이며, 100개 입자일 경우 약 10의 29승이 된다. 따라서 압도적으로 높은 확률로 질소 입자는 상자에 균등하게 퍼지게 된다.
얼핏 보면 그럼에도 질소 입자들이 모두 한 곳에 모이는 것이 아주 작은 확률일지라도 이론상으로는 가능해 보인다. 그렇기에 열역학 제2법칙은 오랜 시간 동안 아마추어 물리학자들의 공격을 받아왔다. 이공계 꿈나무였던 나도 열역학 제2법칙에 떨떠름해하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확률론에 기반한 이 명제는 법칙으로 간주되기엔 너무 허술해 보였다.
그러나 아주 작은 확률에 집착하는 것이 프로와 아마추어를 가르는 차이임을 이제는 안다. 물리에서는 우주의 나이만큼 기다려도 일어나지 않을 일에 집착하지 않는다.
어른이 되는 것은 열역학 제2법칙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비로소 어른이 되는 거라고.
어린 시절의 나는 운이 좋아서 바라던 일들이 일어나는 기적을 이따금 겪곤 했다. 아주 어릴 적 독감에 걸려 한밤중에 잠이 깼는데, 아무리 일어나려 해도 일어나 지지가 않아 혼자 끙끙댔던 적이 있다. 아무도 못 들을 정도로 작은 소리였는데, 그 소리를 옆방에 있던 아빠가 듣고 달려왔다. 고등학생 때는 천천히 먹는 탓에 늘 혼자 급식실에 남겨졌는데, 어느 날 혼자 밥을 먹으며 좋아하는 애 생각을 했다. 그리고 기적처럼 그 애가 내 눈앞에 나타나 말을 걸었다.
성인이 되고 아빠가 돌아가셨다. 간절하게 아빠를 보고 싶을 때가 있었는데, 내가 그토록 바랐음에도 아빠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 당연한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랜 우울증을 겪어야 했다. 그러면서 주변에 내 마음을 나눌 사람을 하나도 두지 못했다. 아무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줄 사람이 오기를 또 간절히 바랐지만, 그런 일 또한 일어나지 않았다. 0이거나 아주 작은 확률을 놓지 못하고 오랜 시간 스스로를 갉아먹어갔다.
이십 대 후반, 이런 내 생각의 불합리성을 마주하고 바꿔나가기 시작하면서 그제야 뒤늦게 어른이 되었다. 아마추어처럼, 혹은 어린아이처럼,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야만 한다고 떼를 쓰던 나를 버리는 게 참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이 된다는 건, 성실한 기적들도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더 이상 마법 같은 기적은 없지만, 내 인내에 칭찬이라도 하듯 일어날법한 기적들은 여전히 일어난다. 우울증을 받아들이고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힘든 날들을 뚫고 대학원에 합격했을 때도, 그리고 햇볕이 따뜻할 때도, 이 모든 기적 같은 일들을 통해 신은 나에게 늘 사랑과 응원을 보내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기적들로도 충분함을 이제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