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 동안 나와 함께 웃고, 울면서 함께 지낸 우리 딸이 세상 밖으로 나온 날 2012년 4월
처음 겪는 출산의 고통이 두려웠기도 했고, 우리 딸아이의 탯줄을 남편이 잘라 주기를 바랐던 마음도 있었기에 나는 가족 분만실에서 출산을 하기로 했다
출산의 고통은 정말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지 못할 만큼 대단한 고통과 인내가 필요했다
거의 쓰러지기 일부 직전에 우리 딸이 나에게 와주었다
"응애응애"
정말 책에서 읽던 아기의 울음소리였다
의사 선생님께서 우리 딸을 나에게 안겨 주는데 그때 그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없을 만큼 신비롭고,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남편이 분만실 안으로 들어오고 딸아이를 한번 안아 보고 간호사와 함께 다시 대기실로 나갔다
일반 분만실보다 더 비싼 가족 분만실을 예약했는데 남편은 내가 출산의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수 없고, 탯줄도 자르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나가 버렸다.
그날 출산의 고통은 오로지 나 혼자 감당해내야 했다
출산을 했는데도 내 배는 여전히 만삭 일 때의 배 상태 그대로였다
배는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들어간다는 간호사의 말에 안심이 되었다
이것저것 주의사항을 말해주고 간호사는 돌아가고 나는 병실 침실에 누웠다
멍하니 천장을 보고 누워 있자니 친정엄마가 생각이 나면서 그동안 잘하지 못한 나의 행동들에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남편은 간호사에게 3일 동안 먹을 진통제와 소염제가 든 약봉지를 들고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남편은 대기실 밖에서 너무 초조했고 걱정되고 했던 이야기들과 다른 분만실 산모 가족들의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괜찮아?
수고했어!
같이 있어주지 못해 미안해!
이 말이 듣고 싶었는데...
남편은 자기의 감정을 이야기하기 위해 내가 금방 출산하고 나온 산모라는 사실도 잊어버린 듯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시부모님이 병실 안으로 들어오셨다
들어오시면서 하시는 말이
'우리 아들 수고했네'
출산은 내가 했는데 남편에게 수고했다고 말하는 시아버지의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시어머니께서도 수고했다는 말보다는
'이렇게 하지 마라, 저렇게 하지 마라'출산 후 산모가 하지 말아야 되는 행동들을 줄지어 나열하기 바쁘셨다
딸아이를 볼 수 있는 시간이 되고, 시부모님과 남편이 딸아이를 보러 다녀왔다
나는 소변 호스를 차고 있었기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딸아이를 보고 온 시부모님은 어릴 적 남편이랑 똑같이 닮았다고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하셨다
그리고 시어머니께서 폭탄발언을 하셨다
"우리 손주를 다른 사람들 손에 키우게 할 수없으니, 조리원은 취소해라,
내가 산후조리를 해줄게"
"네? 어머니께서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조리원 위약금도 많이 내야 하고 그냥 조리원에 갈게요"
"아무 말하지 말고 내가 하라는 대로 해, 조리원은 지금 바로 취소해라"
"........ 일단 오빠랑 상의 좀 해볼게요"
폭탄발언 남기시고 병실은 나간 시부모님을 배웅하고 돌아온 남편은 시어머니께서 나의 산후조리를 해주시는 걸로 얘기가 끝났다고 통보를 했고 산후조리원 취소도 했으니까 나는 편안히 몸조리만 하면 된다는 말도 안 되는 말을 내뱉고 있었다
산후조리 말 그대로 출산을 한 산모가 몸과 마음이 편안한 상태로 몸을 쉬게 해줘야 하는 시간인데...
남편은 우리 엄마 같은 사람이 어디 있냐고, 며느리 산후조리해주는 시어머니 없다, 복 받은 줄 알라고 나한테 말한다
아이가
그래 시어머니 같은 사람 없지
산모가 편안하게 지내는 게 산후조리 아닌가?
서로 불편한 시간이 이어질게 뻔히 보이는 이 시간을 허락해야 되는 건가?
그런데 나의 의견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평범한 다른 산모들처럼 산후조리원에서 지내고 싶은데...
나는 왜 이런 평범한 일상마저도 허락되지 않는 걸까?
오늘부터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시어머니, 그리고 우울증이라는 마음의 병도 나와의 동거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