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에게 출산은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몸의 변화는 물론 심리적 변화, 남편의 태도 변화, 나의 호칭 변화...
출산과 동시에 나라는 사람보다는 누구 엄마라고 불리게 되는 또 다른 내가 된다
나의 식사시간은 아이의 수면시간에 맞추어져 있고, 나의 건강했던 대장 활동은 약이 없으면 안 되는 불편한 대장 활동으로 변해 버렸다
아이의 작은 상처만 발견돼도 모든 화살은 나에게 향하고, 집에서 애만 보는데 애 하나 제대로 못 보고 뭐했냐는 둥 송곳 같은 말들이 마음속으로 날아온다
아이의 상처를 보고 미안하다고 수없이 말하면서 자책을 하고 있었던 나를 더 궁지 속으로 밀어 버리고 만다
2012년 4월 우리 딸이 태어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시어머니의 산후조리를 받으면서 불편한 동거를 하고 있었다.
시어머니의 산후조리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상처를 남겼다
처음부터 거부감을 가지고 시작되었던 시간들이 결국에는 탈이 나고 만 것이다
갓난아기 보시라, 우리들 먹을 식사 준비하시라
집 청소, 빨래를 2주 동안 하시다 보니 나이가 있으신 시어머니 몸도 버텨낼 수가 없었다
파스를 붙이시고 생활하시다가 결국에는 병원에 가셔서 물리치료를 받아야 했다.
시어머니의 산후조리가 의도치 않게 일찍 끝나게 되었고, 나는 이제부터 육아와 집안일을 혼자서 감당해 내야 했다
설거지나 반찬을 만드는 주방일은 못해
음식쓰레기는 나는 못 버려
빨래는 어떻게 하는지 몰라
청소기는 내가 돌릴게
우리 공주 우유는 내가 줄게
남편은 자기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나눠서 나에게 얘기를 해 주었다.
거의 대부분은 할 수 없는 일들이었고, 몇 가지 할 수 있는 일을 해주는 것만 이라도 목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 이런 남편 없다면서 너 결혼 잘한 거라고 이야기한다.
많은 남편들이 아내에게 단골 멘트로 날리는 말이기도 하다
"나 같은 남편이 어디 있니? 이거 해줘 저거 해줘..."
"........."
우리 딸은 시간이 갈수록 잠을 자려고 하지 않았고, 밤낮없이 울음을 터트렸고, 1시간이 넘게 울음을 멈추지 않고 울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모유의 양이 많지 않았던 나는 한 달까지 만이라도 모유를 먹이고 싶었기에 족발과, 사골국물 등 모유가 잘 나오는 음식들을 먹으면서 가까스로 한 달 동안 모유를 우리 딸에게 줄 수 있었다.
한 달 동안 모유를 먹으면서 지낸 딸아이는 잠도 잘 자고 순둥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순한 아이라 혼자 충분히 집안일과, 육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유 대신 분유를 먹으면서 토하는 횟수가 늘어났고, 아이의 대변 활동도 원활해 보이지 않았다.
모유 대신 분유를 먹일 때는 분유에 익숙해질 수 있게 모유와 분유를 번갈아 가면서 분유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해줘야 했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나는 딸아이에게 불편한 식사시간을 제공해주고 있었다.
맞지 않는 분유를 먹고 속이 불편했던 딸아이는 밤낮없이 울어 댓던 것이었고, 배변 활동도 힘들었기에 결국에는 신생아 유산균을 함께 분유와 먹여야 했다.
이렇게 처음이라서 겪는 많은 실수들이 딸아이를 불편하게 했고, 그런 불편한 모습을 바로 인지하지 못한 나는 점점 딸아이의 모습에 지쳐가고 있었다.
너무 간절히 바랬던 우리 아이
너무 이쁘고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
처음 나를 만난 날 신비로운 빛을 내뿜고 있었던 우리 아이
'엄마랑 아빠랑 행복하자'
'사랑해'라고 수없이 말해 주었던 우리 아이
나는 이런 우리 아이에게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나의 무지한 행동 속에서 원인이 발생했는데 모든 원인을 남편과 아이에게 떠 넘기게 되었고, 나의 잘못은 없는 상대방의 잘못만 있는 생활이 지속되었다.
네가 순하지 않아서 엄마가 힘들어
네가 울어서 엄마는 쉴 수가 없어
네가 밥을 잘 먹지 않아서 엄마는 힘들어
네가... 네가... 네가....
이렇게 나는 산후우울증이라는 마음의 병을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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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우울증이란?
산모 10명 중 1명꼴로 출산 후 6-12주에 경험하는 비정상적 우울증이다.
산후 우울증은 크게 3단계로 분류되는데 가장 약한 것은 아기를 낳고 생기는 우울증이라고 해서 ‘베이비 블루’또는 많은 산모들이 겪는 우울증이라 하여 ‘마터니티 블루’라고 한다. 산모 10명 중 3-7명이 겪는다. 대개 1주일 정도 지나면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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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지쳐 있던 나에게 찾아왔던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보통은 1주일 정도 사라지는 게 일반적이라고는 하지만 나는 제때 치료를 하지 않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받아들이지 않고 피하고 외면하려고만 했기에 산후우울증이라는 손님은 쉽게 돌아가지 않았다.
모든 병이 그렇듯 내가 인정하고 치료를 하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빨리 병이 사라질 확률이 높아진다.
하지만 나는
나 행복해라는 가면을 쓰고, 매일 sns에 아이의 사진을 올리고, 남편에게 받은 출산선물 사진을 올리면서
'나는 행복해'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때 나는 행복했던 게 아니라 행복하고 싶다고, 누가 내 얘기 좀 들어줄래?라고 소리치고 있었던 것 같다.
점점 나는 더 무기력해졌고, 알 수 없는 통증들이 나의 수면을 방해하고, 사람들과 만나는 것도 싫어지고, 집안에서만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나는 점점 더 헤어 나오지 못하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우리 딸아이가 뒤집기를 하고, 기어 다니고, 스스로 앉게 되는 시간들이 흐르고 있었다.
스스로 잘 커주고 있는 딸아이 모습을 보면 왈칵 눈물이 쏟아져 한없이 미안한 마음에 쉽사리 눈물은 멈추지 않는 날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의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은 그냥 흘러 보낼 수도 있는 일들을 큰소리쳐 가면서 말 못 하는 아이를 혼냈고, 나의 불편한 감정을 아이에게 풀고 있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아이도 정서적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날도 나는 육아와 집안일로 지쳐 있었고, 감정의 변화를 조절하지 못한 채 나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이유식을 아이에게 주었는데 내가 먹여주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딸아이에게 빨리 먹으라고 재촉했고, 아이는 입속 가득 이유식이 있기에 더 이상 이유식을 받아먹지 않았다.
어린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그냥 평범한 일상이지만, 나는 이런 평범한 일상을 거부하고 있었다.
먹이던 이유식을 딸아이 앞에 내버려두고 혼자 먹으라고 화를 낸 뒤 나는 소파에 앉아 신세 한탄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딸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나는 이 모든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내가 지금 우리 딸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미친 거 아니야?
정신병 자지 너?
너무 사랑스러운 딸아이가 혼자서 이유식을 손을 집어 입안에 넣고 있는 모습,
머리와 얼굴 옷에 이유식이 묻어 있는 모습
바닥에 떨어진 이유식을 엎드려서 먹고 있는 모습
말도 안 되는 딸아이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바로 나는 딸아이에게 달려가 딸아이를 꼭 안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8년 가까이 지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이때 딸아이의 모습만 생각하면 미안하고 눈물이 난다.
나는 딸아이를 안고 펑펑 울고 난 뒤
욕실로 데리고 가 함께 목욕을 하면서 딸아이와 이야기를 하고, 장난감을 가지고 물놀이를 하면서 아이와 신나게 놀아 주었다.
오랜 시간 동안 물놀이를 해서 그런지 딸아이는 칭얼거리다가 바로 꿈 나라로 빠져 들었다.
딸아이의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의 나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고,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기 위해서는 뭐라도 해야만 했다.
이대로는 아무런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먼저 나에게 온 반갑지 않은 손님부터 돌려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나를 위해서, 우리 딸에게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 나는 변화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