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로서의 나? 그냥 나?

by 새나


한 살 터울 아이들을 키우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둘째는 아기띠로 업고 첫째는 유모차를 태우고 예방접종을 하려 가는 날이면 소아과에서 만난 처음 보는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내가 연년생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나를 보는 애처로운 눈빛과 안쓰럽다는 표정은 매번 보게 되는 것 같다.


첫째와 둘째를 데리고 혼자 소아과를 방문할 때마다 나는 하루의 쓸 모든 에너지를 다 소모하고 올 정도로 두 아이와의 외출은 쉽지 않은 일과였다.

둘째를 간신히 아기띠로 업고 재운 다음 소아과를 방문한 날 첫째 아이의 투정이 시작되었고, 사탕을 주고 과자를 주어도 마음에 들지 않는 첫째는 계속 소아과 안에 있는 미끄럼틀을 같이 타러 가자고 내 손을 잡아당겼고 그렇게 실랑이를 하고 있는 사이 충분히 잠을 자지 못하고 깬 둘째는 칭얼대기 시작했다.


둘째가 태어나고 난 뒤 첫째의 행동은 더 애기처럼 변해 버렸고, 칭얼대고 떼쓰는 횟수도 늘어났다.

나는 결국 첫째에게 무서운 얼굴로 주의를 주었고, 첫째는 그런 나의 모습에 더 서러웠는지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정말 아비규환이었다.


지금 여기가 어딘지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있던 초면인 애기 엄마가 나의 모습이 애처로운지 첫째와 함께 놀이방에 가서 놀아주겠다고 첫째와 함께 놀이방에서 놀아주기도 했고, 둘째에게 책을 같이 읽어준 엄마도 있었다.

같이 육아를 하는 엄마들이었기에 두 아이를 데리고 고군분투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애처로워 보이기도 했고, 엄마 참 힘들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나는 아이들과 외출을 하려면 정말 큰 마음을 먹고 해야만 했다.

이런 상황을 모르는 시부모님이나 남편은 집에만 있지 말고 아이들을 데리고 키즈카페도 가고 문화센터에 가서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라고 말한다.

집에서 잠깐씩 아이들을 볼 때도 조금만 칭얼대기만 해도 나를 부르는 시부모님이나 남편이 이런 말을 하니 어이가 없기도 했고 섭섭하기도 했다.


육아는 체력전과 감정선을 잘 관리해야 된다는 육아 고수들의 말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첫째가 말문이 트이면 보내려고 생각했던 어린이집을 일찍 보내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다 보면 사회성도 좋아질 거야'

'언니 오빠들과 지내다 보면 말문도 금방 트일 거야'

'집에서 해주지 못하는 촉감놀이, 물총 놀이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을 거야'

우리 딸이 어린이집을 다니면 훨씬 긍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고 사회성도 저절로 생길 수 있어!

그렇게 나는 어린이집을 다니면 좋은 점들을 머릿속에 쭉 나열하고 있었다.


나는 그날 저녁 남편과 첫째 딸아이의 '어린이집 보내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딸아이의 입장에서 딸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얻게 될 긍정적인 효과들 위주로 이야기를 했다.

남편도 나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이 되는 눈치였고 내일부터 어린이집을 알아보자고 했다.

나는 인터넷 맘 카페에서 우리 집 근처에 위치한 좋은 어린이집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고, 4살 딸아이가 잘 적응할 수 있는 선배맘들의 조언들도 얻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리스트에 적어 놓은 어린 집에 하나둘 전화를 걸어 상담을 해보았지만 인기 있는 어린이집이다 보니 남는 자리가 없었고, 이미 대기 인원수가 꽉 찬 상태였다.

고민 끝에 2순위에 있었던 어린이집에 전화를 해보니 딱 한자리가 비어 있다고 했다.

여느 때와 같이 첫째는 유모차, 둘째는 아기띠에 업고 집 근처 어린이집으로 갔다.

무엇보다 첫째가 잘 적응할 수 있는 곳이 어린이집 선택의 1순위라고 생각했기에 첫째와 함께 어린이집 분위기도 볼 겸 함께 가기로 했다.


이런저런 상담 끝에 1시간 정도 첫째가 아이들과 생활을 해보기로 했다.

나는 교실 밖에서 지켜보면서 첫째가 잘 노는지 잘 적응할 수 있는 곳인지 보기로 했다.

예상외로 우리 딸은 아이들과 잘 어울려 놀았고, 선생님의 수업을 재미있어했다.

1시간 정도 더 노는 것을 치켜보고 결정하기로 하고 나는 둘째와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첫째를 데리러 가기 위해 어린이집으로 향했고 딸아이는 즐겁게 또래 친구들과 잘 어울려 놀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나왔다

그동안 내가 해주지 못했던 놀이들이 신기하고 재미있는지 내가 온지도 모른 체 놀이에 빠져 있는 우리 딸 모습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과 등록절차를 마치고 내일부터 어린이집을 다니기로 했다.

2주 동안 적응기간이 필요했기에 오전만 하고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왔고, 2주 뒤부터는 다른 아이들처럼 오후 4시까지 어린이집에서 지내다 하원 하기로 했다.


어린이집에 잘 적응해 주는 첫째 아이가 너무 고마웠고 둘째 아이도 낮잠을 충분히 잘 수 있어서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첫째 아이 어린이집에서 체험학습을 가는 날은 매번 새벽부터 일어나 아이가 좋아하는 과일과 과자로 도시락을 준비했다.

그렇게 첫째는 첫 사회활동에 잘 적응했고, 둘째도 걷고 어느 정도 말문이 트였을 때 누나와 함께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었다.

아이들이 없으니 자연스레 나에게 주어진 시간들이 많았지만 나는 그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기 일쑤였다.


'다시 일을 시작해 볼까?'

'아르바이트라도 할까?'

'뭐라도 배우러 다닐까?'


아이들 일상에 맞춰져 있던 나의 시간들이 아이들이 사라져 버린 나만의 시간이 되었는데도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아이들이 없어도 아이들을 위해 그 시간을 사용하고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잘 지내고 있을까?'

'밥은 잘 먹었을까?'

'친구들이랑은 싸우지 않고 잘 지내고 있겠지?'

'선생님이 우리 아이들을 예뻐해 주시겠지?'

'다치지 않게 잘 생활하고 있겠지?'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있는 동안 나는 집에서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을 걱정하면서 보내고 있었다.

나는 나대로 심한 스트레스와 걱정으로 심한 두통과 소화불량에 시달렸고 그렇게 나는 또다시 반갑지 않은 손님과 마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엄마인 나로서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있는 그대로 나로서 살아가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라는 걸 매번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야 알게 된다.

내가 행복해야 아이들에게 행복을 나눠 줄 수 있다는 것을 분명 알고 있었는데 그 사실을 잊고 살아가고 있었다.


엄마로서의 나?

있는 그대로의 나?


답답한 마음에 나와 같은 상황에 있는 엄마들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글들을 찾고 읽고 있던 중 알게 된 한 문장이 나를 생각하게 했고 움직이게 했다.


"엄마의 긍정적 성장은 아이에게도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다"


이 한 줄의 글에는 많은 뜻이 포함되어 있었다.


엄마의 공부를 통해 성장하는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집착하기보다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립심을 길러 주었고, 엄마의 공부하는 모습은 자연스레 엄마 옆에서 책을 보는 스스로 주도 학습이 가능한 아이가 되어 주었고,

엄마의 공부는 엄마 본인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게 해 주었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선한 영향력으로 전달되어 함께 성장하는 효과를 줄 수 있게 되었다.


이 글을 읽고 나는 또 다른 나의 삶 속의 터닝포인트를 만나게 되는 엄마의 공부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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