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거짓말하고 있다. 좋은 척. 괜찮은 척. 아프지 않은 척 거짓말을 하고 있다. 좋은 며느리, 좋은 친구, 좋은 아내, 좋은 사람 콤플렉스에 빠져 내가 아닌 나처럼 살아가고 있다. 싫은 소리 듣기 싫어서. 타인의 시선이 신경 쓰여서 내 멋대로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이렇게 사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게 좋은 거. 나 하나 참고 견디면 목소리가 커지는 일도.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도. 핏대 세우며 다투는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정작 내 속은. 내 마음은 상처 투성이로 곪고 곪아 만신창이가 되어 있어도 나는 여전히 괜찮은 척 거짓말을 한다. '나를 좀 봐줘'라고 소리치는 내 마음의 상처들을 무시한 체 허허실실 웃고 있다.
작년 겨울 흔한 감기에도 잘 걸리지 않았던 내가 아주 고약한 감기에 걸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끙끙거리고 있었다. 온몸에 식은땀이 흘러내렸고, 머리는 터질 것 같은 두통에. 연이어 나오는 재채기에 나의 에너지는 방전되어가고 있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엄마 배고파!" 시도 때도 없이 배꼽시계가 울려대던 아이들은 점심밥을 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배가 고프다는 말을 한다. "아빠한테 먹을 것 좀 달라고 해!" 나는 쉬고 싶었다. 아이들은 아빠한테 조르르 달려가 "아빠 배고파!"라고 말을 한다. 안방 침대에 누워 있는 나의 귓가에 거실과 주방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생생하게 그려질 정도로 남편과 아이들의 대화가 들린다. "싱크대 아래쪽 두 번째 문을 열면 쵸코과자랑 라면 과자가 있어! 냉동실에 아이스크림도 꺼내 먹어! 라면 끓여 먹을래?"
남편의 휴대전화 소리가 울렸다. 시부모님 전화였다. 애들 엄마가 감기에 걸려 방에 쉬고 있고, 아이들 배고프다는 말에 과자를 먹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말만 쏙쏙 뽑아 말을 하고 있는 남편에게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전화를 끊은 남편을 불렸다."그런 이야기를 뭐하러 해? 그냥 집에서 쉬고 있다고만 하지..." "해장국 사 가지고 오신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누워 있는 며느리가 걱정이 돼서 해장국을 사 가지고 오신다는 시부모님. 나는 지금 그냥 쉬고 싶은데. 지금 필요한 것은 휴식. 돈도 먹을 것도 아닌 휴식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에 시부모님이 집으로 오셨다.
땀으로 젖어 버린 옷을 새 옷으로 갈아입고 헝클어진 머리를 슥슥 빗어 고무줄로 돌돌 말아 똥머리를 하고 거실로 나간다. "오셨어요!" 억지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한다.
거짓말을 한다. 괜찮은 척. 아프지 않은 척. 기분 나쁘지 않은 척.
마음의 목소리와 현실의 목소리는 다르다.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소파 한쪽 모퉁이 앉아 있는 나의 모습이 보인다. 가엾다. 한없이 가여워 보이지만 나는 좋은 며느리. 좋은 아내이고 싶어 싫은 소리 하지 못한다. '방에 가서 좀 쉴게요'라는 말이 입속에서 맴돌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말이 나에게는 여러 번 반복하고 생각하고 난 뒤에 조심스럽게 꺼낼 수 있는 말이다. 친구들과 지인들 사이에서 나의 별명은 '답답이'이다. "할 말 좀 하고 살아야지 답답해서 어떻게 사냐"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매번 빠지지 않고 듣는 말이다. 내 별명이 답답이가 된 계기가 되었던 말이기도 하다. 썩 좋은 별명이 아녔기에 서너 번 정도 하고 싶은 말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을 했다고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루 종일 내가 한 말에 상대방이 혹시나 마음을 다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에 나의 마음이 불편했다. 나의 리듬에 맞추기보다는 상대방의 리듬에 맞추어 행동해 왔던 나였다.
사람들의 기준에 나를 끼어 맞추다 보면 나의 정체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혼란스러운 나 만이 남는다. 나는 괜찮은 척. 좋은 척하는 이 모습이 나의 모습이고 나 답게 살아가고 있는 나만의 방식이다. 누군가의 눈에는 할 말도 못 하는 답답이로 보이고. 자신의 의견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소심한 소극적인 사람으로 보이지만 나는 이렇게 사는 것이 편하다. 할 말 다하는 사람으로 사는 것은 나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할 말을 다한다고 해서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난 이후부터는 그냥 지금 이 모습이 나라고 생각했고. 나답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으른 것도. 소심한 것도. 말하지 못하는 것도. 이 모든 것이 모두 나다. 그냥 나답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다. 타인의 기준에 부지런해야 행복하고. 말 잘해야 행복하고. 활동적이어야 행복한 것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 나로 사는 것이 행복이고 정답이다.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나. 성공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것도 나. 실패하는 것도 나. 이 모든 것이 나다.
나는 누구인가? 나 답게 사는 것은?
이 질문에 대답은. 지금 현재 있는 그대로의 나, 그것이 나다. 아주 특별하고 심오한 뜻이 있는 것이 아닌 단순한 지금의 내가 바로 나란 존재이고 지금 나의 라이프스타일이 나답게 사는 방법이다. 나라는 존재는 내가 만들어 간다. 심한 감기에 걸려 침대에 누워 쉬고 싶지만 밥 한 끼 먹지 못하고 있을 며느리가 걱정돼서 평소에 좋아하던 해장국을 손수 사 가지고 오신 시부모님 앞에서 쉬고 싶다고 말하는 나 보다는 몇 분이든. 몇 시간이든 앉아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나 다운 행동이었다.
행복의 평균. 옮고 그름의 평균의 틀 속에서 나를 억지로 끼워 맞출 필요는 없다. 각자의 삶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고, 가지고 있는 성격, 생김새, 재력, 재능 뭐 하나 같은 것이 없는 사람들 속에서 똑같은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나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면서 괜찮은 척... 척... 척...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나답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곪고 곪아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나의 마음은 수많은 책으로 위로받고,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의 소통으로 치유하고 있다. 나답게 살아가는 방법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하고 즐거운지. 어떻게 하면 나의 상처가 치유되는지 수많은 경험과 책으로 그 방법을 해답을 찾아가고 있다.
고인물은 썩어 악취를 풍기지만 쉬지 않고 흐르는 물은 많은 물고기들이 찾아온다. 나라는 존재는 나 스스로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내가 된다면 내가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나의 곁으로 다가온다. 성장하고. 공부하고. 독서하고. 글 쓰는 나. 누가 뭐라든 나는 그냥 답답이로 행복하게 나답게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