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담아두지 않는다.

by 새나

원망이란 은덕이 한쪽으로만 베풀어졌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니 남들이 나의 은덕에 감사하기를 바라기보다 은덕과 원망을 모두 담아두지 않게끔 하는 것이 낫다. 원한이란 은혜를 골고루 베풀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니 남들이 나의 은혜를 알게 하기보다 은혜와 원한을 모두 없애는 편이 낫다.

- 채근담 전집 108


이혼을 하고 혼자 아이를 키우는 K. 일과 육아를 온전히 스스로 감당하는 모습이 버거워 보여 작은 도움의 손길을 건넸다. 양육에 대한 정보와 지원에 관한 소식 등을 밥벌이로 바쁜 K에게 알려 주었다. 잘 해내고 있는 K의 모습을 응원했다. 아이의 준비물을 미리 준비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를 때 새벽 배송으로 급한 준비물을 구입해 K의 집으로 바로 배송해 주었다. 작아진 옷과 신발들을 깨끗이 세탁해 주기도 했고, 초등학교 입학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에 학용품 세트와 가방세트를 선물해 주었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들을 적응해 나갈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름 열심히 살아 갈려고 애쓰는 K의 모습에 조금의 무거운 짐을 함께 들어주고 싶었다.


K는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일에만 집중했다. 아이의 양육에는 더 이상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식당을 하는 K의 친정은 주말에도 쉬지 않는다. 주말만이라도 아이와 놀아주기를 권했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아이는 할머니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직 한글도 제대로 읽지 못한다. 수학은 숫자만 읽을 뿐 문제를 이해하지 못한다. 한글을 모르니 모든 과목에서 뒤처지고 있었다. 스스로 해주지 못하면 학원이나 학습지 선생님의 힘을 빌려 공부하는 습관을 만들어 주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답만 할 뿐 아이는 여전히 스마트폰 앞에서 온종일 있다. 아이가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유아 한글 교재를 K에게 선물했다. 아이가 스스로 매일 한 장 씩이라도 꾸준히 한글 쓰기 공부를 할 수 있게 해 주면 좋을 것 같았다.


도움을 주고 싶었기에 나는 그냥 도와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도움으로 조금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K는 나의 도움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도움 역시 당연하다는 입장이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저마다 시간을 아껴, 돈을 아껴, 도움을 주는 것이다. 내가 선물한 학습지는 집 어딘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생활비를 아껴 선물한 물건들이 아무 의미 없이 구석에서 먼지가 쌓여 간다고 생각하니 화가 났다. 어떤 문제지가 K의 아이에게 잘 맞을까? 흥미를 가지고 스스로 풀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신중히 선택했던 시간들을 생각하니 허무함 그 자체였다. 그동안 나의 호의가 K에게는 호구로 보였을지도. 헛헛했다. 무엇을 바라고 했던 일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K의 태도를 마주하고 보니 서운한 마음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더 이상 K에게 호의를 베풀지 않았다. K가 스스로 알기를 바랐다. 그동안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얼마나 고마운 것들이었는지 스스로 알았으면 했다.


도움을 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는 K의 행동에 대한 서운한 마음과 아이를 돌보는 손길이 아직 서툰 K를 보고 있으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함께이다. 채근담의 말처럼 은덕과 원망을 모두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게끔 하는 것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마음을 공평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호의를 베풀었다면 그것으로 잊어버리기로 했다. 내가 이만큼 해줬으니 너도 이만큼의 감사한 마음은 갖기 바라는 마음조차 담아두지 않기로 했다.


모두 마음에 담아두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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