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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로시 Nov 17. 2021

그림의 위로

한눈에 빠져드는 미술관

대학 동기를 따라 스무 살 때 미술관에 처음 가 보았다. 누구의 미술작품인 줄도 모르고 공짜 관람이라는 말에 무작정 친구를 따라갔었다. 그림이라고는 학창 시절에 배운 피카소와 고흐의 그림이 전부였던 나였다. 그랬던 나에게 그 미술관 벽에 걸려있던 그림들은 묘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선이 보이지 않았고, 채색으로만 그려진 것 같은 그림들을 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그림과 나의 거리를 한 걸음 뒤로 물러나게 했다. 한두 걸음 뒤로 옮겨 그림을 바라보니 가까이서 보았던 그림과는 달리 선명한 그림의 형태가 눈에 들어왔다. 그림에 따라 가까이서 보면 더 선명해 보이는 그림과 멀리서 보면 더 선명해 보이는 그림이 있었다. 그림에 대해 잘 몰랐지만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따뜻함이 전해지기도 했고, 어떤 그림은 내 안에 불안감을 꺼내기도 했다. 그때 대학 동기와 갔던 미술관이 내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 미술관 관람이었다.


#안용태 작가의 #한눈에 빠져드는 미술관 책은 미술에 대해 잘 모르지만 미술관은 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미술에 대해 전혀 모르더라도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림에 빠져 들게 된다. 대학 시절 미술관에서 보았던 그림은 아마도 인상주의 그림이 아녔을까 생각한다. 클로드 모네가 평생 동안 고집하고 놓지 않았던  빛과 인상 그것이 내가 보았던 그림이었다.


라파엘로는 "현실에서는 완전한 아름다움을 찾기 힘들기 때문에 때때로 상상을 가미하여 그림을 그린다"라고 말하였다.

중요한 것은 현실을 본 딴듯하지만, 더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고전주의이다.


귀족과 성직자들의 특권에 화가 난 시민들이 폭동을 일으키면서 프랑스 대혁명이 시작된다. 다비드는 자코뱅 다원으로 권력 중심부에 깊숙이 관여한다. 마라는 아주 과격한 인물로 인민의 적에게는 줄 것이 죽음밖에 없다 라고 말하며 귀족과 왕당파를 모조리 죽여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펼쳤다. 당시 파리 시민들은 공포정치에 깊은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다. 다비드는 마라의 죽음이 가져올 파장을 우려하여 그를 편안하게 죽은 듯 묘사했다. 그림에 정치적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담아내기 시작했는 시점이었다. 그림은 그 시대의 삶 속에 녹아 있는 슬픔, 절망, 환희, 사랑, 욕망을 담고 있다.


이성과 합리성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그 너머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관심, 그것이 바로 낭만주의이다.

고야의 작품은 세상이 우리를 미치게 하는 것인지, 우리의 광기가 세상을 그렇게 만드는 것인지 명확한 답을 내려주지 않는다. 우리에게 보고 싶지 않은 것,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직시할 수 있도록 하며, 외면하고 싶은 진실과 마주하게 한다. 인간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우리 내면에 숨겨진 흉포함을 정면으로 마주 할 때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다면. 그 일이 여러 번 반복된다면 아마 세상에 원망을 안고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팬더믹 세상과 미친 듯이 오르는 집값과 사라지는 일자리 등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 매번 앞을 가로막고 서있다. 현실의 벽을 허물어 버릴 힘이 있다면 그래도 살아간다. 하지만 그럴 힘조차 없으면 우리는 그대로 벽 앞에 주저앉아 버리고 만다. 포기해버린 삶은 그들의 내면에 숨 진 광기와 마주할지 모른다. 오랜 전쟁으로  프란시스코 데 고야가 인간성에 대해 아주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마네는 여유로운 현대 생활의 풍경을 다룬 최초의 화가이다.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이야기 나누는 모습. 음악회를 즐기는 모습 등 도시 생활을 주로 다루었다. 오직 자신이 살고 있던 그 순간의 풍경에만 관심이 있었다. 마네는 사실주의자로 볼 수 있다.


마네의 그림을 보면 그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사람들의 모습과 생활을 그리는 것은 그 시대의 역사가 된다. 각 시대에는 그 시대의 풍모와 시선과 미소가 있다. 너무나 자주 변화하는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이 요소를 경시하거나 간과해서는 안된다. 물이 고여 있으면 썩기 마련이다. 계속 새로운 곳으로 흘려야 맑은 물을 유지할 수 있듯이 미술의 세계도 변화를 하고자 했던 마네와 같은 사람이 있었기에 더 많은 미술의 발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르누아르가 그려낸 인상주의 작품들은 당시 파리의 생활을 사진 찍듯이 표현하고 있다 마치 이것이야 말로 우리의 진정한 생활이라고 외치는 듯 말이다.


아무리 좋은 그림이라도 사람들이 찾지 않으면 소용이 없었다. 생계를 책임져야 할 많은 화가들이 자신의 그림을 그리지 않고 잘 팔리는 그림을 선택해야 했다. 예술의 세계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하기에는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많은 화가들의 그림이 그들이 생을 마감한 뒤에야 비로소 빛을 발하고 높은 가격에 팔리는 것이 안타깝다. 생계를 걱정하지 않았더라면 더 많은 그림을 남겼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절규, 불안이라는 두 작품은 뭉크가 가지고 있던 어둡고 부정적인 감정을 이겨내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림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고 다시금 다잡아 나갈 힘을 얻었다.


어린 시절 상처는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자신을 괴롭힌다. 우리가 아이를 통해 나의 어린 시절을 보며 화를 내기도 하고, 연민을 느끼기도 한다. 스스로 자신의 상처를 치료하지 않으면 나는 물론 아이에게도 나와 같은 상처를 줄 수 있다. 에드바르 뭉크는 어린 시절 지독할 만큼 고통스러워했다. 그는 자신을 괴롭히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음을 주제로 많은 그림을 남겼다. 그에게 그림은 작지 않은 위로가 되어 주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나의 상처를 위로 하기도 하지만 그림을 보며 상처들을 위로받기도 한다. 뭉크의 불안이라는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나의 불안과 마주하고 그 불안을 이겨낼 힘을 찾게 된다.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조용히 다가와 나를 위로한다. 미술관에 가지 않아도 유명한 명화들을 보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시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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