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온도가 낮아졌다. 코트를 꺼내 입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불변의 문장 앞에 도서관으로 향했다. 수필수업을 듣기 위해서. 어긋나는 감정선을 바로 잡기 위한 독서를 위해서 기도 했다. 메말라 버린 나뭇잎이 바닥에 떨어진다. 빗질이 여러 번 움직이니 나뭇잎들은 한 곳으로 모여든다. 그에 질세라 나무는 다시금 나뭇잎을 바닥으로 내던진다.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연두색 조끼를 입은 노인의 빗질이 다시 나뭇잎을 쓸고 지나갔다. 나무와 노인의 팽팽한 신경전의 승자는 누가 되었을까. 주름진 나뭇잎이 내 눈앞에 떨어진다. 또다시 노인의 빗질 소리가 들려온다.
글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로 강의실이 빼곡했다. 글을 위한 열정이 사람들을 불러 세운다. 형상화와 의미화 수업을 시작한다. 형상화는 구체적 사물을 더 감각적으로 강화하는 것이다. 해석과 형상화는 문학작품이 갖추어야 하는 필요조건이자 충분조건이다. 형상화는 비유라는 과정을 통해서 도달하게 된다.
수필 이론 수업이 끝나고 수강생들의 글을 읽는다. 우리는 쓰고자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다. 그러니 한 편의 글은 건져야 하지 않겠는가. 강사는 수강생들 모두가 글을 쓰기를 원했다. 이번 시간은 네 편의 글을 소개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담은 글들은 따뜻했다. 글쓰기 수업에 또 다른 매력이다. 다른 사람의 삶을 엿볼 수 있다는 거. 그들이 걸어온 시간들에 잠시 머물 수 있다는 거. 그것은 글을 쓰는 것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독서를 즐기는 이유와 비슷하다. 반복되는 문장을 잘라내고, 사실과 다른 문장을 고쳐내며 글은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난다. 일단 써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쓰지 않았더라면 합평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으니.
합평이 끝난 글들은 그들의 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어느 공모전의 당선작일 수도. 책의 한 꼭지가 될지도. 아니면 누군가를 위한 헌정의 글이 될지도 모른다. 도서관에서 쓴 글들로 자주 공모전에 응모한다. 당선되는 작품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작품들도 존재한다. 쓰지 않았으면 존재하지 않았을 글들이. 읽힘의 행위를 재촉한다.
도서관에서 만나는 말들은 생기가 있다. 일흔의 나이에 어느 문학잡지에 등단한 수강생분은 오랜 시간 도서관에서 글과 함께 했다고 한다. 어느 분은 이름을 찾고자 글을 배운다고 한다. 결혼과 동시에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누구누구의 엄마, 지역의 이름을 붙인 oo댁의 이름으로 불리던 그들이 이름을 찾고 글을 쓴다. 글을 쓰는 이유는 모두가 달랐지만 그들의 말은 살아있었다. 도서관에 오면 살아 있는 말들을 만날 수 있어 좋다. 책에서 만나는 말과는 또 다른 울림이 있다. 숨 쉬는 말들을 만날 때면 오랫동안 죽어 있는 시간들을 깨울 수 있으니. 도서관에 자주 발길을 건네는 이유이기도 하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었다. 오랜 시간 동안 읽히지 않은 책이었다. 손이 가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며 몸이 비틀어지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내용을 이해하고 싶은 몸부림이었다. 문득 '꼭 이해를 해야 하는 건가.'라는 물음표가 던져졌다. 그냥 읽어도 충분한 것이 아닌가. 읽힘의 행위만으로도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글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대 위대한 별이여! 그대가 빛을 비추어준다 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일 존재가 없다면, 그대의 행복은 무엇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