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2017.10월 공인중개사 1차 시험 당일

by 새나

2017년 10월 28일 6개월 동안 준비했던 공인중개사 1차 시험이 있는 날이다.

새벽 6시에 일어나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긴장되는 마음도 진정시키고 오늘 시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잠을 설쳐 피곤함 해소에 힘을 보탰다.

베란다 창문을 열고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하면서 새벽의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탁한 공기로 가득 찬 나의 몸속의 공기를 내보내고 맑은 공기를 채우고 있었다.

떨지 말고 시험 잘 치자라는 다짐도 함께 한 뒤 베란다 창문을 닫고 다시 거실 테이블에 앉았다.


[수험표, 신분증, 컴퓨터용 사인펜, 개인필기도구, 일반 계산기, 손목시계, 수정테이프]

공인중개사 시험장에 가기 전 잊지 말고 챙겨가야 할 준비물 리스트도 확인했고, 시험장에 도착해서 볼 수 있는 요약노트도 함께 넣어 두었다.

시험 당일은 요약집과 오답노트 위주로 가볍게 공부를 했다.

머릿속에 흩어져 있는 학개론 용어들과 민법 판례들을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가볍게 요약집을 읽어 내려갔다.

어느 정도 정리된 요약집을 거의 읽어 내려갈 무렵 둘째 아이가 잠에서 깨어 나의 무릎 위에 앉아 잠이 덜 깬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 오늘 시험 잘 쳐!"

둘째 아이의 응원의 말에 긴장되어 있던 마음이 조금은 진정이 되었다.


6개월 동안 티 나게 유세 부리면서 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공부를 시작하면서 집안일에 소홀하게 되었던 일로 남편과 자주 투닥 되었던 일들이 생각났고, 지인들과의 약속도 공부를 한다는 이유로 대부분 취소를 하면서 공인중개사 시험 준비하는 티를 팍팍 냈는데 혹시 시험의 결과가 좋지 않으면 어떡하지?라는 불안한 생각이 시험에 대한 불안감과 함께 나타났다.

시험에 불합격한다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좋지 않은 이야기로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시험에 대한 압박감 역시 커지고 있었다.


"엄마 시험 잘 치고 올게! 시험 끝나고 맛있는 거 사 올게!"

둘째 아이의 응원에 불안한 마음을 다잡고 택시를 타고 시험장으로 출발했다.



photo-1455815152231-be9c88eb7468.jpg


혹시 몰라 시험 시작 1시간 전에 시험장에 도착했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시험장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가족의 응원을 받는 사람들

친구의 응원을 받는 사람들

연인의 응원을 받는 사람들

학원의 응원을 받는 사람들


부럽다는 마음을 숨기고 아무렇지 않은 듯 그들 사이를 헤치고 시험 장안으로 들어가는데 많은 학원에서 학원 판촉물을 나눠주고 있었다.

그중 하나의 학원 판촉물을 받고 시험장 안으로 들어갔다.

학원에서 나누어 준 판촉물 중에는 아주 얇은 요약집도 함께 들어있었다.

다른 학원에서는 어떤 내용들로 요약집이 정리되어 있었는지 궁금했고 나의 요약집 보다는 학원의 요약집으로 시험 시작 전까지 보기로 했다.

하지만 이런 나의 선택은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것을 시험이 시작되고 시험문제를 풀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정리해 두었던 내용과 학원에서 나누어 주었던 요약집에는 차이가 있었고, 6개월 동안 공부해 오면서 나의 공부스타일에 맞게 정리되었던 요약집은 나의 머릿속의 내용들을 잘 정리를 해주었지만, 학원에서 나누어 주었던 요약집은 그날 처음 보았던 내용들도 있었기에 머릿속을 더 혼잡하게 만들어 놓았다.

공인중개사 시험은 시간이 촉박하기도 했기에 바로 문제를 읽고 바로 답을 체크해야지만 시험시간 내에 답안지를 제출할 수 있다.

하지만 뒤죽박죽 되어버린 머릿속의 내용들로 인해 한 문제에 답이 2개로 고민을 하게 되면서 시간 배분에서부터 멘붕이 오기 시작했다.


공인중개사 1차 시험은 9시까지 입실을 완료해야 하고 시험은 9시 30분부터 시작하여 11:10까지 100분 동안 시험이 치러진다.

부동산학개론 40문제 민법 40문제 총 80문제를 100분 안에 모두 풀고 omr카드에 체크한 뒤 제출해야 한다.

공인중개사 시험은 omr카드 답안지만 제출하면 되고 시험지는 집으로 가지고 올 수 있다.

공인중개사 1차 시험이 끝나고 2시간 정도 뒤면 가답안이 각 학원 사이트에 공개된다.

그러므로 시험지에 답안지 답을 체크해서 가지고 오면 가답안 채점으로 그날 바로 합격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한 문제를 해결하면 곧 다른 문제가 잇따르지

문제없는 삶을 꿈꿀 지지 마

그런 것 없어

그 대신 좋은 문제로 가득한 삶을 꿈꾸도록 해


100분 동안의 시험이 끝이 났다.

6개월 동안의 나의 공부도 끝이 났다.

공인중개사 1차 시험이 치러졌던 시험장은 나의 집과는 걸어서 40분 정도에 위치 있었다.

택시나 버스를 타기보다는 잠깐 걷고 싶었다.

학개론 문제가 너무 어려웠다.

민법 문제도 아리송한 문제들이 많았다.

시원 섭섭한 알 수 없는 감정을 위로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위로의 방법으로 40분 거리 길을 걷기로 했다.

중간쯤 걷어 갔을 때 take out 커피점이 보였고 따뜻한 아메리카노도 한잔 사서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한 손에는 공인중개사 시험지와 필기도구들이 든 에코백을 들고 천천히 걷고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풍경들이 시험 결과에 대한 불안감은 잊히고 있었다.

오래된 길거리 벽면에 자원봉사분들처럼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서로 깔깔 거리는 웃음소리를 듣고 있으니 그 풍경 자체가 힐링되었다.

평소 나의 걸음보다 더 느림보가 되어 걷고 있었다.


주머니 속에서 진동소리가 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한 손에는 커피가 한 손에는 에코백이 들려 있다는 핑계로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가 받고 싶지 않았다.

시험이 끝나고 도착할 시간이 훨씬 넘었다고 생각한 남편의 전화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화기 진동이 쉬지 않고 울리기 시작하면서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로운 시간이 방해되기 시작했다.

전화기를 받을 때까지 할 작정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에코백을 어깨에 끼워놓고 자유로워진 한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역시 남편이었다.

"부모님 집에 가야 하니 빨리 와! "

부모님 집에 가야 한다고 빨리 서둘러 집에 오라는 남편의 전화였다.

전화기 너머로 둘째 아이가 울고 있는 소리가 들렸고 정신없는 남편의 모습이 상상되기 시작했다.




느림보 걸음걸이에서 걷다 뛰다를 반복하면서 집에 도착했다.

거실은 아이들 장난감과 널브러진 옷들로 어질러져 있었고, 둘째 아이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아이들 외출복이라고 입혀 놓은 옷은 어린이집 등원 때 미술수업 때만 입히는 얼룩진 옷들로 입혀 놓고 바로 시부모님 집으로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콧물과 눈물로 얼룩진 아이들 얼굴을 씻기고 깨끗한 외출복으로 다시 갈아 입히고 시부모님 집으로 출발했다.


신혼초부터 나는 남편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고 그렇게 해주길 바라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나의 생각대로 나의 기대대로 남편은 변화지 않았다.

공인중개사 공부를 시작하면서도 수없이 남편의 배려를 생각해 왔었다.

결과는 아니었다.

배려보다는 제대로 되지 않는 집안일로 서로 언성이 오가는 일들이 많았다.

남편의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이제는 사람들이 말하는 모든 것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

그래서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에 신경을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

그걸 알고 나니 제 삶은 훨씬 더 나아졌습니다.


공인중개사 1차 시험이 끝나고 돌아온 나에게 시험은 어땠는지? 잘 쳤는지? 궁금해하지 않는 남편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수고했다는 말을 하지 않는 남편의 무관심한 태도를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에 신경 쓰기로 했다.

지금 순간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공인중개사 1차 가답안 채점 결과였다.



저는 제가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틀렸던 것들,

인생을 통틀어 지워지지 않을 쪽팔림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제 삶에서 별 게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예전에 귀담아 들었던 조언들이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고,

사람들이 내 일거수일투족 따위엔 관심도 없다는 사실도 함께요

그러면서 진짜로 가치 있는 것에 더 신경을 쓰게 됐고,

그런 과정을 통해 자유로워졌습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말하는 모든 것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

그래서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에 신경을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

그걸 알고 나니 제 삶은 훨씬 더 나아졌습니다.


[ 신경 끄기의 기술 책 내용 중에서 ]



작가의 이전글위기인 줄 알면서 하지 않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