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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감정의 맛 08화

기대의 맛, 종이컵 계란빵

:기대하다

by 새나

종이컵에 담긴 반죽을 바라보며, 나는 그날의 계란빵이 떠올랐다.


학교 앞에서 친구들과 줄을 서서 사 먹던 그 계란빵.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구운 계란빵은 따뜻했고, 한 입 베어 물면 폭신한 빵 사이로 고소한 계란맛이 퍼졌다. 겨울이면 특히 그 맛이 그리웠다. 주머니 속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친구들과 하나씩 사 먹던 기억. 작은 종이컵 안에 담긴 계란빵 한 조각이 그렇게도 행복했던 순간들이었다.


오늘, 난 그 기억을 되살려보기로 했다.


핫케이크 가루를 물에 풀었다. 숟가락으로 휘휘 저어가며 적당한 농도를 맞췄다. 종이컵에 반죽을 3분 1쯤 붓고, 계란하나를 조심스럽게 깨 넣었다. 소금을 한 꼬집 뿌리고, 포크로 노른자를 살살 풀어 주었다. 전자레인지에 넣고 5분만 기다리면 된다.

전자레인지 문을 닫고 '시작'버튼을 눌렀다. 안에서 반죽이 부풀어 오르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과연, 그때 그 맛이 날까?' 기대가 부풀어 올랐다.


기대라는 감정은 설렘을 동반한다. 공모전에 원고를 응모하고 발표날을 기다리는 순간도 그렇다. 혹시 내가 당선된다면? 멋지게 상을 받고, 아이들과 치킨을 시켜 먹으며 웃고 있는 나를 상상해 본다. 상금으로 부족한 생활비를 채울 수 있고, 엄마로서 조금 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붕 떠오르는 기분이 든다. 마치 전자레인지 속에서 천천히 부풀어 오르는 계란빵처럼.


하지만 기대가 꼭 원하는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삐-' 전자레인지 조리 시간이 끝났다는 신호를 알렸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종이컵을 꺼냈다. 김이 올라오는 계란빵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무언가 달랐다.

겉보기에는 괜찮아 보였지만, 포크로 찔러보니 질감이 어딘가 퍽퍽했다. 한 입 베어 물었다. 한 번쯤 먹을 만한 맛이기는 했지만 그때 그 맛은 아니었다.

입안에서 퍼지는 퍽퍽한 식감, 그리고 싱거운 맛, 뭔가 많이 부족한 맛이었다.


당선자 발표날은 떨린다. 혹시나 하는 기대는 당선자 명단을 보고 나서야 슬그머니 사라진다. 내 이름이 없을 때 느껴지는 공허함, 하루 종일 무기력해지는 기분.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그 찰나.

전자레인지 앞에서 계란빵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똑같았다. 이 순간도. 공모전 탈락의 순간도.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몇 초면 충분했다.


그렇다고 해서 멈출 거야?


나는 다시 핫케이크 가루를 꺼내 들었다. 이번에는 우유를 조금 섞어 보면 어떨까. 설탕을 넣으면 좀 더 달달해 질까.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어졌다.


공모전이 끝나고 나면 다음 공모전이 열린다. 당선되지 않았다고 해서 영원히 글을 쓸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실패가 영원한 실패로 남지 않는 것처럼. 맛없는 계란빵 하나로 멈추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다시 계란빵 반죽을 만들기 시작했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었지만, 실망이 곧 포기가 되는 것은 아니니깐. 기대는 언제든지 다시 만들어 낼 수 있다. 마치 새로운 계란빵을 굽는 것처럼. 다시 한번 설렘을 품을 수 있다.


여전히 그때의 계란빵 맛을 소환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다음번엔, 어쩌면 그 계란빵의 맛을 다시 느낄 수 있지도. 살며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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