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감정의 맛 07화

그리운 국물, 그리운 손길

그립다

by 새나

첫째 아이가 독감에 걸렸다.


몸이 뜨겁고 축 늘어져서는 한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억지로 죽을 떠먹여도 몇 숟가락 삼키고 나면 더는 먹지 않으려 했다.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약을 타와 하루 종일 아이 곁을 지켰다. 열이 내리기를, 기침이 줄어들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아이의 기운이 돌아올 즈음 둘째 아이가 열이 올랐다. 또다시 병원으로 가서 독감 판정을 받았다. 주사를 맞고 약을 타 집으로 돌아왔다. 똑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이제는 내 차례였다.


목이 칼칼하더니 몸이 무거워졌다. 처음에는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했다. 하지만 점점 몸이 뜨거워졌고, 머리는 깨질 듯 아팠다. 열을 재보니 39도. 아이들이 차례로 아팠을 때는 그렇게도 잘 버텼는데. 정작 내 몸이 아프기 시작하니 주저앉고 말았다. 아이들은 다 나았고, 집 안은 고요했다. 나는 혼자 병원에 가서 독감 판정을 받고, 주사를 맞고 약봉지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은 텅 비어 있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나는 혼자 끙끙 앓았다. 아이들이 아플 때는 정신이 없어 몰랐는데. 이렇게 혼자 아파보니 더 축축 처지는 기분이었다. 침대에 누워 창밖을 바라보았다. 노을이 깔린 하늘이 유난히 붉었다.


문득, 엄마가 끓여주던 된장찌개가 생각났다.


엄마의 된장 찌개는 묘한 매력이 있다. 된장의 깊은 맛에 감자와 애호박이 푹 익어 부드럽다. 버섯과 고추가 들어가 매콤한 맛도 감돌았다. 국물을 한 숟가락 뜨면 속이 편안했다. 밥상에 놓인 된장찌개를 보면 두부만 골라서 그릇에 담은 후 국물 몇 숟갈을 밥 위에 뿌려서 촉촉이 젹셔서 먹었다. 입맛이 없을 때 먹으며 된장국이 스며든 밥이 술술 목에 잘 넘어갔다. 엄마는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잔소리를 했다.

"야채도 좀 같이 먹어야지. 두부만 골라 먹지 말고."

그땐 몰랐다. 그 잔소리마저 그리워질 줄은.


엄마가 차려준 밥상이 늘 거기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언제든 두부만 골라 먹어도, 엄마는 그 자리에서 잔소리를 해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 아무도 없는 이 집에서 나는 혼자 빈속을 채워야 했다.


엄마의 된장찌개가 먹고 싶었다.


나는 열이 나는 몸을 이끌고 주방으로 갔다. 된장, 감자, 애호박, 버섯, 고추, 그리고 고춧가루까지 엄마가 넣던 재료들을 하나하나 꺼냈다. 손을 떨며 칼질을 하고, 냄비에 물을 끓였다. 된장을 풀고, 재료를 넣고 보글보글 끓였다. 맛있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렇게 정성껏 끓인 된장찌개.

그런데, 그 맛이 아니었다.

뭔가 비어 있었다.


엄마가 만든 된장찌개와 같은 재료를 넣었는데. 국물이 싱거운 듯했다. 깊은 맛이 나지 않았다. 간이 맞지 않아서인가 싶어 소고기 다시다를 조금 더 넣어 봤지만, 그래도 아니었다.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엄마의 된장찌개 에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들어 있었던 걸까. 단순히 재료나 조리법의 문제가 아니라, 엄마의 손길과 시간이 담긴 맛이었을까.


엄마의 된장찌개가 그리워지는 날이었다.

keyword